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은 어느새 사회의 특별한 기술이 아니라 일상적인 도구가 되었다. 기업과 학교뿐 아니라 교회에서도 주보 문구, 행사 안내, 회의록, 교육 자료, 설교 요약 등에 AI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목회 현장에서 AI를 사용해 본 사람은 그 편리함을 쉽게 부정하기 어렵다. 몇 시간 걸리던 자료 정리가 짧은 시간에 끝나고, 막연했던 생각이 문장의 형태로 정리되기도 한다. 인력과 재정이 부족한 작은 교회에는 더욱 실제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기술이 유용하다는 사실만으로 그 사용이 곧 선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교회는 세상이 사용하는 기술을 단순히 뒤따르는 공동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목회자가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은 “AI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아니다. “이 기술을 사용하는 일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교회를 세우는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 이 질문이 빠지면 AI는 목회를 돕는 도구가 아니라 효율과 성과를 추구하는 또 하나의 우상이 될 수 있다.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 고린도전서 10장 23–24절
AI를 바르게 이해하려면 먼저 창조주와 피조물의 구별을 분명히 해야 한다. 하나님만이 창조주시며,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피조물이다. AI는 인간이 피조 세계의 재료와 지식을 사용하여 만든 기술이다. 아무리 자연스럽게 대화하고 감정을 이해하는 것처럼 답하더라도, AI는 영혼이나 양심을 가진 인격이 아니다. 하나님을 믿거나 사랑할 수도 없고, 죄를 회개하거나 성령의 인도를 받을 수도 없다.
이 구별은 목회에서 매우 중요하다. AI는 성경에 관한 문장을 만들 수 있지만 말씀을 믿지는 않는다. 기도문을 작성할 수 있지만 하나님께 기도하지는 않는다. 상담에 필요한 질문을 제안할 수 있지만 성도의 고통을 함께 짊어지지는 않는다. 설교문과 비슷한 글을 만들 수 있지만 한 교회를 맡아 눈물로 기도한 목회자의 책임을 질 수는 없다.
그러므로 AI가 인간보다 빠르게 정보를 처리한다는 이유로 인간보다 우월한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존엄성은 지능이나 생산성에서 나오지 않는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존귀하다. 목회자는 성도를 처리해야 할 정보나 관리해야 할 대상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AI는 사람을 섬기기 위해 사용되어야 하며, 사람을 대신하거나 평가하는 주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개혁주의 신학은 기술의 가능성뿐 아니라 기술을 사용하는 인간의 죄성도 살피게 한다. AI의 위험은 기술 안에서만 생기지 않는다. 더 적은 수고로 인정받으려는 마음, 자신의 능력을 과장하려는 교만, 다른 사람의 글을 자신의 것처럼 사용하려는 욕망, 책임을 회피하려는 태도가 AI와 결합할 때 문제가 발생한다.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 디모데후서 2장 15절
목회자가 AI가 만든 설교문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고 자신의 설교처럼 전한다면, 문제는 단순한 기술 사용에 있지 않다. 그것은 말씀을 가르치는 책임을 다른 곳으로 넘기는 일이며, 회중에게 자신의 수고와 묵상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 정직의 문제이기도 하다. AI가 잘못된 성경 구절이나 존재하지 않는 신학자의 말을 제시했을 때 그대로 사용하는 것 역시 “AI가 그렇게 답했다”는 말로 책임을 피할 수 없다.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새로운 기술이 발전한다는 사실은 감사할 일이다. 그러나 섭리는 모든 사용을 허용하는 면허가 아니다. 돈과 권력과 언어도 하나님의 통치 밖에 있지 않지만, 인간은 그것들을 선하게 사용할 수도 있고 죄의 도구로 사용할 수도 있다. AI 역시 하나님의 말씀 아래에서 분별되어야 한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은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이 고백에 따르면 목회자의 AI 사용 목적은 단지 일을 빨리 끝내거나 더 많은 콘텐츠를 생산하는 데 있을 수 없다. 교회가 커 보이게 하거나 목회자의 능력을 돋보이게 하는 것도 최종 목적이 될 수 없다. AI가 절약해 준 시간은 더 많은 자료를 만드는 데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깊이 연구하고, 기도하며, 성도를 만나고, 아픈 이웃을 돌보는 데 사용되어야 한다. AI로 업무는 줄었지만 목회자와 성도의 만남도 함께 줄어든다면, 우리는 기술을 선용했다고 말하기 어렵다.
발체: 목회 AI 연구소 백형진 목사(안양선민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