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는 양들을 잘 돌보는 아비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크게 강조하지 않아도 목사라면 무엇을 뜻하는지 잘 알 것이다. 쉽게 유혹당하고 넘어지고 낙담하는 연약한 양들이기 때문에 잘 돌봐야 한다. 사랑의 돌봄이어야 한다. 돌봄에 있어서 곁길로 갈 수 있는 것은 베드로의 일침에서 발견된다.
즉 부득이함으로 한다든지 혹은 더러운 이익을 위하여 한다든지 또는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권위적인 자세로 하는 것이다(벧전 5:2). 그러나 목사는 자원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무엇보다 주님의 심장을 품고 양들을 돌봐야 한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 장로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내가 떠난 후에 흉악한 이리가 너희에게 들어와서 그 양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또한 너희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좇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니 그러므로 너희가 일깨어 내가 삼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행 20:28-31).
흉악한 이리가 교회 안에 언제든지 침입할 수 있다. 그들의 목적은 양떼를 죽이는 일이다. 죽이지 못해도 크게 상처를 입히고 회복 불가능한 자로 만들고자 한다. 목회를 다 파괴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양들이 미혹당하지 않도록, 그리고 다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양 떼들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펴야 하는 것이다. 목사는 자신의 영혼 전체를 목양에 헌신해야 한다. 바울사도가 지적하고 있듯이 성령 하나님께서 양들을 위한 감독자로 삼으셨기 때문이다.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목양하게 하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 뭐라고 하든 말든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든 말든 목양에 전념해야 한다. 종종 목양실에 목양일념(牧羊一念)이라는 족자가 걸려 있는 것을 본다. 정말 목양하는 일에 전념하고 있는지는 각자가 판단할 것이지만 양들을 돌보는 일보다 다른 업무에 바쁘게 다니는 자들도 많이 있다. 목자가 없으면 양들은 쉽게 유혹에 빠지는 것이다.
돌봄에는 눈물이 수반된다. 목양에 눈물이 없는 날은 거의 없다고 해도 틀리지 않는다. 주님이 흘리신 눈물도 심한 통곡과 눈물이었다. 그만큼 목양사역이 힘들고 고달픈 일이다. 그래도 즐거움으로 이 길을 가야하는 것은 이 길이 주님이 가신 길이요 생명을 위한 길이기 때문이다. 주님의 영광스러운 부름에 순종하여 그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네 양 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며 네 소 떼에 마음을 두라”(잠 27:23). 바울도 3년이나 밤낮으로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였다. 목회는 노동이 아니라 소명이다. 소명은 자신을 위하지 않고 부르신 자를 위한 것이다. 부르신 자가 맡겨준 양들을 주님의 생명의 말씀을 따라 양육하되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한 자가 되게 해야 한다. 목사가 맡은 이 일에 온 마음과 영혼을 다 던져 넣어야 한다. 그 일이 크든 작든 선포와 가르침과 경계와 책망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여 충성하면 하나님을 영원토록 찬양하게 될 것이다.
이 일은 우리 자신을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양들의 유익을 위한 것이라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더러운 이익을 위해 일하는 것이 되지 말아야 한다. 양들에게 유익한 것은 곧 우리에게도 유익하다. 목사는 유모여야 한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면 기쁨으로 단을 거두게 될 것이다. 이 눈물은 그들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새겨지기까지 해산의 수고를 아끼지 않는 증거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더 살펴볼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수고하는 것은 돈을 위하거나 명예를 위하여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구원을 위한 것임을 분명히 알게 해야 한다. 정말 모세나 사도 바울이 그런 것처럼 그들이 구원을 받는 것이라면 그리스도의 생명책에서 자신의 이름이 지워져도 좋다고 말할 수 있는 아비의 마음으로 진리를 말하는 주님의 일군들이어야 한다. 세상에 누가 그와 같은 고백을 할 수 있겠는가? 모두다 다 자기 살겠다고 아우성인 판에 양들을 위해서 자기 목숨을 내놓는 자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럴지라도 참된 목자는 양들을 위해 존재할 뿐이다. 그들의 아픔이 곧 목자의 아픔이요 그들의 고통이 목자의 고통이다. 주께서 우리의 고난의 현장에 함께 해 주시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종종 자식들이 어버이의 심정을 헤아리지 못해서 가슴에 못을 박는 경우들이 있다. 목회 현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어버이 사랑은 내리사랑이듯 양들은 신뢰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임을 기억하고 사랑의 수고를 다해야 한다.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가지라. 바울 사도는 골로새서 1장 28절한 구절에서 “각 사람”이라는 말을 세 번이나 언급하였다. 그만큼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히 여겼고 자신의 돌봄의 손길에서 벗어나 있는 자가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오늘날 대형교회를 추구하는 흐름과는 정반대의 길이다. 목사가 경영인이 되고 있으니 목자로서 양들을 돌봄에는 자연스럽게 사무적인 것으로 전락되어 간다. 존경과 사랑의 관계보다 업무적인 관계가 되고 있다. 목사는 CEO형 지도자가 아니라 진리를 전달하는 자요, 목양자여야 한다. 주님의 날에 우리가 맡아 목양한 그들의 우리의 기쁨이요 소망이요 면류관이요 자랑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출처]개혁교회 목회와 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