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세미나의 주제는 “설교에 신학이 필요한가?”이다. 이것은 전혀 문제될 것이 없는 너무도 자명한 원리에 대한 불필요한 질문과 문제 제기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현대 교회 강단의 현실을 바라볼 때 이 질문은 여전히 우리에게 심각한 문제가 되어 있고 또한 문제가 되어야만 한다.
그 문제의 해결을 위해 교회에서의 설교 준비와 신학교에서의 신학 교육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필요성을 “신학 없는 설교”로 인한 현대 교회의 위기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1. 현대 교회의 신학과 설교의 위기
대학교 학부과정 신학과 신입생 면접을 할 때, 우문현답을 기대하며 간혹 “앞으로 목회를 할 것인가? 신학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한다. 대부분 학생들이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지만, 사실 바라는 대답은 “둘 다 입니다”이다. 왜냐하면, 목회자가 되기 위해서 신학을 해야 하고 신학자가 되기 위해서도 목회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학원 석사과정 신입생 면접할 때는 “설교를 잘하기 위해 신학을 계속하려고 합니다”는 바람직한 대답을 듣기도 한다. 설교와 신학은 분리할 수 없는 유기적 관계를 가진다. 설교자가 된다는 것은 지속적인 말씀의 연구자 곧 신학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신학과 목회자
사도 바울은 교회를 “진리의 기둥과 터”(딤전3:15)로 선언하였다. 이것은 교회는 진리의 청지기로서 그 진리를 고백하고 상고(詳考)하며 적용해야 하는 신학적 사명을 부여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교회의 사명에 근거하여 오래 전부터 목회자들은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진리를 연구하고 선포하고 적용할 수 있는 “진리의 중매인”(truth-broker) 또는 진리에 정통한 실력자들로서 신학하는 책임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자신을 소개할 때, “내가 전파하는 자와…·이방인의 스승이 되었노라”(딤전2:7)고 말함으로써 자신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일과 가르치는 일은 서로 분리할 수 없는 사역임을 보여주었다. 또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딤후2:2)고 말함으로써 디모데에게 하나님의 진리를 정확하게 표현하고 교훈할 수 있는 신학적 교육의 능력을 갖춘 목회사역을 명령하였다. 바울은 디도에게도 감독의 자격을 말하면서 “이는 능히 바른 교훈으로 권면하고 거슬러 말하는 자들을 책망하게 하려 함이라”(딛1:9)고 한 것은 목회자는 건전한 교리를 유능하게 가르치고 그 가르침에 반대하는 자들을 능히 변박할 수도 있는 신학하는 사람이어야 함을 교훈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종교개혁 시대의 교회의 신학 교사들도 목회자들이었고, 교회의 설교자들도 신학자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루터는 「대교리문답」(1530)에서 자신을 소개하기를 “나는 교사인 동시에 설교자이다”라고 하였다. 「제네바 아카데미」의 신학 교사(Doctor)였던 칼빈은 제네바 샹 피에르 교회와 스트라스부르크 교회의 설교자였고, 성찬론 등을 둘러싼 신학논쟁의 한 축을 이루었던 종교개혁자 츠빙글리도 츄리히의 흐로스민스터 교회의 목회자였다. 그 외에도 수많은 예들을 통해 교회가 영적으로 건강하고 부흥하던 시대에 목회자가 된다는 것은 곧 신학자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였음을 잘 알 수 있다.
그러나 20세기 이후 근대 사조들의 영향으로 교회는 하나님의 진리의 청지기로서의 사명을 점차 축소하거나 포기해 가고 있다. 특히 수요자 중심의 소비문화와 시장경제 논리의 영향으로 교회의 사명과 목회자의 역할에 대한 급격한 변화가 요구되었다. 교회는 본래의 신학적 비전과 사역을 뒷전으로 하고 소위 시장분석에 의한 회중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급급하고, 목회자는 신학자라기보다는 임상 치료사와 경영인의 역할을 요구받게 되었다.
교회도 더 이상 “신학적 시도를 수용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단체”로 간주되지 않고 또한 신학적 비전이 실현되는 최우선적인 환경으로도 인정받을 수도 없게 되었다. 신학은 전문적 영역의 과제로서 신학대학의 고유한 과제로서만 이해되어지고, 교회 안에 학문적 재능을 가진 자는 교회에 소속되어 있지 않는 이름 있는 학술기관이나 신학대학로 차출되어 갔다.
신학교에서 목회 후보자들의 목회 사역을 위한 훈련은 전문 신학자들에만 맡겨졌고 결국 목회사역과 신학사역의 바람직하지 못한 괴리와 분리를 가져왔다. 결과적으로 신학은 점차 난해한 이론으로 변하고 교회생활은 신학적 반성과는 점차 거리가 멀어지게 되었다. 마침내 교회의 예배와 설교에서도 신학은 외면을 당하게 되었다.
- 한국개혁주의설교연구원 제19회 설립기념 세미나 강의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