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 교회를 좌지우지하는 것은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담임목사(the pastor)를 전문적인 교육과 훈련을 받은 거룩한 사람으로 여겨 성도의 한 사람으로 보지 않고 교회를 혼자 다스리고 주장하도록 하는 것은 아주 비성경적인 생각이다. 래드마커(Earl D. Radmacher)는 계속해서 교회의 리더십이 한 사람의 목자에게 주어졌을 때 생기는 문제점들을 장로들이 나누어 맡았을 경우와 대비해 가면서 설명한다.
“일반 성도들은 먹고 사는 일로 너무도 바쁘기 때문에 교회 일에 신경 쓸 시간이 없다. 그래서 교회 운영에 관한 대부분의 일이 담임목사에게 맡겨진다. 이것은 목사 자신에게도 좋지 않고 교회에도 유익하지 않다. 왜냐하면 목사 혼자 모든 일을 독단적으로 행하도록 함으로써 독재적인 힘의 맛을 즐기도록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권력에 대한 유혹을 막는 장치로 하나님이 복수 장로 제도를 주셨다고 믿는다. 동등한 힘을 가진 사람들에 의한 견제와 균형의 개념이 사도 베드로가 장로들에게 말하였던 것과 같은 가장 바람직한 자세를 갖도록 만들어 준다.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 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며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벧전 5:2-3).
공동 목회 방식은 순수한 마음으로 동료 관계를 유지하면서 긴밀하게 서로를 책임져주는 동역자 관계(이러한 관계는 대부분의 목사들이 어떻게 하든 피하려고 하는 것임)를 만들어 줄 뿐만 아니라, 목자로 하여금 자신의 맡은 바 일을 책임있게 감당하도록 해준다. 우리 모두 마찬가지지만 교회의 지도자들도 게으르기도 하고, 자주 잊어버리기도 하고, 두려워하기도 하고, 그 맡은 바 책임을 다할 수 없을 만큼 바쁘기도 하다. 그래서 목회 사역에는 서로 책임을 묻고 대답해 줄 동역자가 필요한 것이다. 운동 경기의 코치들은 선수들이 함께 훈련하는 것이 서로를 밀어주어 결국 좋은 성과를 거두게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누군가 옆에서 같이 뛰어주는 사람이 있을 때 선수는 좀더 힘을 쓰고 좀더 빨리 달리게 된다. 하나님의 일도 마찬가지다. 바로 그것이 주께서 제자들을 둘씩 짝지어 내보내셨던 이유이다.
(2) 동료 의식을 갖는 지도 체제
내 생애 가운데 가장 즐거웠던 것 중 하나는, 헌신된 목자 장로들과 함께 교회의 일을 나누어 맡으며 목회해 왔던 일이다. 주님의 보혈로 값주고 사신 귀한 하나님의 백성들을 목양하는 목자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는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서로 갈고 닦으며, 위로하며, 조화를 이루며, 보호하며, 강건하게 해주는 삶을 살아왔다. 나는 다른 장로들과의 교제가 나의 그리스도적 성품을 성숙케 하고, 리더십 능력을 계발하고, 가르치는 사역을 감당케 함에 있어 결혼 다음으로 하나님이 가장 귀하게 쓰신 방법이라고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말할 수 있다.
분담 목회는 교회 지도자들에게 자신의 약점과 결점을 인식하고 또 그것을 극복하도록 도와준다. 누구든지 약점과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는 편향성과 전혀 보지 못하는 맹점을 가지고 있다. 소위 “치명적 결점”이 다 있다. 이러한 치명적 결점을 다른 사람들에게서는 잘 찾지만 자신에게서는 발견하지 못한다. 그것이 우리를 속이고 심지어는 파멸에 이르게도 한다. 특히 다재다능하며 그 능력이 탁월한 지도자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다. 자신의 약점을 보지 못하고 또 자신의 생각이 너무 극단적인지 살피지 못한 재능 있는 지도자들이 스스로 파멸에 이르는 경우를 보게 된다. 이는 그들에게는 자신의 문제점들을 지적해주고 고쳐줄 만한 동료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은 그러한 동료를 원치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피라미드 조직 구도에서 한 사람이 맨 꼭대기에 있을 때는 서로 간의 약점과 장점을 돌보고 균형을 맞추는 일을 할 수 없다. [섬기는 리더십]이라는 책의 저자인 로버트 그린리프(Robert K. Greenleaf)는 그의 생각을 다음과 같이 힘주어 말했다.
“혼자 피라미드 조직 구조의 꼭대기에 서는 것은 비정상적이며 부패한 것이다. 완전한 사람은 없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가까운 동료들로부터 오는 도움과 교정을 필요로 한다. 어떤 사람이 피라미드의 꼭대기로 승진하고 나면 그때부터 그에겐 동료가 없어지고 아랫사람들만 있게 된다. 아무리 솔직하고 용기 있는 부하라도 동료들에게 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상사에게 말하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정상적인 의사소통이 이루어질 수 없게 된다.”
목회자들에게는 서로를 돌보고 책임지며 함께 일하는 동료가 있어야 자신의 성품과 사역을 증진시킬 수 있다.
■ 사도의 명령
사도 바울이 이방인 교회에 장로 제도를 세우고(행 14:23), 또 열두 사도들이 유대인 교회에 장로 제도를 세운 이래(행 15:6; 약 5:14), 신약성경의 저자들은 장로 제도를 사도들이 세운 확고한 지도 체제라고 믿었다. 바울은 디도와 교회들에게 (자격을 갖춘) 장로들이 임명되기까지는 아직 온전한 교회가 아니라고 말한다(딛 1:5).
그래서 그는 디도에게 “각 성에 장로들을 세우라”(딛 1:5)고 명하였다. 바울이 그렇게 한 것은 당시 유대인 회당이나 그리스-로마 사회에서 통용되었던 감독 체제 방식에 반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바울이 당시에 장로 제도를 택한 것은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행한 것이락고 보아야 한다. 단순히 당시의 사회 규준을 따르지 않고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까지도 마땅히 따라야 할 사도로서의 명령을 디도에게 내렸던 것이다.
알렉산더 스트라우치 지음 / 김승래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