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 개혁주의 영감론
1. 축자 영감(逐字靈感, verbal inspiration)
축자 영감(inspiratio verbalis)은 성경의 사상뿐만 아니라 글자 하나 하나에 이르기까지
영감되었다는 것인데 이레네우스, 오리겐, 제롬, 어거스틴 등의 교부들과 종교개혁자들, 그
리고 흐라퍼메이어, 카이퍼, 바빙크, 워필드 등의 개혁주의 신학자들이 주장하였다.13) 오병
세 박사도 “성경의 영감은 (단순히 사상만 아니라 그 단어들도 포함된) 축자적(逐字的=
Verbal)”이라고 하였다.14) 박윤선 박사도 축자영감 교리가 전통 교회의 성경관임을 역설하
였다.15) 이근삼 박사도 ‘성경무오설’과 ‘축자영감설’을 한국 장로교회 보수주의의 기본 사상
으로 당연하게 받아들인다.16) 그래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제 우리는 신앙과 생활의 정
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그대로 믿고, 그대로 살고 그대로 전하는 중대한 사명이
있으며, 그 성경에 계시된 진리를 쉽게 잘 알 수 있도록 간추려 놓은 것으로 역대 교회 지
도자들이 기도와 신앙경험에서 고백한 신조들을 우리가 함께 고백하면서 장로교회의 일치를
이룩해야 할 것이다.”17) 예수님은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
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고 하셨으며(마 5:18), 사도 요한은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
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고 하였다(계 22:19).
‘축자 영감’은 성경의 사상만 영감되었다고 보는 ‘사상 영감(思想靈感, thought
inspiraition)’, 그리고 성경의 사실(事實)만 영감되었다고 보는 ‘사실 영감(事實靈感,
inspiratio realis)’ 등에 반대된다.18) 사상 영감이 옳지 않은 것은 ‘글자(단어)’와 ‘사상’은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상은 글자를 통해 표현된다.19) 이와는 반대로 17세기에 단어의
모음과 구두점까지 영감되었다고 보는 견해도 등장하였다(inspiratio punctualis). 그러나 히
브리어 모음은 나중에 맛소라 학파에 의해 첨가되었으며, 구두점도 대부분 후대에 찍어 넣
은 것이므로 이러한 주장은 맞지 않다.
2. 만전 영감(萬全靈感, plenary inspiration)
‘축자 영감’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만전 영감’이 있다. 이것은 성경의 부분만이
아니라 성경 전체가 영감되었다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만전 영감’에 반대되는 것은 ‘부분
영감’이다. 부분 영감에 속하는 것으로는 ‘종교 윤리적 내용’만 영감되었다고 보는 견해와,
고유한 의미에서 계시된 말씀만 영감되었다고 보는 견해와, 엄밀한 의미에서 하나님이 하신
말씀만 영감되었다는 견해, 그리고 구원하는 믿음에 관련된 것만 영감되었다는 견해 등이
있다.20)
그러나 이러한 이원론적인 영감론은 받아들일 수 없다. 성경에서 말씀과 사실, 종교적인
것과 역사적인 것,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과 사람들이 말한 것들은 함께 엮어져 있어서 분리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21) 그렇게 하는 것은 성경의 단일성을 파괴하는 것이다. 그런 견해에
의하면 결국 성경 안에서 어느 것이 하나님의 말씀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인간 자신’이 되
고 만다.22)
예수님과 사도들은 구약의 모든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다(마 5:18-19, 눅
24:27,44, 요 10:35, 롬 15:4 등). 디모데후서 3:16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고 말한다. 이스라엘의 실패
와 불순종도 오늘날 우리를 위한 ‘거울’과 ‘경계’가 된다(고전 10:5-11). 따라서 성경의 모
든 말씀이 영감된 하나님의 말씀이며, 성경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 아니
다.
3. 유기적 영감(有機的靈感, organic inspiration)
‘유기적 영감’은 ‘기계적 영감’에 대비되는 것이다. 기계적 영감은 17세기와 18세기의 루
터파와 개혁파 신학자들 중 일부에서 있었던 견해인데, 성경의 영감에 대해 더욱 엄격하게
생각하였다. 성경은 ‘성령의 구술(口述)’로 생각하기도 하고, 인간 저자들은 ‘성령의 펜들’로
생각하기도 했다. 성경 각 책의 기록자들은 성령의 손에 있는 ‘의지 없는 도구들’로 생각되
기도 했다.23) 이런 견해를 ‘기계적 영감(mechanic inspiration)’이라 부른다. 이런 견해에서
는 성경에 있어서 ‘신적 요소’가 부각되는 반면에 ‘인간적 요소’가 무시되는 경향이 있다.
19세기말에 아브라함 카이퍼와 헤르만 바빙크와 같은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유기적 영감
(organic inspiration)’을 주장했다. 이 견해는 성경 기록에 있어서 신적 요소와 인간적 요소
를 동시에 강조하는 것이다. “성령은 성경 기록자의 전인격을 사용하셨다. 그래서 말씀하시
는 분은 항상 성령이시지만, 기록자의 특성과 개성이 죽지 않고 살아 있도록 하셨다.”24) 박
윤선 박사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개혁주의가 주장하는 유기적 영감설은, 성경 저자들이
그 저술에 있어서 자신들의 지식도 사용했다는 것이다.”25) 오병세 박사도 마찬가지로 설명
한다. “성령은 인간 저자의 인격을 통해서 역사하시면서 동시에 인간적 오류가 개입되지 않
게 하신 것이다.”26)
그러나 유기적 영감론에서는 종종 ‘신적 요소’보다는 ‘인간적 요소’가 더 부각되는 경향이
있다.27) 실제로 벌카우어는 유기적 영감론을 가지고 성경에서 인간적 요소를 말하면서 성경
비평을 받아들이는 데 사용하였다.28) 또한 화란개혁교회 신오달 교단이 1980년에 채택한
성경관 보고서(God met ons)에서도 성경의 유기적 영감을 말하면서 여러 가지 성경 비평
을 옹호하고 있다.29)
따라서 ‘유기적 영감’이란 용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학자도 있다. 흐레이다너스는
1917년에 이미 성경의 영감에 대해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였다. 만일 그렇다면 하나님의 영이 감동하기 위해 사람의 영을 ‘접촉하는 것’
도 유기적으로 이해되어야만 할 것이다. 곧 하나님의 영이 영감된 내용을 사람의 영 안에
‘집어넣는 것’도 유기적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과 사람의 영이 본질
적으로 하나일 때에만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견해에 의하면 하나님과 사람 사
이의 인격적 구별이 합당하게 존중되고 유지되고 있는가?”라고 반문하였다.30) J. 캄프하이
스 교수도 마찬가지로 성경관과 관련하여 ‘유기적(organisch)’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지 말아
야 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과 사람이라는 ‘둘 됨(twee-heid)’에 대해 아
무 것도 말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또한 거기에 대해 아무런 여지도 주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31) 구약학자 리덜보스도 J. 1926년에 행한 한 강연에서 ‘유기적 영감’이란 용어에 대
해서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도 다음과 같은 비판적인 언급을 하였다. “영감에 있어서 주
된 것 곧 초자연적 성격이 이것(‘유기적’이란 용어)에 의해 표현되지 않고 있다.”32) 벨까우
어도 초기에는 ‘유기적 영감’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으며 그 위험성을 지적하였다.33) 즉,
인간적 도구(인간 저자)를 따로 분리해서 생각하고 독립화하는 위험이다. 그래서 인간적 도
구는 신적 ‘요소’ 옆의 독자적인 ‘요소’가 되었으며, 유기적 영감의 핵심은 인간적 도구 또는
기관의 독립화가 아니라 성령이 인간적인 수단을 사용하신다는 것임을 잊게 되었다고 한
다.34) 이러한 위험성은 ‘유기적 영감’의 주된 주창자인 바빙크도 이미 지적한 바 있다. “그
러나 이 유기적 견해는 첫 번째 요소인 성령의 저자됨을 부인하는 데 많이 사용되었다.”35)
아펄도른의 판 헨더런과 펠러마 교수도 유기적 영감은 성경에 대한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는 이론은 아니라고 하면서, ‘유기적’이란 것이 영감을 위험에 빠뜨려서는 안 된다고 말한
다.36) 캄펀의 B. 캄프하이스 교수도 영감은 ‘다양성(veelkleurigheid)’을 가지고 있다고 하
면서, 획일적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유해무 교수도 ‘유기적’이란 용어의 문제점
에 대해 지적하였다.37)
따라서 우리는 ‘유기적 영감’에 대해 말할 때 신중해야 한다. 성경 중에서 역사서를 기록
할 때와 선지서를 기록할 때의 영감의 성격이 서로 다를 수 있으며, 복음서를 기록할 때와
서신서를 기록할 때도 그 영감의 성격이 좀 다를 수 있다. 또 하나님의 계시가 직접 주어질
때에는 그것을 받는 사람의 생각이나 사상을 뛰어 넘어서, 심지어는 반(反)하여서 주어지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예를 들면, 처음에 이스라엘에 왕을 세우기를 주저한 사무엘에게 하
나님이 왕을 세우라고 타이른 것(삼상 8:4-9)이라든지, 여로보암을 책망하고 돌아가는 유다
의 선지자를 속여서 데리고 온 벧엘의 늙은 선지자에게 뜻밖의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 사건
(왕상 13:20-22)이라든지, 선지자 자신의 생각을 뛰어넘는 미래의 일을 예언한 경우 등이
있다(사 53장, 호 11:1 등). 그래서 선지자들은 자기가 예언한 것이 어느 때,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자세히 살펴보았다고 한다(벧전 1:11). 이러한 것들은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
이 하나님의 생각은 사람의 생각보다 높음을 말해 준다(사 55:9).
따라서 우리는 유기적 영감에 대해 신중하게 생각해야 하며,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어쨌든 하나님께서 성령의 특별한 역사로 사람을 도구로 사용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게 하셨다는 것을 우리는 믿어야 한다. 하나님은 사람을 그의 도구
로 완전히 사용하셨지만, 그들을 통해 기록된 성경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인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