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죄를 숨기지 말라!
모든 인간은 죄를 숨기고 가리는 것에 익숙하여, 때로는 친구를 가족을 그리고 목사를 속일 때도 있다. 또한 자기 자신을 속일 수 있음을 성경 말씀에서는 나타내고 있다. (렘17:9) 죄를 숨기는 것은 죄를 죽이는 것이 아니다. 이 땅에서는 분명 심는데로 거둔다는 것을 성경 말씀에서 가르치고 있다. (갈6:7) 죄를 숨기는 것은 자신의 위선을 연습하는 결과가 된다. 잠언 28:13절에서는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치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
죄를 숨기기보다는 죄를 자백하는 것이 죄를 죽일 수 있는 일이다. (요일1:9, 시17:1-3) 죄를 가리거나 숨기는 일은 문제를 더욱 악화 시키는 일이다. 보이지 않는 목표물을 맞출 수 없듯이 마음속에 감추거나 숨기는 죄는 죽일 수가 없다.
2) 죄를 절제한다하여 죄를 죽이는 일이 아니다!
입과 손, 몸, 그리고 눈, 귀를 죄에서 그만 둔다고 할지라도 죄를 죽이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죄의 행동을 죽이는 일은 죄를 죽이는 과정이 될 수는 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마음을 먼저 지켜야 한다. (잠4:23) 마음을 다스리고 지킨다면 행동 또한 다스리고 지킬 것이다. (약4:1-2) 그래서 우리는 죄 된 마음과 행동 둘 다 죽여야 한다.
3) 어떤 죄는 버리지만 어떤 죄는 용인하는 것은 죄를 죽이는 일이 아니다.
우리 자신이 죄와 싸우고 죄를 버린다고 생각하지만 만약 다른 죄를 용인한다면 우리는 죄를 죽이는 일이 아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아무리 작은 죄라 할지라도 하나님께는 작은 것이 아니며 영원한 지옥으로 떨어진 다는 것을 생각하야 한다. (롬6:23) 우리가 만약 정욕에 이겼다 할지라도 교만함이 마음에 있다면 죄를 죽인 것이 아니라 죄가 다른 형식으로 변화한 것이다.(요일2:16) 만약 작은 죄를 용인한다면 분명히 여러분 마음은 천천히 완악해져 갈 것이다. (히3:13)
4) 죄를 억누른 다고해서 죄를 죽이는 것이 아니다!
어떤 이들은 죄를 억제하기 위하여 약을 복용한다거나 술을 마시곤 한다.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이러한 약물을 복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이라도 자신의 죄를 억제하기 위하여 음악이나 영화 또는 취미 생활로 대처하고 있다. 그렇게 하면서도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들은 세상 적으로 카운슬링을 받기도 한다. 사람들은 죄를 다루는 것에는 매우 게으르다. 뿐만 아니라 유혹과 싸우는 것도 힘들어 한다. 될수록 가장 편하고 자신에게 힘이 안 드는 것을 찾아다니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그들은 죄와 싸우는 것을 쉽게 포기하며 끝까지 죄와 싸우지도 않는다.
그러한 그들은 죄를 억제하기 위하여 세상적인 방법 즉 운동, 영화 관람, 친구 만나기 등으로 해소하길 원한다. 때로는 신앙적으로 죄를 억제하기 위하여 전도나 말씀을 전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것으로는 죄를 죽일 수가 없다. 다윗은 시편에서 죄를 해결하는 방법을 나타냈다. (시32:3-4) 다윗과 같이 자백하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자가 하는 것이다. (행13:22) 우리 안에 있는 죄가 우리를 억누를 때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가 죄를 자백하는 길이 은혜의 길입니다. (요일1:9)
5) 죄에 대하여 잠시 승리하였다고 하여 죄를 승리 한 것이 아니다!
나는 존 오엔이 한 말이 여기에 대하여 답을 줄 것이라 생각한다.
“죄를 가끔 정복하였다고 해서 죄를 완전히 죽인 것은 아니다. 사람이 인생에서 갑자기 죄를 직면하게 되면 - 예를 들어 추문이나 악한 비극 같은 - 그렇게 된다면 그러한 일에 모든 사람들은 충격으로 다가 올 것이다. 고린도 사람들이 자신의 죄를 깨닫고(고후7:11) 그러한 충격으로 인해서 성욕이나 악한 일에 벗어난 것 같이 잊고 살 수 있지만 그러나 죄는 다시 시작하기 위하여 낮은 자세로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죄인이 어떤 재앙을 통해 고통에 직면하게 되던지 또는 죄가 들어나게 된다면 다시는 범죄하지 않을 것 같이 문제를 해결하지만 고통이 사라지면 죄는 다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6) 양심을 무시한다고해서 죄를 죽이는 것은 아니다!
죄를 죽이는 과정의 일부는 죄책감을 통해서이다. 만약 여러분의 양심이 여러분을 찌르지 않거나 반응이 없다면 죄는 아직 살아서 활성화 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어려분의 삶에서 진정으로 죄와 싸우고 죄를 죽이기를 원한다면 여러분은 말씀에 잘 훈련되어진 그리고 거듭난 양심의 소리를 잘 들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만약 여러분이 그러한 양심의 소리를 무시한다면 죄는 여러분을 넘어트릴 것이다.
양심의 소리를 성경 말씀의 진리를 통해 기능을 활발하게 하라. 여러분과 나는 양심의 소리로부터 벗어나려는 시대에 살고 있다. 전투에서 여러분의 방패를 던져 버리는 것은 죽고자 하는 것같이 양심의 소리를 외면하는 것은 같은 것이다. 몸이 아프면 고통으로 오듯이 여러분의 영혼이 아프면 양심으로 온다는 것을 잊지 말라. 만약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이라면 양심을 말씀으로 양육시키며 양심의 소리를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만약 여러분이 죄를 죽이지 않으면 죄가 여러분을 죽일 것이다.
어떻게 죄를 죽일 수 있나 - Part 1.
죄는 여러분의 적이다. 죄는 여러분을 넘어트리기 위하여 여러분의 깊숙한 곳에서 여러분의 영혼을 노리고 있을 것이다. 여러분은 분명히 죄의 능력에 대하여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을 것이며 죄는 항상 여러분을 배반한다는 것도 알고 있을 것이다.
▶ 그리스도인의 의무-
사도바울이 말한 것에 여러분은 다 동의 할 것이며 또한 알 것이다. 그가 말하기를 죄를 죽이는 것은 우리의 의무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로마서8:13, 골로새서 3:5)
1)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라
2) 이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하지만 여러분이 잘 알지 못하는 것은 어떻게 죄를 죽일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죄를 죽일 수 있을지를 알려 주려고 한다.
▶ 죄에 대하여 승리할 수 있는 방법 -
첫째,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알아야 한다.
죄를 생각할 때는 성경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만약 이렇게 중요한 첫 부분을 놓친다면 여러분은 단지 자기 개선에 대하여 노력할 뿐 죄를 절대로 해결 할 수 없을 것이다.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 먼저 교리에 대하여 올바로 알지 못한 상태에서는 어떤 육적인 행동을 죽이지 못할 것이다. 사도 바울은 교리를 알았다면 분명 그 교리가 행동으로 나타냄으로 자신의 사명과, 신념, 그리고 확신 속에서 건전한 교리를 확고히 삶속에서 성립 된다고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식으로 깨닫고 나면 지혜를 통해서 삶에 행동으로 나타나게 된다. 그래서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다. 만약 어느 누가 지식을 가지고 있지만 지혜로 통해 삶속에 행동으로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그는 자신이 알고 있다고 하는 지식을 온전히 아는 것이 아니다. 또는 진리를 아는 것이 아니라 비진리를 알고 있을 수도 있다.
▶ 연구할 구절들 -
다음 구절을 보고 연구하고 진리를 깨닫기 바란다.
1) 로마서 12:1절 -
2) 갈라디아서 5:1절 -
3) 에베소서 4:1절 -
4) 빌립보서 2:1절 -
5) 골로새서 3:5절 -
6) 데살로니가전서 4:1절 -
▶ 죄에 대하여 올바른 사고방식을 가져라! -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를 통해서 죄 죽임의 교리를 확고히 한 것이다. 그리스도인으로써 죄와 힘겹게 대항하는 것을 배우기 전에 죄에 대하여 먼저 올바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로마서 6장 6-7절의 말씀을 보면: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
바울이 이 구절에서 나타내고자 하는 것은:
1) 중요한 전제 -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이며
2) 소전제 - “예수와 함께”이고
3) 결론 -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안에서 죄의 몸이 멸하였으며 죄에서 벗어나 자유함을 받은 것이다.
죄에서 자유함을 얻었다는 것을 그리스도인이라면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분명 죄를 이기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와 함께 ”라는 표현을 한 것이다.
▶ 그리스도인이 잊지 말고 간직해야 할 말씀 -
그리스도인이라면 분명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고,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었으며,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였다. “그리스도와 함께‘라는 말은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했다는 말이며 그리스도께서 이루신일에 모두 참여하다는 말이다.
자유함을 더욱 누리기 위해서는 로마서 6장 11절에 분명 나타나 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찌어다”이 구절에서 능력의 말씀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함축된 표현에는 어떻게 죄와의 싸움을 해야 하는지를 나타낸 말이다.
로마서 6장 7절에서 말한 것과 같이 그리스도인은 죄에서 자유를 얻었다. 그리고 죄에 대하여 죽은 자이다(7, 11절) 그리고 그리스인도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분명 살아 있는 자이다.
▶ 질문 -
1) 죄가 잠복하고 있다할지라도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2) 당신은 죄에 대한 유혹이 있을지라도 죄에 대해 자유함을 얻은 자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3) 죽은 것이 어떻게 힘이 있으며 적과 싸우겠는가?
여러분이 보는 시각이 달라지기를 바란다. 그래서 바울이 12절 말씀에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노릇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죄는 정복해야 할 적이다. 여러분들의 삶을 여러분들의 권력으로 여러분이 지배하지 말라!
이것이 죄를 죽일 수 있는 중요한 첫 단계이며, 죄에게 절대로 능력을 부여해 줘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의 능력으로 여러분이 주권을 잡고 여러분이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생각해야 한다. 여러분은 희생자들이 아니다. 여러분 자신을 패배시키는 것이 아니라 죄를 패배 시켜야 한다. 죄가 겁을 먹고 있으며 떨고 있는 것을 사로잡기만 하면 된다.
▶ 그리스도인들이 가지고 있는 잘못된 사고방식 -
하지만 우리는“죄가 왜 이렇게 힘이 강할까?”라고 생각하고 있다. 왜냐하면 인간은 벌써 죄에 대한 승리자가 아닌 죄에게 사로 잡혀있다는 생각이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종으로 의롭다는 생각 보다는 죄의 종이라는 부분이 더 생각 속에서 익숙하기 때문이다. 만약 여러분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자신들을 정녕 올바로 안다면 여러분은 죄의 능력을 파헤칠 수 있으며 속지 않고 죄가 삶속에서 발 딛을 곳을 찾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한번 죄에 대하여 노예가 되었었다. 그 죄는 여러분을 지배했었고 컨트롤 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리스도로 인해 여러분은 죄에 자유한 자요 또한 죽은자이다. 그리스도는 죄의 노예 시장에서 여러분을 값비싼 그리스도의 피로 사서 그리스도의 종이 되게 하셨다. 그래서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이 된 것이다.
▶ 그리스도인의 자리 -
이제 여러분의 위치는 그리스도인으로써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다. 이것을 이해하고 우리는 즐겨야 한다. 이러한 첫 부분을 통해 여러분은 죄를 죽일 수 있다.
John MacArthu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