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반드시 ‘우주의 인류를 위해’(pro universo genere humano)기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우리가 전도와 선교 사역을 위하여 불신자들이 회개하도록 기도를 하긴 해도 그들을 우리 마음에 따뜻하게 품고 사랑으로 기도하는 것은 아니다.그 이유는 우리가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을 우리 그리스도인과 무관한 존재들로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우리는 공간적으로 교회 안과 밖을 이원화하는 경향이 있다.즉 교회 안을 하나님의 영역으로,교회 밖을 마귀의 영역으로 구분하는데 익숙하다. 이런 이원론적 사고 때문에 교회 안의 일만 거룩하고 교회 밖의 일은 세속적이라고 오해하는 교인들이 많다.
이원론적 사고에 익숙한 교인은 교회 안의 일만 열심히 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이라 믿고 산다. 거룩한 영역과 세속적인 영역으로 구분하는 이원론적 사고는 그리스도인이 사랑해야 할 대상이란 오직 하나님과 다른 교인뿐이라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즉 세상 사람들은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사단에게 사로잡힌 자들로서 미움의 대상일 뿐이다. 이런 사고에 젖은 교인들에게 칼빈의 권면은 충격적일 것이다.“우리의 사랑은 가치 없는 자들을 향해 지속적으로 스스로 확대해 가야 한다.
칼빈은 교회 밖에 있는 세상 사람들도 우리 그리스도인이 사랑해야 할 대상이라고 강변한다. 이런 주장에 대해 대부분의 교인들은‘왜 우리가 우리와 아무 관계가 없는 불신자들의 구원에 관하여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 형제들인 우리가 형제들을 위해 서로 기도하고 또한 하나님의 온 교회를 하나님께 맡기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는가?’라고 반문할지 모른다. 이 반문에 대해 칼빈은 이렇게 반박한다. “바울은 이런 잘못된 견해에 반대하여 에베소 사람들에게 그들의 기도에 죽어 없어질 모든 사람들을 포함시키고 이들이 교회의 몸에 가까워지는 것을 제한하지 말라고 명령한다.”
불신자들의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과 손에 달린 문제이지만 신자라면 반드시 불신자들의 믿음과 구원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그것은 신자뿐만 아니라 불신자까지도 온 인류가 기독교 사랑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불신자는 모든 신자가 관심을 가지고 사랑해야 할 사랑의 대상이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사랑 받을만한 가치가 전혀 없어 보이는 불신자에게조차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그 이유를 칼빈은 이렇게 설명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이 구원받는 것을 원하시기 때문이다.”즉“하나님께서 지상의 어떤 백성이나 신분도 구원으로부터 제외하지 않으시기”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그리스도인이 기도해야 하고 사랑해야 하는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심지어 지금 교회를 박해하고 복음을 훼방하는 자라할지라도 복음전도의 대상에서는 결코 제외될 수 없다.그러므로 우리는 교회 밖의 불신자들과 감옥의 흉악범죄자들뿐만 아니라, 심지어 이단자나 페미니스트,동성애자조차도 복음전도의 대상에서 제외하지 말아야 한다. 물론 이런 이론을 말하기는 쉬워도 실천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렇다 해도 누군가를 전도대상에서 제외한다면 이것은 어리석고 인간적인 편견의 결과일 뿐이다.
칼빈의 주장에 따르면, 첫 인간의 타락 이후 온 인류,즉“세상은 하나님으로부터 매우 멀리 떨어졌으며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추방당할 만했고 그분과 어떤 교류도 없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율법 시대에 그분이 한 백성을 선택하셨고 그들을 인도하시기 위해 자신의 날개아래 그들을 모으셨으며 나머지 세상은 혼란 가운데 내버려 두셨다. 하지만 비록 사람이 하나님과 완전히 분리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 모두는 자연히 그분께 속해 있다. 그리고 그분이 그들 모두를 만드신 것과 같이 그렇게 그분은 또한 그들을 다스리시고 그분의 위대한 선하심으로 그들을 지켜주신다.”
칼빈의 주장은 이어진다. “사람들이 타락을 향해 가는 것을 우리가 볼 때, 비록 그들이 불신자들이고 또한 하나님께서 복음을 믿는 믿음 안에서 그들을 우리와 결합하실 만큼의 은혜를 그들에게 베푸셨던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들을 불쌍하게 여기고, 할 수 있는 대로 열심히 그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을 만드셨기 때문이다, 사실 믿음 안에서 우리에게 동의하지 않는 자들은 마치 우리의 적이며 이들과 우리 사이의 거리는 아주 먼 것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 질서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우리가 그들을 완전히 버리지 말아야 하며 그들이 다시 한 몸에 연합할 수 있도록 우리가 가능한 한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는 것이다.
칼빈은 교회 밖의 불신자들을“잘려나간 지체들”즉 하나님의 한 가족으로 간주한다. 그러므로“형제애”를 가지고 그들을 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불신자들이 우리 신자의 적이라는 사실을 칼빈도 인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자는 불신 이웃이 교회를 적대해도 결코 이웃인 그들을 포기하지 말아야 하고,또한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그날까지 최대한 참고 인내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글. 황대우 목사, 교수: 고신대학교 신학과(M.A.), 신학대학원(M.Div.), 신학석사과정(Th.M.)을 마친 후, 네덜란드 아뻘도른(Apeldoorn)에 소재한 기독개혁교단 소속 신학대학교(Theologische Universiteit van de Christelijke Gereformeerde Kerk)에서 2002년 까지 마르틴 부써와 존 칼빈의 교회론을 비교 연구하여 신학박사(Doctor Theologiae) 학위를 받음.
백석대학교, 남서울대학교, 브니엘신학교, 고신대학교 교양학부 역사신학 담당교수, 개혁주의학술원 책임연구원. 저술로는 『칼빈과 개혁주의』(깔뱅, 2010)가 있고, 번역서로는 『문답식 하이델베르크 신앙교육서』(개혁주의학술원, 2013)와 루터와 칼빈이 말하는 참 신앙의 삼중주』(그책의사람들, 2012)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