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신학 (Liberation Theology)
‘해방 신학’은 보통 세 가지 유형으로 분리된다. 흑인 신학, 여성 신학 그리고 라틴 신학이다. 그러나 ‘해방 신학’하면 주로 라틴 신학을 말한다. 여기서도 라틴 해방신학을 간단히 다루도록 하겠다. 해방 신학은 기존의 서구 기독교의 신학을 전면으로 부정하며 그 출발점 혹은 전제부터 달리 시작한다. 해방 신학의 전제는 바로 사회-경제적(socio- economic) 해석 방법이다.
즉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중립성을 띠고서는 성경을 바로 해석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단지 선입관이 아니라 그 동안에 주어졌던 북미-구라파의 해석적전제와 다른 길을 가겠다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해석적 작업에 있어서 단지개념(ideas)에 그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고 한다. 즉 어떤 종류의 행동이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바로 정의를 행하는 것이라는 렘22:16을 강조하면서 진리는 그 자체가 실천적이라고 한다. 이것을 소위 프락시스(praxis
)라고 한다. 이것은 기존의 해석학이나 신학에 대항하는 개념이다.
또한 바른 신학은 이 프락시스 위에 세워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단지 전통을 수호하고 보호하는 것에 벗어나서 세상의 종으로서 세상을 바꾸는 것이 바른 신학이라고 한다. 이것은 북미-유럽의 신학적 상황을 다시 ‘상황화’하는것으로 볼 수 있다. 한마디로 orthodoxy에서 orthopraxis로의 이전을 요구하는 것이다.
해방 신학자 구티에레즈(Gutierrez)는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으므로 인간이 모든 것의 척도다”라고 주장한다. 그는 또 주장하기를 인간은 실천을 통하여 자신을 초월하게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신의 운명의 주인이요 사회에 참여할 권한이 있으며 비인격적인 구조를 거부하고 버릴 권한이 있다고 주장한다. 해방 신학자들은 기독교인들이 어떤 초자연적인 것에만 관심을 둠으로 인간의 사회적-경제적 상황을 도외시하는 것을 죄악시하기도 한다. 인간의 상황이 바로 하나님의 상황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생각은 인간의 자율성을 위한 주장에 불과하다. 그리고 심지어 해방신학자들은 만인구원설을 주장하기까지 한다. 만인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따라 결국만인이 은혜를 받고 그리스와 연합하여 구원을 얻는다고 주장한다. 또한 세속 신학과 같이 성 과 속의 구분을 거부한다. 창조 자체가 구원의 행위이라고 한다.
해방 신학자들은 또한 제1계명의 모든 거짓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명령은 불의를 받아들이는 어떠한 형태의 기독교를 섬기지 말라는 의미도 된다고 한다. 하나님은 인간 역사에서 억압받는 자를 위해 일하신다고 말한다. 구티에레즈는 “나는 스스로 있는 자”(I am who I am)라는 하나님의 칭호는 사실 “Iwill be who I will be”이라고 한다. 이 말은 하나님은 자신의 행동하심에서
그가 누구신지 밝혀진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바로 인류와 함께 그리고 인류안에 발견된다고 한다. 또한 해방 신학자들은 대부분 현대 신학의 역사적 예수 개념을 받아들인다. 예수는 바로 해방자였다고 강조한다.
주로 세가지 해방을 이야기한다. 정치적 해방, 인간의 해방, 죄의 해방이다. 죄란 이기욕이요 이웃 사랑을 거부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죄란 단순히 개인적 차원이 아니라 집합적 차원이라고 한다. 예수를 영접하는 것은 은혜를 받는 것이요,이 은혜는 죄의 근원을 제거하고 이기욕에서 벗어나게 한다고 한다.
해방 신학은 위험한 요소들을 많이 지니고 있다 하겠다. 예를 들어, 자신의 사회적-경제적 전제를 내세울 때는 그들 역시 북미-유럽의 전제와는 또 다른 편견 혹은 선입관에 사로 잡혀 있다는 것이다. 또한 진리의 실천적 의미는 맞는 것이지만 성경의 진리가 우리의 실천에 의해 좌우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프락시스가 너무 강조된 나머지 텍스트는 상관없이 행동 자체에만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무엇보다는 해방 신학의 인간 중심적 신학은 매우 위험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인간이 기준이 되기 때문에 만인 구원을 이야기하는 것이요 결국 자력 구원을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리스도의 초월성과 죄의 영적 성격을 무시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인간이 모든 것의 척도가 되는 것이 아니다. 정말 하나님의 성육신을 믿는다면 그 사건 뒤에 있는 신적 능력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다는 사실의초점은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하나님에게 초점이 두면 당연히 인간의 상황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선되어야 하는 것이다.
정승원 교수, 총신대신대원 부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