추도예배란 개혁주의 교회에서 사용될 용어가 아니다. 죽은 성도들의 죽음을 기념해 드리는 예배는 있을 수 없다. 우리는 베드로나 바울의 삶과 죽음을 기념하지 않는다.
‘추도’의 사전적 의미는 죽은 사람을 생각하여 슬퍼하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실제적으로는 죽은 사람을 ‘기념’하는 것과 깊이 연관된다. 한국 기독교에서는 추도예배를 드리는 것이 보편화되어 있다. 신앙이 돈독한 가정이라 하면서 추도예배를 드리고있는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기독교에서 죽은 사람을 위해 추도예배를 드리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따라서 추도예배란 용어 자체에 적잖은 문제가 있다. 엄밀한 의미에서 본다면 그것은 건전한 교회에서 사용할 수 있는 용어가 될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은 그 자체로서 절대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오래 전에 죽은 사람을 위해 슬퍼하거나 기념하기 위한 목적으로 하나님을 예배한다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거기에는 형식상 하나님이 아니라 죽은 사람을 높이고자 하는 본질적인 내용이 담겨 있다. 만일 그 사람이 죽지 않았다면 그런 형태의 예배는 있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성경은 죽은 사람을 중심에 두고 드려지는 예배를 허락하지 않는다. 예배 중에 죽은 사람에 대해 특별한 예우를 하려는 행위는 결코 온당한 신앙적 자세가 아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죽은 자기 부친을 장사하도록 허락해달라고 요구했을 때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제자 중에 또 하나가 가로되 주여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예수께서 가라사대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 하시니라"(마8:2122)
우리의 생각으로는 죽은 부친을 장사지내는 것은 자식으로서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아버지가 사망했는데 직접 가서 장례를 치르는 것을 인간의 마땅한 도리라 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허락지 않으셨다. 이는 죽은 자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어떤 미련도 두지 말라는 강력한 메시지로 보인다.
그러므로 성경에 나타나는 믿음의 선배들 가운데 추도예배라든지 그와 유사한 형태의 예배를 드렸던 경우는 없다. 예수님은 물론 구약시대의 선지자들과 신약시대의 사도들을 비롯한 모든 믿음의 선배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한국 기독교에서 죽은 자를 위한 추도예배를 드리는 것은 한국인들의 조상숭배를 위한 제사행위와 종교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냉철하게 생각해 볼 때 추도예배는 불신자들의 제사행위를 기독교적 제사형태로 바꿔놓은 것이다. 즉 기독교인들의 추도예배는 성경의 가르침으로부터 나온 것이라 말할 수 없다.
그러면 우리는 그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함께 살던 부모나 가족이 사망한다는 것은 슬픈 일임에 틀림없다. 한 평생 같이 살던 가족이 죽어 다시 만날 수 없는 형편이 되었으니 아쉬운 마음으로 슬퍼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렇다고 해서 유가족들은 죽음의 현장에서 마냥 슬퍼하고 앉아있을 수만은 없다. 장례를 치르고 위로하기 위해 찾아오는 손님들을 맞아야 하는 등 많은 수고를 하게 된다. 나아가 재정적으로도 상당한 부담을 질 수 밖에 없다.
장례식이 있은 다음 해 흩어진 자녀들이 한 자리에 모여 교제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그것은 일년 전에 죽은 사람을 위해 슬퍼하며 기념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것은 도리어 산 사람들을 위한 모임이다. 지난해 힘을 모아 장례를 치르고 수고한 일들을 떠올리며 교제를 나눌 수 있다. 만일 죽은 사람이 생전에 훌륭한 신앙의 본을 보였다면 그것을 기억하며 함께 나눌 수 있을 것이다.
형편에 따라 온 가족이 둘러앉아 성경을 읽으며 생존한 성도로서 신실한 삶을 다짐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죽은 사람을 중심에 둔 기념예배처럼 되어서는 안된다. 죽은 자를 위한 애도와 그를 기념하기 위해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란 있을 수 없다.
더구나 죽은 사람의 장례식에 맞추어 모이는 가족행사는 해를 거듭하여 지속적으로 되풀이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해마다 모여 몇 년 전 장례로 인해 고생했던 일을 기억하며 동일한 일을 되풀이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우리 시대 한국교회에서는 조상이 죽고 나서 해마다 추도형식의 예배를 절실히 드리는 것이 마치 효성이 지극한 사람들이 하는 신앙행위인 양 오해되고 있다. 그것은 결코 진정한 효성의 표시가 될 수 없다. 죽은 사람은 결코 산 사람의 효도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국교회는 죽은 사람을 슬퍼하며 기념하는 형태의 추도예배를 그만두어야 한다. 그것은 도리어 기독교의 색체를 띤 미신적 행위일 뿐 진정한 신앙행위가 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죽은 자가 아니라 살아있는 가족이 주님 안에서 겸손하게 살아가는 자세라는 사실을 항상 기억해야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는 그에 대한 아무런 비판이나 반성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아가 도리어 교회가 공적인 이름으로 개인을 염두에 둔 예배행위를 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이광호 박사(조에성경신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