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정부가 페르시아어 예배를 금지하고 교회를 폐쇄하는 등 기독교 탄압을 강화했지만, 이러한 조치가 오히려 가정교회 운동의 성장으로 이어졌다는 증언이 나왔다.
아티클18에 따르면, 이란의 아시리아계 목회자 빅터 벳-탐라즈(Victor Bet-Tamraz)는 이란 당국이 페르시아어 예배와 개종한 교인의 교회 출입을 금지하면서 자신이 이끌던 테헤란의 페르시아어 교회도 더 이상 예배를 드릴 수 없게 됐다고 밝혔다. 그 이후 현재 이란에는 당시와 같은 페르시아어로 예배드리는 교회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고 그는 덧붙였다.
빅터 목사는 교회 문을 닫은 뒤 가족과 함께 집에서 예배와 성경공부를 이어가며 가정교회 사역을 시작했다. 그는 “그때가 내게 지하교회 사역이 시작된 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이러한 결정은 곧 당국의 탄압으로 이어졌다. 가정에서 열린 성탄절 예배 도중 약 70명의 무장 요원들이 들이닥쳐 예배를 급습했고, 빅터 목사와 무슬림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성도 2명을 체포했다. 당시 예배에는 개종한 교인들과 아시리아계·아르메니아계 기독교인들이 함께 참석해 있었다.
체포된 이들은 이후 각각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빅터 목사는 조사 과정에서 수사관들이 자신에게 “이 일 때문에 징역 10년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으며, 재판이 열리기도 전에 형량이 이미 결정돼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재판에서 자신이 어떤 국가안보 범죄를 저질렀는지 물었지만, 혁명재판소 판사는 “10년형을 선고하면 알게 될 것”이라고 답했다고 전했다. 또한 변호인이 절차적 문제를 제기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며, 재판은 약 40~50초 만에 끝났다고 주장했다. 그는 “2분 동안 진행됐다던 히틀러 시절의 재판도 내 재판보단 나았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빅터 목사는 이란 정부가 아시리아계와 아르메니아계 기독교인들을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는 사례처럼 국제사회에 소개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철저한 통제 아래 두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혁명 기념일이나 아야톨라 호메이니 추모 행사 등에 소수 종교 지도자들을 초청해 종교의 자유가 있는 것처럼 홍보한다고 주장하며, 이는 종교적 소수집단을 이용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자신들이 받은 압력은 ‘소수종교국’을 통해 이루어졌다면서 “이 기관은 겉으로는 문화이슬람지도부 산하 기관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정보부가 직접 관리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당국이 페르시아어 예배와 기독교 교리 교육, 페르페르시아어 성경과 기독교 서적 사용, 페르시아어 기도 등을 모두 금지했으며, 무슬림의 교회 출입도 허용하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빅터 목사의 항소심은 3년 이상 걸렸고, 2020년 징역 10년형이 최종 확정됐다. 이후 아내 샤미람(Shamiram)도 징역 5년형을 집행하라는 소환을 받자 부부는 결국 이란을 떠났다.
그는 이란을 떠나는 일이 “내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경험”이라고 표현하면서도, 정부의 교회 폐쇄 정책이 오히려 가정교회 운동을 확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평가했다.
빅터 목사는 “이슬람 공화국이 기독교 확산을 막기 위해 저지른 가장 큰 실수는 교회 건물을 폐쇄한 것”이라며 “겉으로는 고통스러운 조치였지만, 그로 인해 가정교회 운동이 성장했고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인이 됐다”고 말했다. 이어 “이슬람 공화국은 아무리 핍박하고 박해해도 이러한 성장을 막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출처: [복음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