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교회의 설교에 신학적 기초가 결여돼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교회에서의 설교 준비와 신학교에서의 신학교육의 변화가 필요하다. 이러한 필요성은 ‘신학 없는 설교’로 인한 현대 교회의 위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 현대 교회의 신학과 설교의 위기
설교와 신학은 분리할 수 없는 유기적 관계를 가진다. 설교자가 된다는 것은 지속적인 말씀의 연구자 곧 신학 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사도바울이 디도에게 감독의 자격을 말하면서 디도서 1장 9절을 말한 것은 목회자는 건전한 교리를 유능하게 가르치고 그 가르침에 반대하는 자들을 능히 변박할 수도 있는 신학 하는 사람이어야 함을 교훈한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교부 신학자 어거스틴, 루터, 칼빈, 츠빙글리 등 수 많은 예들을 통해 교회가 영적으로 건강하고 부흥하던 시대에 목회자가 된다는 것은 곧 신학자가 된다는 것을 의미했음을 잘 알 수 있다”며 “그러나 20세기 이후 근대 사조들의 영향으로 교회는 계속 하나님의 진리의 청지기로서의 사명을 점차 축소하거나 망각해 가고 있다.
특히 수요자 중심의 소비문화와 시장경제 논리의 영향으로 교회의 사명과 목회자의 역할에 대한 급격한 변화가 요구됐다. 교회는 본래의 신학적 비전과 사역을 뒷전으로 하고 소위 시장분석에 의한 회중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급급하고, 목회자는 신학자라기보다는 임상 치료사와 경영인의 역할을 요구받게 됐다”고 지적한다.
그는 신학교에서 목회 후보자들의 목회 사역을 위한 훈련은 전문 신학자들에만 맡겨졌고, 결국 목회사역과 신학사역의 바람직하지 못한 괴리와 분리를 가져왔다. 결과적으로 신학은 점차 난해한 이론으로 변하고 교회생활은 신학적 반성과는 점차 거리가 멀어지게 됐으며, 마침내 교회의 예배와 설교에서도 신학은 외면당하게 됐다고 보고 있다.
이환봉 교수는 “종교개혁의 전통을 떠나 근대적 발상에 의해 목회자와 신학자의 역할을 분리하는 것은 특별히 교회의 설교를 퇴락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주장한다.
데이비드 웰즈는 ‘신학 실종’이란 책에서 설교를 위한 저명한 신학저널에 게재된 200편의 설교를 분석한 결과를 소개했다. 현대 강단은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히기 보다는 오히려 세속문화의 포로가 돼 가고 있으며, 현대 설교의 중심에는 하나님에 대한 관심 대신에 인간 자아에 대한 관심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
이 교수는 “오늘날 많은 목회자들이 일반적으로 교리와 신학은 오히려 현실 목회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오늘날 진보주의와 복음주의의 모든 강단에서 교리 설교 또는 교리적 원리와 연관된 설교를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현대 교회의 위기는 이러한 ‘신학 없는 설교’ 또는 ‘설교 없는 신학’에 의해 더욱 심화되어 가고 있다”며 “교회 강단과 신학교의 교단에서 설교와 신학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고 확립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 교의학과 설교의 관계
신학의 모든 분야는 신학의 통일성이라는 지평에서만 각자의 개별적 독자성을 유지할 수 있고 또한 각 신학의 목적도 성공적으로 달성할 수 있다. 따라서 모든 신학은 항상 여러 전문 분야로 나눠서 연구한 것을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를 향한 하나의 신학으로 모아야 하는 공동의 과제와 사명을 안고 있다.
“교의학은 봉사신학을 위해 교회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고, 그 하나님을 어떻게 예배하고 봉사해야 할 것인가를 확정해주는 기능을 행사할 뿐 아니라 교회가 선포할 내용을 제공하는 목회적 직무까지 수행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 교수는 “모든 신학의 본래 목적이 영혼 구원과 교회 봉사를 위한 실제적인 것이라면, 그 모든 신학 이론이 교회의 생활과 선포에 어떻게 실제적으로 적용돼야만 하느냐를 연구해야 한다. 따라서 모든 신학 과목들은 항상 이러한 실천적 지평을 상실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신학의 이러한 실천적 적용에 대한 학문적 정리와 교육을 소홀했기에 신학이론과 목회현장 사이에는 너무나 거리가 멀고 또한 교회는 많은 문제의 와중에서 바른 길을 찾지 못했다”고 분석하면서 “현대 교회의 위기는 신학의 유기적 통일성 안에서 교의학과 설교의 관계를 다시 새롭게 확립하고 정립해야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제기한다.
그에 따르면 교의학과 설교는 상호 교류하는 호혜적인 관계 속에 있다. 교의학을 통해 잘 설교(분명하고 책임 있는 선포)할 수 있고, 설교를 통해 교의적으로 잘 가르칠(건강한 교의 형성과 발전) 수 있다. 설교는 교의학의 심장과 영혼이고 교의학은 설교의 지성과 양심이다.
이 교수는 “교의학은 설교를 위한 감독과 보호의 직무를 수행한다. 즉 교의학의 임무는 성경과 설교 사이에서 교회의 설교가 철저하게 성경에 근거하며 그리고 성경이 말하는 목적과 기준에 적합하게 그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는지를 살피는 것이다. 설교는 교의학적 연구를 이끌고 가는 추진력이며, 참된 교의학적 결론에 이르게 하는 영감이다.
교리는 설교자의 직무 수행을 위한 필요에 의해 형성되고, 설교는 설교자의 임무 수행을 위한 성경의 분명하고도 확실한 가르침을 교의학적 연구에 의해 확보할 수 있다. 동시에 교리는 설교의 생명력이고 비판하고 보호하는 감독이며, 설교는 교리 연구의 추진력이고 교리 평가의 기준이 된다는 것.
“오늘 우리의 설교와 신학의 위기는 목회자의 ‘신학 없는 설교’와 신학자의 ‘설교 없는 신학’으로부터 발생한 것”이라고 제기하고, “개혁주의 교회의 역사적 전통이라고 할 수 있는 신학과 설교의 통일성과 연속성이 깨어짐으로써 오늘 우리 교회의 혼란과 위기는 더욱 심화되어 가고 있다. 신학 없는 진보주의 강단은 경험과 이성을 강조하여 신앙의 본질적 규범과 원리를 상실해 가고, 신학 없는 복음주의 강단도 감정과 정서를 앞세우면서 신앙의 핵심적 강조를 잃어가고 있다.
신학교의 연구와 교육은 목회현장의 실제적 문제를 간과하고 교회를 위한 신학의 실천적 적용을 게을리 함으로써 이미 신학적 리더십을 상실했을 뿐 아니라 점차 교회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신학자와 설교자는 상보적인 호혜관계를 힘써 견지해야 한다. 신학은 설교를 감독하고 보호해야 하며, 설교는 신학의 추진력과 평가기준이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출처 : 고신학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