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사역으로 지칠 때 잘못된 해결책
교회 사역에 오래 몸담은 사람 중에서 무기력함을 느끼거나 크고 작은 스트레스를 전혀 받지 않은 사람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원래 모든 일이 그렇다. 어느 정도 수고와 노력, 희생을 요구한다. 그 일을 잘 해내려면 자기를 절제하고 시간, 재능, 물질 등의 자원을 규모 있게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그 과정에서 크고 작은 압박과 부담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그 부담을 해소하기 위하여 자책과 회피라는 잘못된 해결책을 찾는다.
①자책: 번아웃에 빠진 성도는 맡겨진 일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고 느끼는 자신을 자책하기가 쉽다. 애초에 자신처럼 부족하고 연약한 사람이 주님을 위하여 이 일을 맡은 것이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교회 사역을 통하여 마땅히 유익을 누려야 할 성도들에게 자신은 괜히 피해만 끼쳤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힌다.
마르다가 그렇게 반응했다는 기록은 없지만, 분주한 마음으로 불평한 마르다에게 대입해 보면, 그 상황을 해결하기 위하여 그녀가 이렇게 자책할 수 있다는 말이다: ‘나 같은 사람이 이렇게 많은 사람을 접대한다는 것 자체가 잘못된 거였지, 다시는 예수님과 그 일행을 초대하지 말아야겠다. 나는 그들에게 피해만 끼쳤어.’ 엘리야도 무기력과 우울증에 빠져 이렇게 부르짖었다: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왕상 19:4). 자신에게 크게 실망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자신에게 합당한 은사와 분량을 따라 그리스도와 교회를 섬기겠다는 건강하고 정직한 자기 평가가 아니다. 무력함과 죄책감에 따른, 섣부르고 잘못된 판단이다.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에게 성령을 통하여 은사를 주셨다. 그 사실은 우리가 이 교회를 섬길만한 충분한 영적 재능을 받았고, 우리 각 사람이 이 교회를 세우는 데 반드시 필요한 지체라는 말이다. 내가 바라는 만큼,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섬기지 못해서 생긴 번잡한 마음 때문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그냥 다 놓아버리겠다고 하는 것은 엄연히 따지면 교만이고 직무 유기다. 물론, 쉼이 필요할 때가 있다. 사역지를 바꾸거나 분량을 조절할 필요도 있다. 하지만, 그것도 결국 하나님을 더 잘 섬기고 싶은 순전한 목적과 동기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예수님도 마르다에게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라고 말씀하셨다(41절). 부담을 줄이라는 것이지, 주님 섬기는 일 자체를 다 내려 놓으라고 권하진 않으셨다.
번아웃을 해결하려는 이들은 많은 경우 하나님을 섬기는 일 자체에서 쉬고 싶어 한다. 엘리야처럼 그냥 모든 걸 끝내고 싶은 것이다. 자책은 잘못된 해결책이다. 하나님이 당신의 영광을 위하여 계속해서 당신을 교회 안에서 사용하길 기뻐하시기 때문이다.
②회피: 번아웃을 해결하는 두 번째 잘못된 방법은 굉장히 교묘한 오류를 담고 있다. 바로, 주님과 교회를 분리하는 것이다. 나는 주님을 섬기고 싶은데 교회를 섬기느라 그럴 수 없다는 생각, 교회가 나에게 요구하는 것을 충족시키느라 주님을 제대로 섬길 수 없다는 생각이다. 교회에서 상처받거나 실족하여 더 이상 교회에 나가지 않는 ‘가나안 성도’에게서 이러한 오류를 많이 발견할 수 있다.
물론 교회의 리더십이나 그 리더십이 창조한 교회 문화가 지나치게 강압적이라서 섬김과 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것을 신실하지 못한 것으로 취급하고, 합당한 이유로 쉬는 것조차 용납하지 않으며, 심지어 교회 사역에 얼마나 충성하느냐에 따라 구원 여부를 판단하는 비참한 사역 현장을 경험한 이들도 있다. 그들은 교회 사역이 너무나 벅찬데도, 오히려 교회가 요구하는 만큼 해내지 못하는 자신을 자책하고, 교회의 착취와 억압이 잘못됐다는 걸 알면서도 쉽게 빠져나오기 힘들어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