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이 없는 거룩은 없다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싸워야 하는 영적 전쟁이 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전쟁에 대해서 모르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 전쟁은 세상이 이제까지 보아 온 여느 전쟁보다 실제적인 전쟁이다. 무엇보다 이 전쟁의 결과는 가공할 만한 분명한 결과가 따른다. 영적 전쟁의 결과는 영원히 돌이킬 수 없다. 참된 거룩의 본질을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전쟁의 사람”이라는 사실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삼상16:18,출15:3).
1. 참된 기독교는 싸움이다
세상에는 참되고 진정한 기독교 신앙이 아닌 많은 것들이 종교라는 이름으로 통용되고 있다. 1800년 전에 기독교 신앙이라고 불렸던 것은 이런 것과는 달랐다. 수많은 사람들이 매 주일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스스로를 그리스도인이라 부른다. 하지만 그들의 신앙에는 어떤 싸움”도 없다. 그들은 영적 분투, 노력, 갈등, 자기부인, 깨어 있음, 긴장 같은 것은 전혀 알지 못한다. 이런 신앙을 반대하는 사람을 매우 경직되고 완고한 사람이라 여긴다. 하지만 이것은 결코 성경이 말하는 기독교 신앙이 아니다. 예수께서 세우시고 사도들이 전파한 신앙이 아니다. 진정한 거룩을 이루는 종교도 아니다. 참된 기독교 신앙은 “싸움”이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용사라고 불린다. 처음 회심하는 날부터 마지막 숨을 거두는 그날까지 용사로 살아야만 한다. 편하고 느슨하고 나태한 신앙으로 살 수 없다. 그리스도인 용사가 싸우는 대상은 무엇인가? 다른 그리스도인과 싸우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의 주된 싸움의 대상은 세상과 육체와 마귀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영원한 적이다. 그리스도인이 반드시 싸워야 하는 원수이다.
육체와 싸워야 한다. 회심한 후라도 우리 속에는 악을 향해 치닫는 본성이 있다. 마음은 연약하고 물과 같이 불안정하다. “깨어 있어 기도하라”(막14:38). 우리는 기도 가운데 매일 씨름하고 분투해야 한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고전9:27).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7:23-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갈5:24)
세상과 싸워야 한다. 날마다 세상이라는 강력한 원수의 교묘한 영향력에 맞서 싸워야 한다. 세상의 좋은 것들에 대한 모든 애착, 세상의 조롱과 비난에 대한 두려움, 세상에 뒤처지지 않으려는 은밀한 욕구, 다른 사람이 세상에서 하는 것처럼 하고 싶은 은근한 바람, 차지도 덥지도 않으려는 생각 등은 천국으로 가는 길에서 그리스도인을 에워싸고 있는 영적 원수들이다. 우리는 이 원수들과 싸워 반드시 이겨야 한다. “세상과 벗 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약4:4).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요일2:15).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해 그러하니라”(갈6:14).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요일5:4).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롬12:2).
마귀와 싸워야 한다. 우리의 옛 원수는 죽지 않았다. 아담과 하와의 타락 이래로, 마귀는 “땅을 두루 돌아 여기저기” 다니며(욥1:7), 사람의 영혼을 파멸시키는 한 가지 큰 목적을 이루기 위해 애쓰고 있다. 항상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아” 다닌다(벧전5:8). 우리가 다니는 길과 침실을 어슬렁거리며 우리의 모든 행실을 엿본다.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거짓말쟁이”인 그는 우리를 지옥에 보내기 위해 밤낮으로 애쓴다(요8:44). 때로는 미신에 빠지게 하고, 때로는 반역을 일으키게 하고, 때로는 이런 계략 저런 계책으로 항상 우리 영혼을 공격한다.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했으나”(눅22:31). 구원에 이르기 위해서는 날마다 원수와 맞서야 한다. 깨어 기도하고, 금식하고,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싸울 때 원수가 떠나간다(엡6:11). 매일 싸우지 않으면 무장한 강한 원수 마귀는 결코 우리 마음에서 떠나가지 않을 것이다.
영국에 살았던 지혜로운 사람 웰링턴공작의 금언을 기억하라. “전쟁 중에 적을 과소평가하고, 전쟁을 사소한 것으로 여기는 것이야말로 가장 최악의 실수다.” 성경은 말한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딤전6:12).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딤후2:3).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해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엡6:11-13).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눅13:24).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요6:27).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마10:34).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여라”(고전16:13). “선한 싸움을 싸우며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딤전1:18-19).
이 말씀들을 기꺼이 받아들이고자 하면, 여기에 위대한 교훈 한 가지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로 참된 기독교 신앙은 분투와 싸움과 전쟁이라는 사실이다. “싸움”을 터부시하고, 그저 가만히 앉아서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드리기만 하면” 되는 것처럼 가르치는 사람은 성경을 오해하고 있다. 큰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 쓰신 편지를 보면, “이기는 자”외에 그 누구도 약속을 받지 못한다. 은혜가 있는 곳에 싸움이 따른다. 신자는 용사이다. 싸움이 없는 거룩은 없다. 싸우는 영혼만이 구원받은 영혼으로 항상 드러날 것이다.
이 싸움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싸움이다.“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병사로서의 의무를 회피할 수 없다. 세상과 마귀와 육체와 평화하는 것은 하나님과 원수되는 것이다. 파멸로 이어지는 대로를 가는 것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싸우든가, 아니면 잃어버리는 상태에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느낌이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한다. 우리는 분명히 사탄과 동류가 아니다. 세상 나라의 왕들처럼, 사탄은 자기의 지배 아래 있는 자들과는 싸우지 않는다. 사탄이 우리를 공격한다면, 이는 오히려 우리가 희망이 있는 사람이라는 증거이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의 자녀에게 있는 두 가지 위대한 표지 가운데 하나를 갖게 되는 것이다. 내면의 평화뿐 아니라 내면의 싸움도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표지가 된다.
2. 참된 기독교 신앙은 믿음의 싸움이다.
그리스도인의 전쟁은 영적인 무기로 싸우는 전쟁이다. 믿음이라는 경첩에 승리가 여닫힌다. 전쟁의 성공 여부는 전적으로 믿음에 달려 있다. 기록된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전반적인 믿음은, 그리스도인 용사의 성품을 형성하는 주요한 기초이다. 지금 나의 모습, 행동, 사고, 희망, 행위는 단순한 한 가지 사실, 성경에서 분명하게 계시되고 드러난 명제를 내가 믿는가에 달려 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11:6).
교리가 없는 신앙은 존재할 수 없다. 뼈와 힘줄이 없는 몸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어떤 것을 믿지 않고서는 그 누구도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아무것도 될 수 없다. 이신론자들의 비참하고 불편한 견해를 주장하는 사람들조차 무언가를 믿는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교의학과 그리스도인의 고지식함을 비웃는 사람들조차 일종의 믿음을 갖고 있다. 믿음은 바로 참된 그리스도인이 가진 영적 존재의 중추이다. 자신이 구체적으로 믿는 위대한 원리를 마음 깊이 새기지 않고서는, 그 누구도 세상과 육체와 마귀에 대해 치열하게 싸울 수 없다. 의식하든 않든 그것은 그들 마음에 분명히 자리하고 신앙의 뿌리를 형성한다. 부유하든 가난하든, 배운 자이든 못 배운 자든, 죄와 용감하게 싸우고 그 죄를 넘어서려고 고군분투하는 사람은 마음에 자기가 믿는 분명하고도 위대한 원리가 있다고 확신해도 된다.
그리스도인 용사가 가지는 특징의 핵심과 원천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과 직분에 대한 특별한 믿음이다. 그리스도인 용사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자기를 사랑하사 십자가에 달리시고, 자기를 대신해 빚을 갚아 주시고, 죄를 다 담당하시고, 범과를 짊어지시고, 자신을 위해 다시 살아나시고, 하늘에 오르셔서 자기를 위한 중보자로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신 구주를 믿음으로 바라본다. 이런 예수님을 보고 그분께 의지하고 매달린다. 평화와 희망을 맛보고 기꺼이 그 영혼이 원수와 대적하여 싸운다. 그리스도의 임재와 기꺼운 도우심을 항상 생생하게 믿는 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인 용사가 성공적으로 싸우는 비결이다.
믿음에는 분량이 있다. 모든 사람이 동일한 정도로 믿는 것이 아니다. 심지어 같은 사람이라 해도 믿음에 기복이 있다. 깨어 죄를 대적하고 죄와의 싸움에서 오는 피곤함을 이기는 데는, 그리스도가 자기 편이고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고 확신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믿음의 방패”는 악한 자의 화전을 물리친다(엡6:16).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라고 말한 사람이 같은 펜으로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이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도썼다(고후4:16-18).
초대교회사를 펼쳐 보라.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죽기까지 믿음에 견고히 서서, 이교 황제들의 맹렬한 핍박에도 흔들리지 않았는지 보라. 세상의 지배자였던 로마 전체의 힘으로도 팔레스타인에서 몇몇 어부와 세리로부터 시작된 신앙을 없애지 못했다!
그리스도인의 용사로 살고 싶은가? 믿음을 위해 기도하라.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리고 이 선물을 구한 사람은 반드시 응답을 받는다. 기도하기 전에 반드시 믿어야 한다. 신앙대로 살지 않는 것은 믿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 용사로서 성공적이고 순조로운 싸움을 싸우고 싶은가? 항상 믿음이 자라도록 기도하라. 날마다 그리스도 안에 거하고, 그리스도와 더 가까워지고, 그리스도를 더 굳게 붙잡으라. 제자들이 드렸던 기도를 날마다 드리라.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눅1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