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형 인공지능의 등장은 우리 사회 전반에 거대한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어제의 기술이 오늘 낡아지고, 한 달 전의 지식과 매뉴얼이 무용지물이 되는 시대다. 교회 안에서도 ‘AI 시대의 목회’가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지만, 이러한 변화에 대한 공교회의 응답은 아직 충분히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인공지능 자체에만 있지 않다. 인공지능은 우리 시대의 급격한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가족 구조의 변화, 미디어 환경의 재편, 청년 세대의 신앙 이탈, 가치관의 다원화 등 교회가 직면한 과제들은 갈수록 복합적이고 빠르게 전개되고 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교회는 시대를 분별하며 신앙적 방향을 제시해야 하는 책임을 안고 있다.
그런데 총회의 응답은 종종 시대의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는다. 이는 특정 개인이나 기관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총회의 정치 구조와도 관련이 있다. 총회는 매년 정기적으로 소집되는 최고 치리회이며, 새로운 의제는 노회의 청원과 총회의 결의, 연구위원회의 검토와 보고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중요한 사안일수록 충분한 검토와 공적 합의를 필요로 하기에 자연스럽게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그러나 이러한 절차 자체를 문제로 보아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이것은 장로교 정치가 지닌 소중한 유산이다. 한 개인의 판단이나 일시적 여론이 교회를 좌우하지 못하도록 하고, 모든 일을 신중하게 검토하여 공동체적 합의를 이루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이기 때문이다. 이는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라”(살전 5:21)는 말씀을 실천하는 외적 형식이기도 하다.
문제는 신중함 자체가 아니라 신중함과 응답성 사이의 균형이다. 변화의 속도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빨라진 오늘날에는 총회의 공식적 결론이 도출되기까지의 시간과 성도들이 실제 현장에서 마주하는 시간 사이에 적지 않은 간극이 발생한다. 교인들은 이미 일상 속에서 새로운 기술과 문화, 윤리적 질문들을 경험하고 있는데, 공교회의 신학적 안내는 뒤늦게 도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때로는 응답이 마련될 즈음에 질문 자체가 달라져 있는 현실도 마주하게 된다.
이러한 간극은 세대 간 거리로 이어질 수 있다. 젊은 목회자들과 다음 세대는 변화의 흐름 속에서 보다 신속한 논의와 방향 제시를 기대한다. 반면 교회의 질서와 절차를 소중히 여겨 온 세대는 충분한 검증 없는 성급한 대응을 경계한다. 양측 모두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출발하지만, 서로의 문제의식과 우려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할 때 갈등과 오해가 생겨난다. 시대의 단절은 기술의 차이보다 마음의 거리에서 시작될 수 있다.
그러므로 지금 필요한 것은 신중함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신중함을 유지하면서도 시대적 질문에 보다 민감하게 응답할 수 있는 길을 찾는 일이다. 파회 이후에도 위임된 범위 안에서 긴급한 사안에 대해 연구와 논의를 활성화할 수는 없는지, 위원회 운영과 보고 체계를 보다 효율적으로 개선할 수는 없는지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장로교 정치의 원리를 약화시키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그 정신을 오늘의 시대 속에서 더욱 충실하게 구현하려는 노력이다.
그러나 오늘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신중함을 시대적 책임과 연결하는 지혜이다. 신학적 분별을 잃지 않으면서도 변화하는 현실에 적실하게 응답하는 총회, 세대 간의 이해와 협력을 넓혀 가는 총회가 될 때 교회는 더욱 건강하게 미래를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 신중함을 지키면서도 응답의 속도를 회복하려는 용기, 지금 우리 총회에 필요한 것은 바로 그 용기일 것이다.
출처 : 기독교개혁신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