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기도와 묵상의 차이
오늘날 세계 교회는 묵상의 중요성을 심각할 정도로 망각하고 있다.에드먼드 칼라미는 말하기를 "인간이 회개하지 않고 계속 죄들을 범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묵상의 결핍 때문이다"라고 했다. 뿐만 아니라 묵상은 성화를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그리고 매주마다 설교를 듣는 성도는 묵상이 없으면 아무런 유익을 얻지 못한다. 이는 마치 성별된 동물이 식물을 되새김질 하지 않으면 어떤 음식도 소화할 수 없음과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교회 안에서 묵상은 거의 제대로 가르쳐지지 않고 있다.
물론 상당수의 교회는 나름대로 묵상을 가르치고 실천하기 위한 프로그램들을 운영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정작 이렇게 묵상을 가르치고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는 교회들을 들여다보면 거의 대부분 심각한 상황에 놓여있는 것이 사실이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교회들이 하고 있는 묵상 프로그램들은 가톨릭적이거나 철학적인 묵상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성경이 요구하는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묵상이 아니라, 성경의 명령으로부터 더 멀어지게 만드는 사악한 프로그램이라는 말이다.
이는 상당수의 교회들이 전통적인 묵상이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오늘날 교회에서 가르치는 묵상에 어떤 문제가 있다는 것인지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기존의 묵상, 소위 Q.T(Quiet Time)라고 불리는 가르침들은 성경을 성령의 조명으로 읽도록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직관으로 읽도록 가르친다.
그 결과 성경이 계시하는 하나님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하나님을 주관적으로 도출해내고 내 방식대로 하나님을 규정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말하기를 자신은 성경 말씀으로 응답을 받았노라고 주장한다.
비록 성경을 사용하기는 했을지 모르나 성경의 말씀을 이단처럼 자기 방식대로 해석하고 짜깁기 하여 자기가 숭배하고자 하는 하나님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은 출애굽기 32장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황금 송아지를 만들고 나서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출 32:4)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이다. 이런 행위는 비록 여호와라는 호칭은 사용하고 있으나 이름을 도용한 우상숭배에 불가하다.
그러나 문제의 심각성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오늘날 교회에서 가르쳐지는 묵상운동은 여기서 한 단계를 더 넘어서 ‘관상기도’로 향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실제로 우리가 Q.T.라고 부르는 묵상운동은 로마 가톨릭의 관상 기도 방식에서 “관상기도”만 생략한 가르침이다. 아마도 Q.T.를 교회 안에 유입한 목회자들은 이것이 관상기도의 방식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천주교에 거부감이 심한 한국교회에게 곧바로 관상기도를 가르치면 거부감이 생길 것을 염두에 두고, Q.T.라는 명칭으로 관상기도라는 최종 단계만 생략한 체 한국교회에 소개한 것으로 보인다.
발체: 김민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