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찬양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육적 본성을 만족하게 하는 바탕에서 태어나는 잘못된 찬양 음악에서 철저히 떠나고 멀어져야 한다. 또한, 진정한 찬양이 무엇인지 오직 성경에서 그 근거를 이성적으로 고찰해야 한다. 그렇다면 진정한 찬양이란 무엇인가? 우선, 찬양이라는 단어의 뜻부터 살펴보도록 하자.
‘찬양’이라는 단어는 기릴 찬(讚)에 오를 양(揚)이라는 한자를 조합한 단어이다. 즉, 찬양이란 ‘하나님을 기리고 높이기 위한 노래’이다. 그러므로 찬양은 오직 하나님만을 높이고 기리기 위한 목적에 모든 것이 집중되어야 한다. 찬양에서는 사람의 육적 욕망을 채우려고 하는 그 어떤 것도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완전한 분이시며, 우리에게 완전할 것을 요구하신다(마 5:48).
그렇다면 성경은 이러한 목적에 부합하는 참된 찬양의 조건으로 무엇을 제시하고 있는가?
첫째, 찬양은 영적인 노래여야 한다(엡 5:19).
‘영적’이라는 말은 ‘육적’이라는 말과 자연스럽게 대조된다. 물론, 성경은 육신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묘사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영적인 것과 반대되는 의미의 ‘육적인 것’은 하나님과는 관계가 없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을 의미한다. 우리 주님께서도 “살리는 것은 영이요, 육은 아무런 유익이 없다(요 6:63).”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적인 노래를 부르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은 노래에 일부 영적인 요소가 있으면, 나머지 부분은 조금 육적이어도 괜찮다는 뜻이 아니다. 온전히 영적인 노래를 부르라는 뜻이다. 그러나 모든 CCM 사역자가 인정하듯이, CCM은 동시대의 대중음악 기법을 차용하여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 기법들에는 인간의 정욕을 자극하고 감정만 잔뜩 끌어 올리려는 요소가 필수적으로 들어간다. 참된 찬양은 그런 육신적인 요소와 기법을 완전한 배제한 영적이고 거룩한 노래여야 한다.
둘째, 찬양은 질서가 있는 노래여야 한다(고전 14:40).
고린도전서 14장 40절의 말씀은 비록 찬양과 직접 관련되어 있지는 않다. 그러나 그 말씀은 분명히 “모든 것을”이라고 말씀하고 있으므로 당연히 찬양에도 적용해야 한다. 그러므로 모든 찬양은 단정하고 조화로운 내적 질서를 갖추고 있는 노래여야 한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엄숙함 가운데 자연스럽게 어우러져야 한다.
난잡하다고 할 정도의 현란한 기교, 불규칙한 박자, 본래의 형식과 내용의 왜곡, 정신을 놓고 뛰어놀기에 적합하게 만들어진 형태의 노래를 찬양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찬송은 부르면 부를수록 질서와 조화로움이 무엇인지 더욱 깨닫고 이해할 수 있는 노래여야 한다.
셋째, 찬양은 전인격으로 부르는 노래여야 한다(엡 5:19; 요 4:22-24; 시 47:7).
여기에서 근거 구절로 제시한 에베소서 5장 19절은, 찬양이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위 구절의 ‘마음’이라는 단어는 주로 사람의 전인격을 표현할 때 쓰이는 용어로서, ‘진심을 다해’, 혹은 ‘감상에 푹 잠긴 채로’ 찬양하라는 의미가 아니다.3 사람의 전인격은 지성, 감정, 의지를 모두 포함하고 있는 개념이다. 따라서 이 말의 참 의미는 찬양에는 풍부한 지성, 진실한 감정, 순전한 의지가 함께하면서,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 측면에서도 CCM은 찬양으로 부적합하다. CCM은 지성, 감정, 의지적 측면 모두에서 문제가 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지성은 거의 완전 실종 상태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 CCM을 제대로 부르려면, 많은 것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 먼저 느끼고 반응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제대로 된 CCM의 깊은 맛을 음미할 수 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께 대한 찬양이 지성에 뿌리내리고 있어야 함을 가르쳐준다. 요한복음 4장 22-24절에서 우리는, 찬양이 성령님의 조명하심을 따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묵상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마찬가지로 시편 47편 7절은 우리가 ‘마스길’, 즉 ‘지혜의 시’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함을 말씀하고 있다.
사실, 이런 사실은 굳이 특정 구절을 예로 들 필요가 없을 정도로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성경 전체가 성삼위 하나님에 대한 경이로운 지식으로 가득한 지식의 보물 창고이다. 그러나 CCM은 이러한 놀라운 지식을 제대로 담아낼 수 없다. 세상 사람의 기호에 휘둘린 CCM의 가사가 어떠한지 한번 유심히 살펴보라. 저속하고 유치하며 심각할 정도로 경박스러운 데다가 쓸데없는 반복은 어찌 그리도 많은지, 심지어는 잘못된 지식을 담고 있는 경우도 허다하다.
물론, 지성만 너무 지나치게 강조하면 아무리 훌륭한 내용을 찬양으로 부른다고 해도, 그냥 무미건조한 지식의 나열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에베소서 5장 19, 20절에서도 알 수 있듯이, 찬양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기뻐하는 것을 전인격으로 표현하면서 그분께 감사하는 것이어야 한다. 찬양 음악은 위와 같은 요건을 충분하게 갖추어야 한다. 그러나 육신의 욕망을 채우려고 만들어지는 대중음악은 이러한 찬양의 기본 요건을 본질상 갖추기 힘들다.
그렇다면 이러한 잘못된 관행을 바로 잡을 수 있는 올바른 대안은 무엇인가? 이제껏 수많은 기독 음악가가 참으로 위대한 찬송을 많이 작곡해왔다. 그들이 물려준 찬송 역시도 참 훌륭하다. 그러나 그중에서 단연 으뜸이라 할 만한 찬송은 하나님의 말씀 자체를 찬송으로 만든 시편 찬송이다. 사람이 아무리 좋은 가사를 쓴다 한들, 성령의 감동으로 된 성경 말씀만큼 안전하고 확실한 가사를 쓸 수 있겠는가?
또한, 여러 종류의 시편 찬송들 가운데 가장 추천할 만한 시편 찬송은 역시 1500년대에 제네바에서 칼빈의 요청으로 만들어진 『제네바 시편 찬송가 (Genevan Psalter)』이다. 이 시편 찬송가는 시편 말씀을 그대로 가사로 옮겼을 뿐만 아니라, 가락도 바른 신학에 근거하여 만들고 다듬어졌다. 그래서 곡조가 꾸밈이 없고 소박하고 정갈하며 절제되어 있어서 예배용 찬송으로 전혀 손색이 없다.
물론, CCM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에게 시편 찬송은 무척 어색하고 지루하게 다가올 수 있다. 필자 역시도 시편 찬송을 처음 접했을 때 무척 생소하고 뭔가 어색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감상적인 음악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찬양에 얼마나 큰 걸림돌로 작용하는지를 깨닫고 이해하고 나서부터는, 시편 찬송을 귀하게 여기고 사랑하는 마음이 생겨나서 좀 더 수월하게 적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시편 찬송을 통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자라가고, 하나님을 참되게 높이는 거룩한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잘못된 찬양에 빠져 있는 모든 사람에게
CCM을 비롯한 현대 찬양 음악 대부분은 장차 불타 없어질 이 세상의 흐름을 뒤쫓아가기에 급급하다. 그러다 보니 성경의 교훈과 하나님의 뜻에서는 자연스럽게 멀어져가고 있다. 처음에는 손뼉을 치며 찬양하는 형태부터 시작해, 기타나 드럼같이 흥을 돋우는 데 더 효과가 큰 악기가 교회 안으로 들어오더니, 심지어 이제는 EDM과 같은 클럽 음악이 버젓이 교회 안으로 침투하려고 하고 있다.
지혜가 있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흐름이 교회를 어디로 이끌어가리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모든 일의 배후에는 하나님보다 자기를 우선하는 죄인의 교만한 본성과 더불어, 그러한 사람의 타락한 본성을 통해 거룩한 교회를 무너뜨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욕되게 하려는 마귀의 교묘한 술책이 깔려 있다.
본인 역시도 CCM의 미혹에 오랫동안 깊이 빠져 있었던 사람이다. 그래서 그 미혹이 얼마나 교묘하고, 그 교묘한 미혹에서 빠져나오기가 얼마나 힘든지 잘 알고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음악을 통해 충족되던 자기의 육적인 욕망을 부인하고 돌아서는 일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의 타락한 감정과 기호를 계속 따라가면서 신앙생활을 올바르게 할 수는 없다. 주님께서는 모든 성도에게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당신을 따를 것을 명령하셨다(마 16:24).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반대된다면, 우리 자신의 감정과 기호 역시도 기꺼이 미워하고 버릴 수 있어야 한다(눅 14:26; 요 12:25). 이 글을 읽는 모든 이들 중에 아직 이러한 미혹에 빠져 있는 사람이 있다면, 하루라도 빨리 그 교묘한 속임수를 깨닫게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찬양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따라 모든 잘못된 것을 멀리하고 악한 자들을 대적하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조 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