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실용주의는 포스트모던이즘(Postmodernism)과 결합하면서 현대 사회의 불확실성에 대한 유일한 대안으로 현대인들의 사고와 판단을 거의 장악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오늘 교회도 이러한 시대적 풍토병에 걸려 휘청거리며 마침내 그 거대한 실용주의의 위력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것은 아닌가? 누구보다도 교회 지도자들이 교회성장의 힘겨운 과제와 교회갈등의 거센 소용돌이 속에서 점차 소위 “거룩한 실용주의”라는 손쉬운 탈출구를 찾아 “현실”이라는 위장논리에 점점 익숙해져 가는 것은 아닌가?
한국교회 성장은 막다른 골목에 접어들었고 목회 현실은 더욱 어렵고 복잡해져 가고 있다. 오늘 우리 교회가 항해해 가는 바다는 포스트모던이즘이라는 해류가 요동치고 후기 자본주의의 소용돌이와 다원주의의 안개로 가득 차 있다. 우리 모두 이 흉흉한 바다 속에서 쉽사리 방향을 잃어버리고 그저 떠밀려갈 수밖에 없는 위기적 상황에 처해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와 교회가 혼란과 위기에 처할 수 있다고 해서 바른 길과 원리도 외면하고 세상의 조류를 따라 눈앞의 현실만을 좇아간다면 우리는 결국 돌이킬 수 없는 과오를 범하고야 말 것이다.
우리는 문제가 어려울수록 초심을 잃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벼랑 끝 상황에 처할수록 본질적인 원리와 임무를 붙들어야 하고 기본적인 윤리와 요구에 충실해야 한다. 우리의 믿음의 선조들이 누구인가! 우리도 개혁자들처럼 골리앗 같은 세상의 완고한 현실의 논리를 돌파하는 변혁의 능력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온갖 현실논리의 탈을 쓰고 나타나는 현실의 압력에 맞서 질문하고 또 질문하여 마침내 현실의 벽을 뛰어 넘고 돌파해 나가는 개혁자의 후예들이어야 한다. 때로는 진리와 거룩을 붙잡기 위해 희생을 각오하고 모든 것을 포기하는 자리에 설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 교회는 개혁교회로서의 안전한 자리매김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오늘 우리 교회의 이곳저곳에서도 하나님을 대적하여 높아진 세상의 거짓 사상과 위장논리들이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죤 맥아더(John F. MacArthur) 목사는 실용주의의 현실논리를 교회 안의 “트로이 목마”(Trojan Horse)로 비유하였다. 오늘 교회 안에 자리 잡은 그 목마 속에 감추어져 있는 복병들의 공격으로 교회가 위기에 처해있다는 것이다. 말씀에 기초한 법과 원리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개혁해 가야할 교회가 만일 어느 한 개인과 작은 집단의 이익을 위해 세속적 실용주의의 망령에 사로잡혀 모든 것을 현실논리로 바라보고 판단한다면 그 교회는 소망이 없는 것이 아닌가?
"미션"(Mission)이라는 선교 영화에서 한 종교 지도자가가 정치적 현실논리를 따라 원주민 대학살을 승인한 후에 푸념 속에 악한 세상 구조를 탓하였다. 그러나 그들에게 주어진 양심의 소리는 “아닙니다. 우리가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아니 바로 내가 그렇게 만들었습니다”라는 고백이었다. 오늘 우리도 교회 안으로 "트로이 목마"를 끌어들인 불행한 교회사의 주역들이 되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할 것이다.
이환봉 목사: 대한민국의 신학자이며 고신대학교에서 조직신학 교수를 역임하였다. 개혁주의 학술원을 창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