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교리에 무관심하지 않았다. 도리어 교리가 그의 삶의 기초였다. 교리에 대한 헌신 때문에 그가 놀라운 관용을 베풀지 못하게 된 것은 아니었다. 로마 수감 중 놀라운 관용의 예가 있었는데, 빌립보서에 그것이 기록되어 있다. 그들은 감옥에 있는 바울을 더 괴롭히고자 질투와 분쟁의 정신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했다.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라고 말한다. 바울은 그 메시지가 제시되는 방식보다는 메시지의 내용에 훨씬 관심이 있었다. 이보다 더 훌륭한 관용의 예를 찾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그렇다고 바울이 무조건 관용을 베풀기만 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갈라디아에서는 전혀 관용적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거기에도 경쟁적인 전도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라고 했다(갈1:8). 로마에서는 경쟁 전도자들이 전하는 메시지가 참 이었으므로 관용했으나, 갈라디아에서는 메시지가 거짓이었으므로 관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바울의 반대는 전적으로 그들의 교훈에 거짓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참 복음을 복음이 아닌 전혀 다른 것으로 바꾸어 버렸다. 실용주의가 그의 영혼에는 그림자를 드리우지 못했던 것이다. 바울은 복음 메시지의 객관적 진리를 확신했으며, 그 진리에 대한 헌신이 그의 삶의 위대한 열정이었다. 바울에게 있어서 기독교는 삶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교리이기도 했으며, 논리적으로는 교리가 먼저였다.
그렇다면 바울의 가르침과 유대주의자들의 가르침 사이에 다른 점이 무엇이었는가? 갈라디아서의 엄청난 논쟁을 야기한 요소가 무엇인가? 그들도 예수를 메시아로 믿었다. 예수가 죽음에서 부활했음도 믿었다.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구원에 필요하다는 것도 믿었다. 문제는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성취한 일이, 율법을 지키려는 신자 자신의 노력에 의해 보충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현대의 관점에서 보면 그 차이가 극히 미세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유대주의자들뿐 아니라 바울도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것이 그 중요성의 깊이에 있어서 믿음과 불가분적으로 연결되었다고 믿었다. 그 차이는 세 단계에 대한 논리적인- 시간적인 것도 아닌- 순서에 불과했다. 바울은 사람이 처음에 그리스도를 믿고, 그럼으로써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받고, 다음으로 즉시 하나님의 법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대주의자들은 처음에 그리스도를 믿고,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의 법을 지키고, 그 다음에 의롭게 된다고 주장했다. 현대의 “실천적인”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이 차이는 극히 미묘하고 실체가 애매한 문제로서, 실천적인 영역에서 이룬 큰 합의에 비추어 보면 거의 문제 삼을 가치도 없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바울도 기독교의 연합이라는 큰 원칙에 동의했어야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바울은 전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가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오직 그 이유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 교회가 존재하는 것이다. 바울은 유대주의자들과 자신의 차이가 전혀 다른 종교 유형의 차이임을 분명히 이해했다. 그것은 공로의 종교와 은혜의 종교 사이의 차이였다. 만약 그리스도가 우리 구원의 일부만을 제공하고 나머지는 우리 자신이 채우도록 했다면, 우리는 여전히 절망적으로 죄의 짐을 지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다시 율법의 옛 굴레 아래서 신음하게 된다. 우리 자신의 공로로 그리스도의 사역을 채우려는 시도가 바로 불신앙의 본질임을 바울은 분명히 보았다.
분명히 바울이 옳았다. 바울과 유대주의자를 갈라놓은 차이는 단순한 미묘한 신학적 차이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그 자체에 관한 것이었다. “큰 죄에 빠진 날 위해 주 보혈 흘려주시고.” 바로 이것을 위해 바울은 갈라디아에서 싸웠다. 만약 유대주의자들이 승리했다면 이 찬송이 결코 쓰여질 수 없었을 것이고, 기독교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바울이 비교리적인 종교를 옹호하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그는 다른 무엇보다도 자신의 메시지가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진리라는 사실을 중시했다. 현대 자유주의 설교자들은 때로 바울의 글을 문맥과 무관하게 인용하고, 그것을 원래의 의미와 전혀 다르게 해석하면서 사람들의 마음에 정반대의 인상을 심으려 한다. 바울은 예수의 윤리적 원리들에만 관심을 가진 것이 아니었다. 또한 종교나 윤리의 보편적인 원리에만 관심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그리스도의 구속의 사역과 그것이 가져오는 효과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일차적인 관심은 기독교 교리였다. 그에게 교리란 기독교의 단순한 전제가 아니라 핵심이었다.
바울과 예루살렘 교회의 관계가 전체적으로 어떤 성격이었는지 보여주는 서신들에 드러나 있으며, 또한 바울이 초대 교회로부터 받은 전승을 요약하는 귀중한 단락인 고린도전서 15:3-7에 놀라울 정도로 분명하게 드러난다. 최초의 제자들은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라고 말했다. 처음부터 기독교 복음은, “복음” 혹은 “좋은 소식”이라는 말이 실제로 의미하듯이 발생한 어떤 일에 대한 설명이었다. 처음부터 그 발생한 일의 의미가 제시되었고, 그에 따라 기독교 교리가 생긴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다.” 이것은 역사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셨다.” 이것은 교리다. 결코 분리될 수 없이 연결된 이 두 요소가 없다면 기독교는 없는 것이다.
초대교회는 예수의 말씀에만 주의한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 일차적으로 예수가 한 일에도 주의했다. 세상은 한 사건의 선언을 통해서 구속받아야 했고, 그 사건에는 의미가 덧붙여진다. 의미와 함께 그 사건을 제시하는 것이 교리였다.
기독교 메시지에는 항상 이 두 가지 요소가 함께 한다. 사실을 서술하는 것은 역사다. 그 사실의 의미와 함께 사실을 서술하는 것은 교리다.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었다”는 역사다.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신을 주셨다”는 교리다. 이것이 초대 교회의 기독교였다.
그레이스앰 메이첸 교수 (전 웨스트민스터신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