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맥아더 목사는 복음주의 지도자들과 로마 카톨릭 학자들이 1994년에 공동으로 발표한 에큐메니칼 문서 —“복음주의 신자들과 가톨릭 신자들의 연합 : 제3 밀레니엄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의 사명(Evangelcals and Catholics Together : The Christian Mission in the Third Millennium) —에 서명한 사람들과의 개인적인 접촉에 근거하여 통찰력 있는 답변을 제공해 주었다.
1994년 3월 29일, 신교와 구교 사이에는 일부 사람들이 종교개혁 이래 가장 중요한 진전이라고 평가하는 중요한 사건이 있었다. 위에 언급한 ECT 문서가 복음주의자로 널리 알려진 Pat Robertson, J.I. Packer, Os Guinness 및 Bill Bright 등 30명 이상의 양측 지도자들의 서명으로 발표된 것이다.
ECT 문서는 처음부터 그릇된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데, 예를 들어 “우리는 다음 사항을 공동으로 확증한다” 라는 제목으로 이어지는 문장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그리스도를 주와 구세주로 영접한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와 자매이다. 가톨릭 신자들과 복음주의 신자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와 자매이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선택하지 않은 것처럼 우리는 서로를 선택하지 않았다. 그가 우리를 택하여 함께하도록 부르셨다(요 15장). 서로간의 소통이 아무리 불완전하다 할지라도 우리는 그리스도의 교회는 오직 하나임을 믿는다. 그리스도가 한 분이고, 교회는 그의 몸이므로 교회는 하나로 존재한다. 연합의 길이 아무리 힘들지라도 우리는 그리스도의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아 온전한 연합을 이루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이 문서는 계속해서 로마 가톨릭 신자들과 개신교 신자들이 똑같이 “그리스도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고 밝히고 있다. 이것은 마치 로마 가톨릭 교회가 교리적으로 굉장히 양보를 한 것으로 복음주의자들의 환영을 받고 있지만, 실은 종교개혁 이래 가톨릭 교회의 중심적인 교리는 하나도 변함이 없다. 로마 가톨릭과 역사적인 복음주의 사이에 벌어지는 논쟁의 쟁점은, 사람이 오직 믿음으로만이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진리에 관한 것이다. 하지만 “복음주의 신자들과 가톨릭 신자들의 연합” 이라는 문서는 이 문제를 교묘히 피해가고 있다.
모든 내용이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지만, 이 문서의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복음주의 입장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금지조항 즉, 복음주의자들은 신실한 로마 가톨릭 교회 신자들을 신교로 개종하도록 하지 말아야 한다(22-23) 라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은 “양을 도적질”(sheep stealing)하는 행동이라는 것이다(22). 이 문서의 서명자들은 “다른 양의 우리에서 ‘개종자’를 얻으려는 시도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사명을 훼손시키는 행위”(20) 라고 믿는다. 뿐만 아니라, 양측이 서로를 개종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은 전혀 불필요한 노력이라고 동의한다. 그 이유는, “복음주의자이든 가톨릭 신자이든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성장을 위한 기회와 수단이 서로의 공동체 안에서 가능하다는 것을 확증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22).
이 외에도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또 다른 언급은 이것이다. “세상의 수많은 불신자들과 우리가 공동으로 직면하고 있는 막중한 복음사역이라는 도전 앞에서, 하나의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서로 개종시키려는 시도를 하는 것은 신학적인 면에서 합당하지도 않으며,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도 아니다.”(22-23).
가톨릭 교인으로 세례를 받았기 때문에 “거듭났다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가톨릭 교인으로 남아있도록 “충분한 자유와 존중이 주어져야만 한다”(24) 라는 언급도 있다. 다시 말해, 그들에게는 복음주의자들이 접근하지 말아야 하며, 미사와 견진성사와 같은 가톨릭 교회의 어떠한 의식이나 선행도 그들을 하나님 앞에서 받아들여지도록 하게 하지 못한다는 말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믿음으로만이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복음주의 메시지와 믿음에 행위를 더하는 로마 가톨릭의 근본적인 차이에 대해서는 교묘히 피해가면서, 이 문서는 이러한 중요한 교리적인 차이를 신자 개인의 선택의 문제로 다루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결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가톨릭주의는 정상적인 수준을 벗어난 수준으로 인간적인 선행을 강조한다. 가톨릭의 교리는, 하나님이 죄인에게 먼저 경건한 행실을 갖춘 후 그분께 나아오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있는 모습 그대로 “경건치 않은 자를 의롭게 하신다”(롬 4:5)는 진리를 부인한다. 따라서 선행은 가톨릭 교리의 기초가 된다.
하지만 성경은, 사람이 만일 행위로 의롭다 함을 받으려고 한다면, 하나님의 구원이 값없이 받은 은혜가 아니라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빚이라고 증거하고 있다(롬 4:4). 이전에 가톨릭 교회에 몸담고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증거하듯이, 로마 가톨릭의 교리와 기도문은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는 근본적인 진리(엡 2:8-9)를 모호하게 만들고 있다. 이로 인해 수많은 가톨릭 신자들이 미신적이고 종교적인 의식에 갇혀서 그리스도의 참된 복음이 주는 영광스러운 자유로부터 단절되어 있다.
믿음에 행위를 더하여 의롭다 함을 받는 기초로 삼는 것은, 바울이 “다른 복음”(고후 11:4; 갈 1:6)이라고 정죄한 바로 그 거짓 가르침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행위이다. 만일 선행과 가톨릭 교회의 여러 가지 종교 의식을 통해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다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신 것” 이다(갈 2:21).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롬3:28)
또한,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는 진리에 행위를 더하는것은이스라엘이 범한 오류를 반복하는것이다. 성경은 “의의법을 따라간 이스라엘은 율법에 이르지못했다.”(롬9:31-32)고 말하고있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그들이 믿음으로 구하지 않고 그들 자신의 행위를 의지하여 하나님의 의를 복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롬 10:3). 모든 성경을 통틀어 진리는 우리에게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교훈하고 있다.
“사람이 의롭게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갈2:16)
발체: 존 멕아더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