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예배 방식과 관련하여 칼빈은 철두철미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예배드릴 것을 주장한다. 그에 의하면, "주께서는 진정한 의의 골자 전체와 그의 위엄 앞에 드리는 예배의 모든 국면과 구원에 필요한 모든 것을 그의 거룩한 말씀에 충실히 포함시키며 분명히 표현하셨다"고 한다. 그러므로 이런 문제들에 관하여서는 "주의 말씀 만"을 들어야 한다고 한다. 또한 다른 곳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우리를 인도할 지침을 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기억하자"고 하였다. 이에 비하여 "인간은 육신이기 때문에, 인간이 그의 성품에 맞는 것에 탐닉하는 것은 놀라울 것이 없다.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가운데 피상적인 의식으로 가득 찬 것을 여러 가지 발상해 낸다"고 주의를 촉구하였다. 칼빈에 의하면, 예배 의식은 우리 자신의 독창성을 표현하는 자리가 아니며, 그리스도인들은 예배의 새로운 형태를 고안해 낼 것이 아니라, 믿음의 순종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예배드려야 한다고 한다.
칼빈 이후 얼마 되지 않아 나온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1563)에서도 이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그 제 96문에서 "제 이 계명에서는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가요?"라고 묻고는, "하나님을 어떠한 방식으로든 만들지 말며, 그가 그의 말씀 안에서 명하신 것과 어떤 다른 방식으로도 그를 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라고 답하고 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있어서는 섬기는 방식도 말씀으로 제한되고 있음을 고백하고 있다.
2) 단순하고 간결하게 칼빈은 예배를 단순하고 간결하게 드릴 것을 주장하였다. 칼빈은 공중예배는 단순하고, 예절에 합당하고, 위엄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 때 말하는 예절은 "거룩한 신비에 대해서 경외를 표시하는 데 적합한 것이며, 경건의 합당한 연습이고, 적어도 예배 행위에 합당한 장식이 될 것"이라고 한다. 이에 비하여 당시 카톨릭 교회에서의 예배는 "연극적인 도구들"을 사용한 것으로서 거기에는 "아름답고 사치스러운 가면만이 있을 뿐 유익이나 결실은 하나도 없다"고 말할 뿐 아니라, "그 의식들은 무익하기 때문에 너절하며 ... 화려한 허식으로 보는 사람들의 눈과 귀를 속이므로 기만"이라고 비판한다. 칼빈은 "우리가 세우려는 질서는 일시적인 호화로움에 불과한 너절한 의식이 아니라, 모든 혼란과 야만성과 불순종과 소란과 분쟁을 제거하는 조치를 의미한다"고 하였다.
칼빈은 예배의 세부사항에 있어서는 교회의 유익과 사랑의 판단에 따라 행할 것을 권하는데, "인간이 만들기는 했으나 전적으로 하나님에게서 온 법들만을 인정한다"고 하였다. 칼빈은 "주께서는 진정한 의의 골자 전체와 그의 위엄 앞에 드리는 예배의 모든 국면과 구원에 필요한 모든 것을 그의 거룩한 말씀에 충실히 포함시키며 분명히 표현하셨다"고 하며, 이런 문제들에 관하여서는 "주의 말씀만"을 들어야 한다고 하면서도, "그러나 외형적인 규율과 의식에 대해서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자세히 명령하려고 하지 않으셨다"고 한다. 그는 그 이유로 "이런 일은 시대의 형편에 의존한다는 것을 아시고 한 형식이 모든 시대에 적합하다고 보지 않으셨기 때문이다"고 설명하였다.
3) 자의적 예배는 절대 금물
예배와 관련하여 무엇보다도 먼저 칼빈이 제기한 것은 소위 '자의적 예배'의 문제이다. 칼빈은 종교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한 그의 논문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어떤 열심을 구실로 삼을 수 있다면 어떠한 행함일찌라도 하나님께서는 충분히 가납하실 것이라는 확신이 만인들의 골수에 스며들어 있다!"고 탄식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지 않고 잘못된 확신에 근거한 예배가 편만해 있는 현상을 언급하였다.
그에 의하면, 소위 "제 멋대로의 예배"는 전적으로 헛된 것임에도 사람들은 그것에 온갖 정성을 쏟고 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과 기뻐하신 것에 주목하는 대신 자기들 기분에 맞는 방법으로 몰두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는 요한복음 주석에서 예배와 관련하여 말하면서, "사람이 하나님의 명령이나 말씀이 없이 자기의 의사에 따라 인도함을 받을 때는 오류를 범할 수밖에 없음을 알 수 있다. 이른바 좋은 의도라 할 지라도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이라 하였다.
예배와 관련된 고전적인 본문인 요 4:23-24에서는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칼빈은 "그럼 율법 아래서의 예배는 신령하지 않았던가?"라고 묻고는, "비록 율법 아래서 행해졌던 하나님께 대한 예배가 신령한 것이었다 해도, 그 예배는 수많은 외적 의식에 싸여 있었기 때문에 거기에는 육에 속하고 땅에 속한 냄새가 배어 있었다"고 답하며, "우리는 율법 하에서의 예배가 본질상으로는 신령한 것이었으나, 그 형식에 있어서는 육적이고 세상적인 것이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고 하였다. 칼빈은 신령한 예배를 "옛날 예식의 덮개를 벗겨버리고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 중에서 신령한 것만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하며, 하나님을 예배하는 진리는 "성령 안에 있는 것이라 하였다.
칼빈은 골로새서 2:23에 나오는 "자의적 예배"를 해설하면서, "사람이 하나님의 명령이 없이 자기 자신의 의지를 택해서 자의적으로 숭배하는 것을 말하고자 한 것"이라고 하면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가 자기의 생각대로 판단해서는 안 되는 것은 모든 거룩한 사람들에게 있어서 기본 원리일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우리를 기쁘게 해 주는 방법으로 합당한 경배를 드릴 수가 없다는 것은 기본적인 사실"이라고 말한다. 잠 3:5을 인용하면서 예배와 관련하여 "우리는 단순히 하나님께만 그의 말씀을 따라 겸손히 순종해야 할 책임을 가지고 있으므로 '자기의 명철이나 기타의 것들을 의지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도 역시 기본원리"라고 말한다.
4) 소위 '자의적 예배'에 관한 코드레이의 견해
이 문제와 관련하여 우리는 17세기 개혁신학자들의 귀한 견해들을 존중하지 않을 수 없다. 17세기 개혁신학자 다니엘 코드레이는 자의적 예배를 미신이나 이단만큼 심각하고 신중하게 다룰 것을 주장한다. "옛말에 '이단을 공박함에 있어서는 어느 누구도 침묵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미신과 자의적 예배에도 잘 적용되리라 생각한다. 이단은 하나님의 진리에 대항하는 범죄요, 미신과 자의적 예배는 하나님 예배에 대항하는 범죄이다.
코드레이는 자의적 예배를 미신과 거의 동등시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구약에서는 말씀에 대한 첨가라고 하였고, 신약에서는 사람의 교리나 전통, 자의적 예배와 미신이라고 하였다. 일반 종교에 있어서 부족함이 불경이라고 일컬어지듯이, 과다함은 그것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으로서 미신이라고 일컬어진다." 또한 그는 자의적 예배에 해당하는 다양한 예들을 열거하고 있다. "보다 엄격하게 자의적 예배라고 불리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예배를 결코 하나님에 의하여 명해진 것에 두는 것이 아니라, 단지 고안해낸 것들에나 사람의 제도에다 두는 것이다.
이에 대한 예는 교황주의자들에게서 넉넉히 볼 수 있는데, 미사에서의 희생제사와 여러 가지 행위들, 은둔생활이나 수도원 생활, 고해성사, 순례 등이 그것들이며, 이것들을 그들은 하나님을 특별히 예배하는 것이라고 여기며, 그렇게 드리고 있는데, 개혁교회에 의해서는 미신이라고 정당하게 불리었다."
코드레이는 특히 자의적 예배를 제 2 계명과 연관시키고 있는데, "불법적 예배 혹은 명해지지 않은 예배의 경우는 제 이 계명과 연관하여 언급되었다."고 한다.
5) 우리 시대의 반성 우리 시대는 '자의적 예배'라는 이 문제와 관련하여 심각한 반성을 요하고 있다. 칼빈이 그렇게도 비판하였고, 칼빈 이후의 17세기 신학자들이 그토록 주의를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예배 모습을 보면 우리에게 언제 그런 논의가 있었느냐는 듯이 보인다. 개혁교회의 예배 원리를 따라서 하나님께서 하라고 말씀하신 대로 예배하기를 원하는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회복되지 않으면 헛 된 예배를 드리고 있는것이다. 부활절, 성탄절과 같은 절기 예배는 말할 것도 없고, 각종 이름을 붙인 예배 들(열린 예배, 젊은 예배.....) 구약에서 힌트를 얻어 신학적 여과도 거치지 않은 채로 재현하는 예배 의식이나 복장 등이 현저한 예가 될 것이다.
출처. 개혁신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