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바울의 모범을 따르고 싶습니다. 저희 신학교 학생들도 바로 그 모범을 따르길 원합니다. 셰퍼드 콘퍼런스에 참석한 모든 목회자들이 온전한 마침표를 찍고자 하는 열정으로 불탔으면 좋겠습니다. 영원히 썩지 않는 면류관을 얻는 것과, 경주에서 끝까지 승리하는 것과, 끝맺음을 잘하는 것이 모든 그리스도인의 목표였으면 좋겠습니다.
인생의 마지막 때에 바울이 믿음 안에서 아들 된 디모데에게 해줬던 말을 해야 합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 4:7-8). 이것은 사도바울이 기록한 것 중 가장 마지막에 기록된 말로 알려져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마지막 서신을 스스로에 대해 말 하면서 끝을 내는데 그것은 바로 승리의 선언이었습니다.
나는 믿음을 지켰다.
바울은 이 땅에서의 마지막 삶에 도달했습니다. 바울의 인생의 결말은 영원한 승리였습니다. 바울은 주님을 향한 최고의 충성을 보여주었습니다.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결코 꺾이지 않은 모습으로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이보다 더 감격스러운 승리는 없습니다.
독자 여러분, 저는 당신도 그 선한 싸움을 승리하는 자처럼 싸우길 기도합니다. 당신에게 주어진 경주를 다 마치고 흔들리지 않는 헌신 속에서 믿음을 지키길 기도합니다.
바울의 승리 선포는 성령의 감동을 받은 선언이었지만 인생 말년에 바울 주변에는 그의 성취를 같이 즐거워 해줄 무리는 없었습니다. 오히려 아시아에 있던 바울의 동역자들은 모두 그를 배신했습니다. 바울의 후임자인 디모데는 사역을 그만둘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게 다가 아닙니다. 글의 해당 부분에는 매우 슬픈 감정이 느껴집니다. 7절과 8절에서 전해졌던 격한 흥분과는 매우 대조됩니다. 바울은 이렇게 적었습니다.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9-10절).
바울이 계속해서 말합니다.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두기고는 에베소로 보내었노라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 구리 세공업자 알렉산더가 내게 해를 많이 입혔으매 주께서 그 행한 대로 그에게 갚으시리니 너도 그를 주의하라 그가 우리 말을 심히 대적하였느니라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그들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11-16절).
사도로서 신실하게 살며 끝까지 승리했지만, 그와 동시에 바울의 사역은 아주 슬프고 비극적입니다. 바울과 함께 한 많은 동역자는 끝까지 열심을 내지 못했습니다. 아시아의 모두가 그를 배신했고 친밀했던 데마는 세상과 타협했습니다. 바울은 감옥에 갇혔습니다. 너무 소중했던 책과 기록물들을 볼 수 없었습니다. 입을 옷이 없어서 추위에 떨어야 했고 재판에서 그가 변론할 때 그는 혼자였습니다.
단순히 사람의 시선으로 바울의 상황을 본다면 사역을 위한 그의 전략은 참패였고 모든 수고가 헛된 보였고 끝까지 힘 있게 달려가지 못한 것처럼 보입니다. 끝이 좋지 못한 것처럼 보입니다. 세상의 성공 기준으로 보면 바울은 실패한 인간처럼 보였습니다. 그를 보증해 줄 만한 능력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를 높여주지도 않았고 재판에 서는 그에게 힘을 불어넣어 줄 수 있는 충심 있는 사람들에게 둘려싸여 있지도 않았습니다.
바울은 완전히 소진된 상태였습니다. 그에겐 아무것도 남은 게 없었습니다. 그의 삶은 모든 면에서 매우 어려워졌습니다. 그의 설교를 듣는 사람들 대부분은 그의 사역에 대해 적대적이었고 원수도 많았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어떻게 바울은 끝까지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일까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고린도후서 4장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 그를 견고하게 붙들어준 영원히 확실한 네 가지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본문은 디모데후서가 기록되기 약 12년 전에 쓰였습니다. 고린도후서를 기록하던 바울은 이미 힘든 상황 속에 있던 것이 분명합니다. 눈을 들면 보이는 것은 온통 그를 향한 적대심이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당한 어려움을 간략하게 시간순으로 나열해 적습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고후 11:23-28)
이러한 상황이지만 바울은 4장에서 자신이 끝까지 탈선하지 않고 승리를 향해 달려가도록 한 게 무엇인지 말합니다. 그는 두 번이나(1절, 16절) “낙심하지 아니”한다고 말합니다. 바울이 여기서 사용한 헬라어 단어는(ἐγκακέω) 악의, 사악함, 부도덕함, 타락과 같은 악한 것들을 의미하는 단어(κακός)에서 파생됐니다. 사실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악한 것에 지지 않는다. 우리는 유혹과 죄에 자신을 내주지 않는다. 우리는 죄악된 불완전함 속으로 빠지지 않는다. 우리는 주님과 주님의 사역의 명예를 실추시키지 않는다. 우리는 의로운 삶의 모습과 도덕적으로 귀감을 주는 일에 실패하지 않는다.” 바울은 기세등등하게 선언합니다. “우리는 낙심하지 않는다. 우리는 물러서지 않는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바울은 고린도후서를 기록한 시점부터 태양 빛에 번쩍인 도끼가 자신의 머리를 몸에서 찍어 내버린 순간까지 10년이 넘는 그 고통스러운 시간을 어떻게 살아낼 수 있던 걸까요? 정답은 바로 바울이 확실하고 절대적인 터 위에 살았기 때문입니다.
존 멕아더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