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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lom aleikhem !

שָׁלוֹם עֲלֵיכֶ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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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4-06-11 20:38
하나님한테도 따지는 교회 내 경건병 환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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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창암
조회 : 1,679  

1. 의원병과 경건병

의원병이란 의사로부터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본래의 병 이외 새로운 질병에 감염되는 것을 말합니다. 즉 의사가 어떤 병을 치료하는데 그 질병은 치료가 되지만 치료 과정 중에 자기도 모르게 다른 질병에 걸리는 경우가 발생한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이 무릎관절이 좋지 않아 6개월을 통원치료를 받았는데 정작 이 환자는 이 병으로 고생한 것이 아니라 치료과정에서 포도상구균에 감염되어 발생한 조그만 종기 하나 때문에 고생을 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뜻하지 않게 발생하는 불행으로 말미암아 인생이 고단해지기도 합니다. 인간이 제아무리 잘 방비하고 예방한다고 해도 부지불식간에 찾아드는 질병의 감염을 막아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신앙인은 더욱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며 하나님께 의존해야 합니다.

의원병이 세상 사람들에게 감염되는 질병이라면 기독교인들이 잘 감염되는 질병이 하나 있는데 이 병의 이름을 경건병이라고 부릅니다. 이 경건병을 불러일으키는 녀석이 누구냐 하면 바로 ‘자기의’라는 녀석입니다. ‘자기의’ 즉 ‘에고’는 원래 자기를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자입니다. 자기라는 개체가 타인 또는 외부에 의해 간섭을 받거나 공격을 받을 때 ‘자기의’는 즉시 보호막을 치고 외부의 도전으로부터 자기를 지키는 일을 합니다. 그런데 ‘자기의’가 계속해서 외부와 단절되어 보호막 안에 거하게 되면 다른 에고와의 소통과 관계에 문제를 일으킵니다. 문제가 치유되지 않으면 당연히 병으로 발전합니다. 보통 크게 두 가지 종류의 질병으로 나누어지는데 하나는 열등감이고 하나는 우월감입니다. 열등감은 다른 에고에 대한 비교의식으로 인해 욕구불만이 쌓인 결과로 나타나는 병입니다. 반면에 우월감은 다른 에고에 비해 자신이 월등하다는 자만심의 결과입니다. 열등감은 좀처럼 불만을 외부로 표현하기를 꺼리며 뒤에서 불만을 표시하거나 간접적인 방식을 사용하는 반면에 우월감은 겉으로 불만을 직접 표시하는 특징을 가집니다.

이중 경건병은 바로 우월감이 빚어내는 질병의 대표적인 경우라고 보면 됩니다. 특히 이 병에 걸리면 매우 위험해지는데 왜냐하면 경건이라는 수건에 가리어 눈에 잘 띄지 않고 본인이 잘 느끼지 못하며, 오히려 질병으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대단한 자부심의 하나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경건병은 경건하다는 뜻의 헬라어 ‘유세베이아(eusebeia)’와 원인이라는 뜻의 '제닉(genic)'이 합성된 단어입니다. 즉 본인 스스로 거룩하다고 느끼는 것이 원인이 되어 발생한 병이라는 것입니다. 경건병자들은 대개 자신이 일반인보다 매우 경건한 신앙인이라 생각하고 자신이 의식하지 못하는 행동을 자연스럽게 행한다고 합니다. 특히 이 질병은 그리스도인만 짓는 죄로서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가장 무서운 질병입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으로부터 꾸지람과 질책을 듣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경우, 대개 경건병 환자에 속한다고 보면 됩니다.

이 병의 주요한 세 가지 특징으로는 첫째, 온갖 외양을 다 갖춘 말과 행동 속에 파묻혀 있어서 간파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하나같이 겉으로 경건의 모양을 갖추고 있고, 매우 지적이고 인격적이며 근엄한 모습으로 위장하고 있어서 사람들이 속아 넘어가기 십상입니다.

둘째, 너무나 두꺼운 자기 의라는 껍질 안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치료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수술할 때 제일 난제는 수술 부위가 명확하지 않을 때라고 의사들은 토로합니다. 경건병에도 여러 성질과 모양과 속성들이 있는데 어떤 종류의 질병인지 밝혀내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셋째, 그런데 막상 치료를 시작할라치면 극심한 저항을 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심지어 치료자를 역으로 공격하기 일쑤라는 것입니다. 처음엔 그토록 점잖은 사람이 수술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순간 돌변하여 투덜대고 씩씩거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병의 수술은 극도의 고통을 수반하기 때문입니다. 그 고통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위험한 질병을 고칠 수 있는 해법이 무엇입니까? 성경은 극단적인 두 가지 방법이 있음을 증언합니다. 하나는 칼로 도려내듯이 엄한 징계와 꾸지람을 하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오늘 본문에서처럼 비유의 방식을 통한 은혜와 설득의 방식이 그것입니다. 이중 후자의 방식을 통한 예수님의 치유장면을 들여다보기로 합니다.

2. 투덜대는 환자

오늘의 환자는 바리새인과 서기관입니다. 이들이 누구입니까? 유대인들 중 특별히 경건한 삶을 살아간다고 스스로 대단히 자부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율법을 생명처럼 여기고 율법을 지키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사람들입니다. 왜 그럴까요? 이유는 단 한 가지입니다. 그들 나름대로 철저히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어찌 나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불행히도 이들은 자기들이 경건병에 걸린 환자라는 사실을 모릅니다. 하나님의 선민으로서 모든 은혜를 받은 이들이 어찌하다 자기들도 모르게 경건병에 걸리게 되었는지 참으로 애석한 일입니다. 이들은 율법을 지킨다는 명목 하에 그 율법으로 인해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믿지 못합니다. 이들은 율법의 정신인 사랑을 내팽개치고 오직 법조항을 들고 누가 그것을 어기는지만 지켜보다가 어기는 자가 발각되면 즉시 문책하고 벌을 내리는 것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잘못된 신앙관으로 인해 옆의 사람이 피해를 입고 목숨을 잃는다면 그것이 어찌 죄가 아니 되겠습니까? 예수님은 이런 율법주의자들을 외식하는 자들이라고 질책하고 꾸짖으며 회개하라고 단호히 명하셨습니다.

오늘 예수님은 특별히 우월감에 빠진 경건병 환자들을 또 마주하고 계십니다. 그들은 지금 예수님에게 상당한 불만을 가지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율법에 금하고 있는 것들을 예수님이 태연하게 어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예수님은 안식일에 병자를 고쳐주심으로 안식일에는 아무 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율법의 규정을 무색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경건한 사람들이 절대로 접촉하지 말아야 하는 사람들, 즉 세리들과 창녀들, 죄인들과 함께 어울릴 뿐만 아니라 심지어 식사자리까지 같이 하기도 하였습니다. 이것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입장에서는 매우 불쾌한 일입니다. 이는 마치 조선시대에 어느 한 양반이 자신의 종과 겸상을 한 것과 같은 일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의 그런 행동에 대해 오늘 투덜대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15장 2절에는 우리말로 ‘수군거리다’로 번역되어 있는데 원래 이 말은 헬라어 원문으로 ‘디에공귀존’이라는 단어로 쓰이고 있습니다. 이 단어는 디아(늘, 항상)라는 단어와 공귀조(불평하다)는 단어가 합성된 것입니다. 다시 말해 끊임없이 불평하고 투덜대는 것을 말합니다.(He always complains.)

그렇습니다. 이들이 경건병에 걸렸다고 보는 결정적인 단초가 바로 이 단어에 나타나 있습니다. 이들은 스스로 경건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자신들은 더러운 죄인들과 아울려 식사를 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들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큰 죄인인가를 인식하지 못하는 경건병 환자라는 사실입니다. 이들은 율법을 지킨다는 명목에 사로잡혀 죄인들을 사랑하시고 먼저 부르시며 아끼고 보살피시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과 속성을 깨닫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그들이 오매불망 기다리고 소망해온 메시야가 이 땅에 와서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무지하였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은 메시야, 즉 그리스도가 이 땅에서 해야 할 일을 이미 예고하였습니다. 그것은 죄인들의 구원입니다. 죄인들을 부르시고 고쳐주시는 약속을 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심지어 “무당의 자식, 간음자와 음녀의 자식들아 너희는 가까이 오라”(사 57:3)고 하시며 “내가 그를 고치리라”(57:19)고 약속하셨습니다.

경건병 환자들의 특징은 하나님의 이런 자비를 버리고 자신들의 의를 내세우는 사람들입니다. 다시 말해 늘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한테도 따지는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따질 수 있는 근거가 자신의 신실한 신앙에 있다고 여깁니다. ‘나는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며 매우 경건하게 사는 사람이므로 옳지 못한 일에 대해 따질 권리가 있어‘라고 생각합니다. 이사야 58장 3절에 보면 이런 경건병 환자들의 모습을 구경하게 됩니다. 그들은 하나님에게 이렇게 따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금식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보지 아니하시며 우리가 마음을 괴롭게 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알아주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럴듯하지요. 금식까지 하며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해 애를 쓰고 있는데 왜 우리에게 고통을 주느냐고 따지고 투덜대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태도가 경건병에 걸렸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자기가 옳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자신은 매우 의로운 사람이라는 것을 보이기 위해, 나아가 자기는 항상 올바르기 때문에 남도 항상 자신에게 올바르게 대해 주어야 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다른 사람이 실수하고 허점을 보이면 즉시 따지고 추궁하는 병이 바로 경건병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자기의’를 가지고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며 죄인들과 교제하시는 예수님에게 대놓고 투덜거리는 사람들에게 둘러 싸여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이 그리스도가 왜 이 땅에 온 이유를 모르기에 이런 무지한 행동을 하는 것으로 봅니다. 그리스도는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오신 분이라는 것을 이들에게 가르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음의 세 가지 비유의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3. 세 가지 비유

세 이야기는 그리스도인에게 너무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이것의 공통점은 잃어버린 것에 대한 것입니다. 첫째 이야기는 양 100마리 중 잃어버린 양을 목자가 끝까지 찾으러 다닌다는 것이고(4-7절), 두 번째 이야기는 열 드라크마 중 잃어버린 한 드라크마의 비유이며(8-10절), 세 번째 이야기는 두 아들 중 잃어버린 한 아들 즉, 그 유명한 돌아온 탕자의 이야기입니다.(11-32절)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먼저 양과 드라크마와 아들의 중요도를 계산해 보아야 합니다. 알다시피 양(프로바톤)은 성경에서 500회 이상 등장하는 흔한 동물입니다. 구약시대에는 번제의 동물로 인기가 있는 동물입니다. 그러므로 희소가치적인 면에서 제일 뒤쳐집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이 흔한 동물 한 마리를 잃어버렸어도 주인이 찾으러 다닌다고 강조합니다. 다음으로 드라크마는 헬라의 은전입니다. 로마의 화폐인 1데나리온과 맞먹는 값인데 신약시대에 1데나리온은 하루 노동자의 품삯이었습니다(마 20:2,9,13). 참고적으로 에베소에서 불태워진 마술책의 값이 은 오만이었는데 이는 오만 드라크마에 해당하는 큰 액수(1일 임금을 10만원으로 치면 50억)입니다(행19;19). 당연히 드라크마가 양 한 마리보다 더 비중이 있습니다. 그래서 온 집안을 뒤적이며 찾는다는 표현을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진짜 의도는 세 번째 비유에 담겨 있습니다. 이 비유는 결국 두 아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두 아들이 있었는데 동생이 집을 나가 버립니다. 그럼에도 형이란 사람은 아버지의 마음과는 달리 동생을 찾으러 가지 않았습니다. 양과 돈을 잃어버리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찾아 나서는 큰 아들이 정작 자기 동생에 대해선 무심하고 냉담합니다. 이 탕자의 비유를 통해 예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자 하시는 것은 바로 큰 아들을 통해 경건병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우리 모두가 자기 자신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감염되어 있는 이 큰 아들의식, 이 무서운 유세베이아의 질병에 대해 경고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이 병에 걸린 큰 아들은 돌아온 작은 아들을 위해 잔치를 베푸시는 아버지까지 원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부루퉁하게 화가 나서 잔치에 참여하기를 거부합니다. 마치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 어떤 모임에 참가한 한 지도자가 행사 내내 볼이 퉁퉁 부어 있는 꼴과 흡사합니다. 이에 아버지가 그에게 다가가 좋은 말로 이야기를 하려 하지만 큰 아들은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큰 아들은 아버지에게 대놓고 이렇게 투덜댑니다. “아버지, 제가 얼마나 오랜 세월동안 고생하며 아버지를 섬겨 왔는지를 아시지 않습니까? 저는 아버지께 조금의 근심도 끼치지 않고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렇지만 아버지는 저를 위해 단 한 번의 잔치를 벌인 적이 없으시면서 창녀들에게 아버지의 돈을 다 탕진해 버린 동생을 위해 잔치를 벌이고 있습니다.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어떻습니까? 여러분, 이 장면이 아까 읽은 이사야 53장 3절의 모습과 너무나 흡사하지 않습니까? 또 오늘 예수님 앞에서 투덜거리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모습과 동일하지 않습니까? 사마리아를 여행하시면서 예수님이 상대했던 사람들은 주로 신앙에 있어서 이방인들이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세리와 죄인들, 더럽고 추한 사람들, 배우지 못하고 가난하고 나쁜 평판을 가진 사람들, 심지어 몸을 파는 창녀들까지 섞여 있었습니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기득권도 아니었고 주류층도 아닌 하층민들이었습니다. 주류에 속한 이들, 즉 지도자들과 권력자들과 부유한 자들과 성경학자들과 기타 경건한 자들이라 스스로 여기는 이들은 이런 사람들과 어울리는 예수님이 몹시 못마땅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큰 아들이었습니다. 동생의 잘못을 추호도 용납하지 못하는 경건병 환자들입니다. 지금 큰 아들인 이들이 투덜거리고 있습니다. 과거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투덜거림이 여기에도 섞여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몸에 전혀 감지되지 못하는 암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모릅니다. 왜냐하면 스스로 자기가 옳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지금 하나님의 법을 훌륭하게 실천하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자의식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질병입니다. 인간에게 가장 무서운 질병은 나쁜 사상입니다. 어떤 사상을 가지느냐에 따라 인간은 행동하기 때문입니다. 나꼼수 소속의 K씨의 경우를 보십시오. 그는 매사에 삐딱합니다. 그러면서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소리칩니다. 그는 자기가 무서운 질병을 가진 환자라는 사실을 모릅니다. 아마 무덤에 들어갈 때까지 그는 깨닫지 못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4. 결론

첫째,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경건병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로 너무 많은 사람들의 단점과 잘못을 지적하고 비판하고 정죄하는 일을 능숙하게 행하였습니다. 이 점을 우리는 회개해야 합니다. 먼저 나를 살펴야 하겠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성령의 내시경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내부를 관찰하고 진단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투덜거리는 것은 습관이 아니라 질병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습관은 행동수정으로 개선이 가능하지만 암 같은 질병은 수술을 해야 고쳐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경건병은 반드시 수술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같은 병에 걸린 경건병 환자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동병상련이라는 말이 있듯이 같은 질병을 겪은 사람들끼리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다정다감하게 감싸 안아주어야 합니다. 때로 수술이 필요한 경우에도 환자가 수술에 응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기술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최더함 박사: 개혁신학포럼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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