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기독교가 뿌리를 두고 있는 유일한 권위의 근원이다. 이 말이 이상하게 들리는가? 전에는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이 복음주의를 정의하는 특징이었다. 오늘날 복음주의자들은 이러한 원칙에서 너무 멀어져 있는 것 같다. 그 결과 복음주의는 이상한 모습으로 변질되어 있다.
사람들은 내게 “당신의 설교는 너무 교리적이고 독단적이에요”라고 비판한다. 나는 다만 진리를 전하려고 할 뿐이다. 오류를 물리칠 수 길은 오직 진리를 있는 그대로 전하는 방법뿐이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진리의 빛을 비추지 않는다면, 그들은 결코 어두움에서 빛으로, 오류 가운데서 진리 가운데로 나올 수 없을 것이며, 구원을 받지 못하고 그들의 죄 가운데 죽어 멸망하게 될 것이다.
자유주의 신학자들 중에는 어리석게도 성경을 공격하는 신진 엘리트 그룹이 있다. 그들은 새로운 성경해석학을 만들어 내면서 “겸손의 해석학”(Hermeneutics of humility) 이라는 제법 그럴듯한 이름을 붙였다. ‘Hermeneutic’ 이라는 영어 단어는 ‘hermeneuo’ 라는 헬라어에서 온 것으로 해석하고 설명한다는 뜻이다. 말하자면, ‘hermeneutics’ 은 하나의 도구이며, 성경을 풀어서 설명해준다는 기본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여기에는 또한 해석학의 기초가 되는 일정한 원칙들이 있으며, 이 원칙들은 우리로 하여금 성경의 언어와 문법, 역사적인 배경, 문맥 등 관련 사항들을 면밀히 조사하여 올바른 의미를 파악하도록 도와준다. 그러므로 올바른 성경해석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성경을 해석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겸손의 해석학’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아, 저는 겸손한 사람이기 때문에 저의 성경해석만이 옳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또 다른 사람의 성경해석이 나와 다르다고 해서 감히 그들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라고 이야기 한다.
참 관대하고 아량이 넓은 사람의 말처럼 들린다. 하지만 이것은 성경에 대해 완전히 잘못된 접근방식이다. 성경해석에는 옳은 해석과 그릇된 해석이 분명히 존재한다. 때문에 이것은 겸손의 해석학이 아니라 어둠의 해석학이다. 진리는 그릇된 것을 배제하는 절대적인 진실을 의미하며, 모든 거짓의 반대이다. 중요한 것은 참과 거짓 중 우리가 무엇을 믿느냐 하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다원론적인 현대 문화의 상대적인 가치기준에서 볼 때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오늘날의 이슈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다원론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다원론과 관용이 진리보다 더 높은 자리에서 숭배를 받는 시대이다. 사람들은 단지 기독교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것이라면 내용이 무엇이든 크게 문제를 삼지 않는다. 죄인이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오직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진리를 부인하는 로마 가톨릭 교회, 또한 그리스도의 속성과 그분의 죽으심과 같은 중요한 교리적인 가르침을 전하기보다 구원을 부와 건강에 이르는 수단으로 간주하는 극단적 은사주의는 다양성과 다원론을 신봉한다. 성경의 권위에 의문을 던지며 행위로 말미암는 구원을 지지하는 자유주의자들 역시 모든 것을 다양성과 다원론에 입각하여 복음주의의 범주 안에 포함시키기를 원한다. 왜냐하면 이들에게 있어 성경의 교리는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현상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교회는 이전부터 타협으로부터 교리적인 순결을 지키기 위해 싸워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 복음주의자들에게는 이것이 새로운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그들은 교리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으며, 교단마다 주장하는 교리는 서로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모든 것에 관대하길 원한다. 오늘날 복음주의자들이 근본적인 믿음에 명백히 반하는 것들까지 용납하며, 로마 가톨릭과 동방 정교회, 극단적인 은사주의 그리고 자유주의자들과 영적인 통합을 이루려고 노력하는 모습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다.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고후 6:14, 15, 17).
구원을 받은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절대로 타협할 수 없는 교리체계가 있다는 데 동의한다. 침례를 베푸는 방식은 다를 수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시기와 교회의 휴거의 때에 대해서는 견해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교회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경륜에 있어서도 견해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구원받기 위해 요구되는 믿음에 관해서는 절대로 타협할 수 없는 진리체계가 존재한다. 이 믿음은 모든 구원받은 성도에게 단번에 주어진 것이며,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믿어야 할 근본이 되는 진리이다. 만약 누구든지 이 믿음을 거부한다면 빛과 어두움이 함께 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는 그리스도를 위한 사역에 함께 참여할 수 없다.
참과 거짓 사이에는 분명히 경계가 존재한다는 사실보다 성경에서 더 심각하게 다루는 것은 없다. 사단과 그의 추종자들은 광명의 천사로 위장하여 이러한 경계를 무너뜨리고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들기 위해 역사한다. 그들은 완전한 어두움 속에서 흑암의 영역에 거하면서 그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기 위해 빛의 천사로 가장한다. 교회에 가라지를 심고, 교회로 하여금 능력을 잃게 만들며, 교회의 간증을 무너지게 만드는 일들이 그러한 사단의 역사의 결과들이다. 세상은 교회의 변질과 신자들의 세속적인 모습에 부정적인 영향을 받으며 실망한다.
구원을 가능하게 하는 진리체계는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보자. 우리가 믿어야 하는 진리는 무엇인가? 성경은 이러한 근본적인 진리에 대해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는가?
물론이다. 성경은 분명하고 명확하게 가르쳐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근본적인 진리를 더럽히는 자들에게 주는 엄중한 경고의 말씀도 나와 있다. 성경에는 우리가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우리를 지옥으로부터 구원해 주는 진리의 말씀이 있다. 우리는 이 구원의 복음을 반드시 믿어야 하며,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하고, 또한 이 진리를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진리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근본적인 진리를 받아들이기에 앞서 여러분이 유념해야 할 원칙이 있다. 첫째, 당신은 모든 하나님의 진리는 성경에 그 토대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인간의 전통이나 교황의 법령, 새로운 환상, 예언, 직관 등 다른 어떤 권위도 그 토대가 될 수는 없다.여러분은 성경의 권위에 대한 확신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나는 하나님의 성령님께서 진리를 사모하는 개인의 심령 속에서 역사하신다고 믿는다. 이것은 성령님의 경이로운 역사로서 성경에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느냐 하는 것이 또한 우리 자신이 참된 그리스도인인지 아닌지를 확실히 보여주는 시험대라고 생각한다. 당신은 시편 기자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가? 당신은 성경말씀에 굶주려 하는가?
발체: 존 멕아더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