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나단 에드워즈: 참된 중생을 입증하는 12가지 표지
에드워즈는 참된 거듭남의 역사가 주어질 때 나타나는 진정한 은혜에 속한 정서로 다음 12가지를 말했다.
첫째, 에드워즈는 참된 은혜로운 정서는 ‘영적이고, 초자연적이고, 신적인 감화와 작용’에서 온다고 말했다. 참된 정서는 성령님의 내주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은 당신이 영구적으로 거하시기 위해 참된 성도들 안에 내주하십니다. 그리고 새로운 본성의 원리로서 또는 생활과 행동의 신적이고 초자연적인 원천으로서 성도들의 마음에 영향을 미칩니다.”17)
성령님께서 내주하시면 전혀 새로운 감각이 생긴다. “하나님의 성령의 구원하시는 사역을 통해서 성도들의 마음속에서 이루어진 은혜로운 역사와 정서 가운데는, 그들의 마음에 새로운 내적인 지각과 감각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이것들은 그 성질과 종류에 있어서 그들이 거룩함을 입기 전에 그들의 마음에 가졌던 어떤 것과도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18) ‘영적이고 신적인 일들’에 대하여 참된 성도는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이 마음으로 느끼는 것과 전적으로 다르게, 마음속에서 ‘새로운 감각’을 행사하여 그것을 느끼게 된다.
둘째로, 에드워즈는 참된 은혜로운 정서는 하나님께 속한 것들의 ‘초월적이며, 탁월하고, 사랑스러운 본성에 대한 감동’에서 온다고 말했다. 이기심이나 탐욕스런 자기 사랑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 탁월성과 영광,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하시는 일, 하나님의 방식 등은 참 성도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차적인 이유가 된다. “하나님을 향한 참된 사랑의 기초는 하나님께서 스스로 사랑스러우신 분이시요, 사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요, 최고로 사랑스러운 본성을 가지신 분이라는 바로 그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이치에 합당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갖게 하는 제일의 요건임에 틀림없습니다.”19)
하나님을 가장 사랑스럽게 만드는 것도 하나님의 탁월성이다. 하나님의 본성이나 신성은 무한히 탁월하다. 그 하나님의 본성이나 신성은 무한히 아름답고, 빛나며, 영광 그 자체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탁월하심에 대한 감동에서가 아니라 자기 정욕으로, 즉 하나님을 믿음으로 얻게 되는 혜택이 자기 사랑을 만족시켜 주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수가 있음을 에드워드는 경고했다.
셋째, 에드워즈는 참된 거룩한 정서는 하나님께 속한 것들의 탁월함 중에 특히 “도덕적 탁월함”의 사랑스러움에 그 토대를 둔다고 강조했다. 그는 하나님의 본성적인 완전과 도덕적인 완전 사이를 구분했다. “하나님의 도덕적인 완전성이라 할 때는 하나님께서 도덕적인 행위자로서 발휘하시는 속성들을 뜻합니다. …… 한마디로 그의 거룩하심을 뜻합니다. 이에 비해 하나님의 본성적인 속성이나 완전성들이라고 말할 때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거룩하심이나 도덕적 선하심이 아니라, 그의 위대하심을 이루고 있는 속성들을 뜻합니다. 즉 그의 전능하심, 전지하심, 영원하심, 편재하심, 그리고 외경스럽고 두려운 주권 등을 말하는 것입니다.”
에드워즈는 “하나님께 속한 것들의 도덕적 탁월성의 아름다움 때문에 그것들을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모든 거룩한 정서의 시작이요, 근원이 된다.”20)라고 하였다. 모든 거룩한 정서의 일차적이고 객관적 근거가 되는 것은 “신적인 것들의 탁월함 중에 도덕적 탁월함이나 거룩함”이다.21) 그는 하나님을 향한 참된 사랑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즐거워하는 데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나님의 거룩의 영광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의 참된 영광도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22)
넷째, 은혜로운 정서는 ‘하나님의 조명’으로 말미암는다고 에드워즈는 말했다. 에드워즈에 의하면, “영적인 지식(understanding)은 신적인 일들에 있는 거룩함이나 도덕적 완전성의 지고한 아름다움과 달콤함을 느끼는 마음의 감각”에 내재한다.23) 영적으로 성경을 이해한다는 것은 “마음눈이 열려서 하나님의 완전하심의 사랑스럽고 빛나는 광휘를 보고, 그리스도의 탁월하심과 충족하심을 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원의 방식의 탁월성과 적합성”을 아는 것이고, “성경 교훈과 약속들의 영적인 영광을 보는 것”이다.24) 그는 말한다. “신약 성경에 의하면,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은 영적인 것의 본질과 종류를 절대 경험할 수 없습니다.”25)
다섯째, 에드워즈는 참으로 은혜로운 정서는 신적인 것들의 실재성과 확실성에 대한 ‘논리적이고도 영적인 확신’과 더불어 나타난다고 말했다. “참으로 은혜 받은 사람들은 복음의 위대한 일들의 진리성을 확고하고, 온전하며, 철저하고, 효과적으로 확신합니다. 그들은 두 견해 사이에서 이제는 고민하지 않습니다. 복음의 위대한 교리들이 다시는 그 사람들에게 의심스럽지 않으며, 더는 논쟁거리가 되지 않습니다.”26)
여섯째, 에드워즈는 은혜로운 정서는 ‘복음적인 겸손’을 수반한다고 말했다. “복음적인 겸손이란 그리스도인이 자기 자신이 말로 할 수 없이 부족하고, 경멸할 만하며, 비난받아 마땅하다는 의식과 그에 따르는 마음가짐을 가지는 것을 말합니다.”27)
일곱째, 은혜로운 정서는 ‘본성의 변화’를 수반한다고 에드워즈는 강조했다. 에드워즈에 의하면, “회심은 사람이 죄에서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위대하면서도 보편적인 변화”이다. “사람은 회심하기 전에도 죄를 짓는 것을 억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회심했을 때 그는 죄를 짓지 못하도록 제어를 받을 뿐만 아니라, 그 마음과 본성 자체가 그 죄에서 돌이켜 거룩함을 향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 이후부터 그는 거룩한 사람이 되고, 죄에 대해서는 원수가 됩니다.”28)
회심은 ‘총체적 본성의 변화’를 가져다준다. “회심 때에 일어나는 변화는 인격 전반에 걸친 변화입니다. 은혜는 그 사람 속에 있는 죄의 문제에 있어서 그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옛 사람이 벗어지고 새 사람을 입게 됩니다. 그는 철저하게 거룩함을 입습니다. 사람이 새로운 피조물이 되고, 옛 것은 지나가고 모든 것이 새롭게 됩니다. 모든 죄가 죽임을 당합니다. 다른 여러 죄들도 그렇게 되지만 기질적인 죄들도 그렇게 됩니다.”29)
여덟째, 참으로 은혜로운 정서는 ‘어린양과 비둘기 같은 그리스도의 성품’을 수반한다고 에드워즈는 말했다. 달리 표현하면, “예수님에게서 나타나는 사랑과 온유와 평온과 용서와 자비의 영을 자연적으로 가지게 하고, 그러한 성품 안에서 자라게 한다.”30)
아홉째, 은혜로운 정서는 ‘부드러운 마음’을 갖게 한다고 에드워즈는 말했다. 거짓된 정서는 결국에는 강퍅하게 되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은혜로운 정서는 그것과 정반대의 성향을 가진다. 돌 같은 마음이 날이 갈수록 부드러운 마음으로 변화된다.31)
열 번째, 참으로 은혜롭고 거룩한 정서는 마음에 ‘아름다운 대칭과 균형’을 갖고 있다고 에드워즈는 말했다. “성도들 속에는 기쁨과 거룩한 두려움이 함께 합니다. …… 그러나 많은 외식자들은 두려움 없이 즐거워합니다.”32)
열한 번째, 에드워즈는 은혜로운 정서는 회심을 한 후 영이 자랄수록 ‘더욱 큰 영적인 갈망’을 가지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거짓된 정서는 자신의 상태에 안주한다.33)
열두 번째, 은혜롭고 거룩한 정서는 ‘그리스도인다운 행실’로 열매를 맺는다고 에드워즈는 주장했다. 그에 의하면, 그리스도인의 거룩한 생활의 실제는 은혜의 모든 표지들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34) 그리스도인다운 행실은 다른 사람들에게 증거하는 가장 중요한 증거이며, 우리 자신들에게 증거하는 가장 중요한 증거이다. “거룩한 실천은 그 회개가 진정한 것인가를 밝혀 주는 증거입니다.”35)
사랑하는 성도여, 그대는 에드워즈가 말하는 12가지 거듭남의 징표를 가졌는가? 진실로 그러한가?! 저는 지금까지 에드워즈처럼 설교하는 장로교 목사를 본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아래 『거룩한 구원』 26장 조나단 에드워즈의 중생론 에서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