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15:20, 엡6:1-3 ‘은혜를 모르는 자녀’
작년에 일본에서는 고교 1학년 학생이 “머리가 나쁘다”는 부모의 구박에 격분해서 자기 부모를 살해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학생은 범행을 은폐하기 위해서 가스관을 자른 뒤, 4시간 후에 부엌 전열기에 전기가 흘러 폭발하도록 하는 치밀함을 보였고, 그렇게 하고도 근처 게임방에서 게임까지 즐겼습니다. 이렇게까지 극단적인 경우는 아니더라도, 세월이 흘러갈수록 부모의 은혜에 대해서 생각할 줄 아는 자녀들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생각까지는 아니더라도, 오히려 부모를 향해 대적하는 자녀들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아무리 세대가 달라진다고는 하지만, 배은망덕하는 자녀들이 많습니다.
중국의 어느 작가는 부모님의 또 다른 이름은 ‘희생’이라고 했습니다. 부모가 자녀를 위해서 일생동안 하는 일은 오직 희생하는 일이 아닌가? 그런데도 자녀는 그것을 모르고, 그희생을 오히려 악으로 갚는 일들이 종종 발생합니다.[공자가어 孔子家語]라는 책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옵니다. “나무는 조용히 있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질 않고, 자식은 봉양을 하려고 하나 어버이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한번 가면 다시 오지 않는 것은 세월이고, 다시는 볼 수 없는 것이 어버이다.”(樹欲靜而風不停, 子欲養而親不待, 往而不來者年也, 不可再見者親也) 나중에 철이 들어서 봉양을 하려고 하면 어버이는 기다려주지 않고 훌쩍 떠나가시는데, 시간이 지나면 다시는 볼 수 없는 존재가 어버이라는 존재인데, 그 어버이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세월만 보내고 있는 자녀! 과연 그 자녀가 잘 되겠는가?
은혜를 모르는 자녀, 부모를 함부로 대하는 자녀는 결국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이 그 사실을 증거합니다. 잠19:26 “아비를 구박하고 어미를 쫓아 내는 자는 부끄러움을 끼치며 능욕을 부르는 자식이니라” 잠30:17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녀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출21:15 “자기 아비나 어미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출21:17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은혜를 모르는 자녀, 곧 미련한 자녀는 평생 부모의 근심거리입니다. 잠10:1 “솔로몬의 잠언이라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로 기쁘게 하거니와 미련한 아들은 어미의 근심이니라” 잠17:21 “미련한 자를 낳는 자는 근심을 당하나니 미련한 자의 아비는 낙이 없느니라” 혹시 나의 미련함으로 인해서 지금 우리 부모님이 사는 낙이 없다고 한탄하시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부모 앞에서 은혜를 모르는 자녀, 미련한 자녀로 전락해서 자멸하게 되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비참한 인생이 되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육신의 생애도 단 한 번만 있는 것이고, 부모도 단 한 번만 만나는 것이라면, 우리를 위해서 모든 것을 다 희생하신 부모의 은혜를 깊이 생각할 줄 모른다면, 그 은혜에 대해 진정으로 보답할 줄을 모른다면, 그런 삶은 짐승보다 못한 삶입니다. 은혜를 모르는 자녀에게 대해서는 하나님께서도 행한대로 갚아주시고 심판하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러면 은혜를 모르는 자녀가 되지 않토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1. ‘나중에’가 아니라 ‘지금’ 부모에게 효를 다해야 합니다.
지난 주간에 아버님 묘소에 가서 벌초를 했습니다. 묘소 주변에 난 풀을 한 번 뽑을 때마다 ‘아버님, 사랑합니다’를 고백했습니다. ‘사랑합니다......’ 그렇지만 제가 그렇게 ‘사랑합니다’를 수십번, 수백번 고백한다고 할지라도 아버님은 한 마디도 들으실 수 없었습니다. 돌아오면서 후회와 반성하는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아버님이 살아계실 때, 만약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많이 했었다면, 아버님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어버이 날, 회개를 했습니다. 아버님은 저를 향해서 ‘님이여, 사랑합니다’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는데, 저는 그 때마다 목석처럼 반응이 없었습니다.
효는 연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중으로 연기해서는 안됩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다음에 아무리 울면서 곡을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생전에 효를 다하지 못하다가, 돌아가신 다음에 장례를 성대하게 치루고, 좋은 땅에다가 장사해드리고, 수시로 묘소를 찾아 인사를 드린다면, 과연 그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생전에 효를 다하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되어서 부모님이 돌아가신 다음에 묘 곁에 움막을 짓고 몇년을 같이 지냈다고 합니다. 물론 뒤늦게라도 철이 들어서 그렇게라도 돌아가신 부모님을 모신다는 것은 귀한 일입니다. 그렇지만 그 것조차도 효를 다하지 못한 자신을 위로하는 일 밖에는 되지 못합니다. 육신의 부모님은 지금 세상에 계시지 않는데, 과연 그렇게 한다고 해서 부모님이 그 효를 받으실 수 있겠습니까?
효의 가장 좋은 시기는 바로 ‘지금’입니다. 사랑의 표현도 나중으로 연기하지 말고‘지금’하는 것이 가장 좋고, 감사의 표현도 나중으로 연기하지 말고 ‘지금’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부모님은 자녀를 사랑하기 위해서도 태어나셨지만, 동시에 자녀로부터 사랑받기 위해서도 태어나셨습니다. 그런데 사랑을 주는 기간은 길지만, 사랑을 받는 기간이 너무 짧습니다. 어떤 부모님들은 자녀들로부터 한 번도 사랑을 받아보지 못하고, 자녀들로부터 욕만 얻어먹다가 돌아가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렇게 돌아가시는 부모님들은 얼마나 불쌍합니까? 우리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들이 불쌍한 존재가 되지 않토록 하려면, ‘지금’사랑을 표현해야 합니다. ‘지금’ 감사를 표현해야 합니다. 조금 더 철이 들면, 이제는‘내가 먼저’사랑을 표현하고 감사를 표현해야 합니다. ‘아버님, 감사합니다’, ‘어머니, 감사합니다’ 이 것이 진정한 효도입니다.
자녀를 향한 부모의 심정은 참 신기하고도 묘합니다. 자녀를 향해서 그렇게 사랑을 많이 주고도, 부모는 자녀를 향해서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느 집에 심방을 갔는데, 어느 분이 자신의 자녀들 이야기를 하면서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제가 죄인이지요. 다 저 때문에 그렇지요. 제가 늘 미안하죠.’ 목숨걸고 낳아주었지요. 거기에다가 정성껏 보살피며 길러주었지요. 그렇게 사랑을 쏟아붓고도 자녀에게 또 미안한 것이 부모님의 마음입니다. 이런 부모님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자녀된 자가 부모님의 마음을 위로해드려야 합니다. 언제 위로해드려야 하겠습니까? ‘지금’나중에 돌아가신 다음에가 아니라...... ‘아버님, 미안합니다’, ‘어머님, 미안합니다’......
2. 부모의 마음을 항상 즐겁게, 기쁘게 해드려야 합니다.
어버이 날은 5월 8일 하루만 아니라 1년 365일이 어버이날입니다. 어버이주일은 오늘 5월 14일만 아니라 매주일이 어버이주일입니다. 이벤트식으로 효도하는 것으로 내가 할 일을 다했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반짝효도로 그쳐서는 안됩니다. 부모님의 마음을 항상 즐겁게 해드려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이기도 합니다. 잠15:20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를 즐겁게 하여도 미련한 자는 어미를 업신여기느니라”잠23:25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부모의마음을 즐겁게 해드리는 것,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겠습니까? 부모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고독해집니다. 배우자가 먼저 세상을 떠나기도 하고, 친구들도 하나 둘씩 다 흩어지고, 직장에서 은퇴하면 만나는 사람도 적어지고...... 그러면서 어느 순간에는 혼자만 남아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심적으로 외로와지고 고독해집니다. 그러면 마음도 우울해지고 약해지고, 그래서 그 것이 심하면 우울증도 찾아오고 치매도 찾아오게 됩니다. 부모님이 이렇게 되지 않게 하려면, 자녀들이 부모님의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자녀들이 세상 일이 바쁘다는 이유로 부모님을 멀리할 것이 아니라, 바쁠수록 더욱 시간을 내서 부모님을 찾아가서 인사를 드리고 부모님의 말벗이 되어 드려야 합니다. 요새 신종 아르바이트로 ‘노인 말벗 도우미’라는 것도 있다고 하는데, 자녀들이 얼마나 부모와 같이 할 시간이 없으면 이런 직업까지 생겼겠습니까?
여러분, 부모가 가장 듣고 싶어하는 것이 자녀의 음성라는 사실을 아십니까? 부모는 자녀의 목소리를 들을 때 가장 기뻐합니다. 물론 자녀들이 ‘돈 좀 빌려주세요’, ‘이거 해주세요. 저거 해주세요’...... 이런 말을 하면, 별로 안좋아하시겠지만, 그래도 부모가 가장 듣고 싶어하는 것은 자녀의 음성입니다. 그러므로 할 수만 있으면, 아니 ‘할 수만 있으면’이 아니라 의무적으로 자녀들이 해야할 일이 있습니다. 부모님과 같이 살면 수시로 부모의 말벗, 친구가 되어 드리고, 부모님과 떨어져서 살고 있으면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반드시 전화를 드리면서 내 음성을 들려드리십시요. ‘안녕하세요. 건강하시죠. 잘 계시죠. 뵙고 싶어요. 기도하고 있어요......’부모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저 역시 부모님께 불효자 중 한 사람이지만, 살아계신 어머님께라도 불효 안하려고 가능하면 일주일 한 번 어머니 집을 찾아갑니다. 이젠 80이 넘으셔서 많이 약해지셨습니다. 사실 어머니 집에 가면 제가 어머니 집에 가서 무엇인가를 해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어머니가 더 수고하십니다. 제가 식사를 사드리는 것도 아니고, 어머니가 손수 식사도 다 차려주십니다. 제가 음식을 먹다가 잘 먹지 않는 반찬이나 음식이 있으면, ‘맛없으세요? 이번에도 실패구나. 미안하구나. 다음 번에 잘 해줄께’자신을 탓하십니다. 과일도 내주시고, 커피도 타주시고, 그리고나서 또 뭐 줄 것이 없나 찾으십니다. 어머니 집에 가서 제가 하는 유일한 일은, 제 이야기는 잠깐 하고 어머님이 하시는 말씀을 들어드리는 것 뿐입니다. 어떤 이야기는 벌써 수십번, 수백번 들은 이야기도 있지만, 처음 들은 이야기처럼 듣습니다. 제가 어머님께 용돈을 드리는 것도 아니고, 음식대접을 해드리는 것도 아니지만, 어머니의 얼굴을 한 번 뵙는 것, 말벗이 되어 드리는 것....... 이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지극히 작은 일입니다. 세상 모든 부모님이 그렇습니다. 지금도 문을 열고 놓고 자녀들이 오는 발자국 소리에 귀를 귀울이고 있습니다. 자녀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 합니다.
3. 주 안에서 부모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경외해야할 대상이 있는데, 첫째는 하나님이요, 둘째는 부모님입니다. 하나님이 경외의 대상인 것처럼, 부모 역시 경외의 대상입니다. 공경해야할 대상이고, 그 말씀에 대해서 순종해야할 대상입니다. 바울은 본문 엡6:1에서 자녀들에게 명령하기를,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고 했습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부모공경은 단지 도덕적인 차원에서만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 십계명의 차원에서 명령한 것이므로 반드시 지켜야 하며, 부모를 공경한다는 것은 곧 부모님이 말씀하시는 것에 대해서 순종하는 것을 뜻합니다. 주님이 허락하시는 범위 내에서 부모님이 하시는 모든 말씀에 대해서 자녀는 순종해야 합니다. 그것이 자녀된 도리입니다. 부모에게 순종하지 않는 것은 결국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는 것이 마찬가지입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갈수록 자녀들이 부모에게 순종할 줄을 모릅니다. 부모보다 학교를 좀 더 많이 다녔다고 해서, 배운 것이 많다고 해서, 부모의 말씀을 잘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부모의 말에 대해서 일일이 조목조목 반박을 하고, 다시는 말하지 못하도록 대듭니다. 심지어는 부모를 가르치기까지 합니다. 부모님은 구식이라고, 시대가 달라졌다고 하면서 부모를 가르칠려도 대듭니다. 참 비참한 일 아닙니까? 여러분, 내가 아무리 많이 배웠어도 부모님 앞에서는 항상 겸허해야 합니다. 내가 아무리 세상적으로 높은 자리에 올랐어도 부모님 앞에서는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그것이 자녀된 자세입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인의 최고의 경외의 대상인 것처럼, 동시에 하나님 다음 가는 최고의 경외의 대상은 부모님입니다. 아무리 배운 것이 없는 부모님이라도, 아무리 초라해보이는 부모님이라도, 아무리 무식한 부모님이라도 우리 부모님을 최고로 경외할 분으로 대하고 섬겨야 합니다. 얼마전 내한했던 하인즈 워드 선수는 고생을 많이 하고 세상사람들로부터 무시당했던 자기 어머니를 최고의 경외의 대상으로 표현하면서 자랑했는데, 그렇게 하는 것이 자녀의 마땅한 도리입니다.
나폴레옹 황제가 하루는 어느 작은 마을에서 머물게 되었습니다. 마을의 영주는 나폴레옹이 자기 마을을 쓸어버릴까봐 심히 걱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폴레옹의 마음을 좀 돌이켜 보려고 그를 만찬에 초대했습니다. 나폴레옹이 올 때 문 앞까지 나가서 깎듯이 절하고 예를 다하여 모셔들었습니다. 그런데 초대석상에 자리 배치를 할 때, 영주가 나폴레옹을 첫번째 상석에 앉히는 것이 아니라, 두 번째도 아니고 세번째 자리에 앉혔습닏. 순간 곁에 지켜보고 있던 나폴레옹의 신하가 크게 노했습니다. 그러자 영주가 나폴레옹에게 조용히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황제께서 나라에서 최고인 것처럼 우리 집에서는 우리 부모님이 최고입니다. 이 첫째, 둘째 자리는 우리 부모님의 자리입니다.” 이 말을 듣고나서 나폴레옹은 크게 감동을 받고, 영주를 용서했다고 합니다.
언제 어디서나 부모님을 마음으로부터 존경하고 최고의 경외의 대상으로 모시고 섬기는 사람은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부모를 공경하고, 부모에게 순종하는 자녀를 크게 축복하십니다. 출20:12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엡6:2-3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이제로부터는 은혜를 모르는 자녀가 아니라, 은혜를 날마다 깨닫아 가는 자녀가 되셔서, 부모님과 함께 항상 행복한 삶을 만들어가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서울 중앙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