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의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 (고후 4:16)
청소년기는 아침, 성년기는 낮, 노년기는 저녁이라고 한다. 저녁이 하루의 삼분의 일이듯, 노년은 인생의 삼분의 일로 긴 시간이다. 결코 허비할 수 없는 때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노년, 은퇴 후에도 독특하고 보람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복된 노년, 은퇴 후의 멋진 삶은 어떤 삶인가?
1. 점점 길어지는 은퇴 후의 삶
전에는 “20. 30. 20” 이었다. 20년 준비하고, 30년 일하고, 20년 은퇴 후 삶을 살았다. 그런데 “20. 30. 30”이 되더니 지금은 “20. 30. 40”으로 바뀌어 간다. 수명이 늘어 노년의 기간이 늘어난다. 보통 은퇴 후 삶에 대한 염려가 몇 가지 있다. ① 지루해서 어떻게 하지? ② 돈도 못 버는데 아프기까지 하면 어떡하지? ③ 무척 외로울 텐데..등등.
왜 이렇게 노년에 대해 두려워할까.? 다음 몇 가지 때문이다. ① 아무 쓸모없게 된다는 생각 ② 아무 낙이 없게 된다는 생각. ③ 질병의 고통이 찾아와 혹 누워서 거동도 못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 ④ 고독에 시달릴 생각. ⑤ 주변인들과 죽음으로 이별해야 하는 생각.
물론 노년은 상실의 시기이다. 젊을 때와 달리 불편함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 ①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어야 한다.② 배우자도 떠나게 된다. ③ 친구들도 하나둘씩 세상을 떠난다. ④ 건강도 약해진다. ⑤ 일가친척과도 멀어진다. 그래서 노년을 가리켜 이별을 배우는 학교 시기라고 한다. 노년은 어느 때보다 소외감과 상실감의 시기이다. 프랑스 시인 발레리는 노년이야말로 “빗살이 다 빠져버린 머리빗과 같다”라고 했다. 노년에는 누구나 기력과 정신력이 약해지고 육신의 자랑은 다 사라진다.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은 때가 노년이다. 세월은 또 얼마나 빠른가? 성경은 우리 인생길의 세월이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라고 했다(시 90:10).
그런데 고후 4:16에서는 “우리의 겉사람은 날로 낡아진다”고 한다. 동시에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라고 한다. “그러므로 낙심할 일이 아니라”고 한다. 얼마나 감사한가! 언제 우리의 속사람이 가장 많이 새로워지는가? 하나님께 기도하고 말씀을 가까이할 때이다. 주님과 깊은 영적교제를 나눌 때이다. 고후 5:17에는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노년을를 위한 놀라운 계획을 갖고 계신다. 성도의 신앙은 늙어도 쇠하지 않는다.
2. 은퇴 전과 후의 삶은 직결되어 있다
마 7:24-25은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고 하셨다. 집을 반석 위에 지어야 그 집이 견고해서 비가 오고, 물이 넘치고, 강한 바람이 불어와도 안전할 수 있다. 내진 설계도 하고, 철근도 필요한 만큼 쓰고, 날림공사하지 말고 집을 제대로 지으라는 것이다. 나중에 잘해야지 말고 지금 잘 하라는 말씀이다.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는 “우물쭈물하다 보니 결국 이렇게 되고 말았다” 고 했다. 우리는 그러지 말자. 생각보다 멋진 것이 퇴직 후의 삶이다. 좋은 점들은 이렇다.① 시간에 쪼들리지 않는다. ② 책임감에서 벗어난 자유함이 있다. ③ 가족들, 친구들과 가깝게 지낼 수 있다. ④ 욕심내던 것을 내려놓을 수 있고, 많은 것을 잃고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⑤ 하고 싶었던 일을 하면서 살 수 있다. ⑥ 세월이 흐를수록 더 많이 감사할 수 있다. ⑦ 노하우(축적된 경험)가 있다. ⑧ 시련을 통해 강건해진 자로 살아갈 수 있다. ⑨ 주님과 더 깊은 영적 교제를 나룰 수 있다. ⑩ 환난을 통해 겸손해진 자로서 은혜가 무엇인지를 알고 자신을 다듬으며 살아갈 수 있다.
그러려면 우리가 꼭 붙들어야 할 것들이 있다. 주님의 말씀이다. “내가 누군데.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할 거야!” 하지 말고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한다. 시 119:105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라”고 했다. 전12:1절은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고 했다. 갈6:7은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고 했다. 예수님은 “나더러 주여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고 하신다.
복음주의와 개혁주의는 엄밀히 말하면 똑같지가 않다. 오직 복음으로, 오직 믿음으로(롬1:17)! 얼마나 듣기 좋은가? 그런데 이러한 복음주의의 약점이 무엇인가? 오직 복음, 오직 믿음을 강조하다 보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것처럼 돼 버린 것이다. 오직 복음, 오직 믿음을 강조하던 종교개혁 당시 루터가 이끌던 독일교회는 초장기에 매우 왕성했었다. 그러나 나중에 독일의 많은 교회가 다시 천주교회로 돌아가 버렸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를 믿는다고는 하는데, 그의 삶을 보면 믿지 않는 자와 별반 다를 것이 없더라는 데 있었다.
루터는, 믿음도 있어야 되지만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약 2:17)라고 한 야고보서를 별 가치가 없는 지푸라기서신으로 보았다. 그러나 안디옥교회 성도들이 이방인들로부터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얻는 것은(행 11:26) 그냥 된 일이 아니다. 그들은 친절, 정직, 성실했다. 그리고 섬김의 삶을 살았다. 그들에게 기쁨과 평안이 있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사랑했다. 그들의 그런 모습에 붙여준 이름이 바로 ‘그리스도인’이었다.
칼빈이 목회하던 스위스 제네바도 도시 전체가 아예 거룩한 도시가 되었다. 1991년에 제네바에 가 보았다. 도심 한복판의 큰 시계점들이 진열장에 고급시계를 그대로 진열해 놓은 채 철제셔터도 없는 상태에서 주인이 퇴근한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칼빈이 목회 한 지 500년이 다 되었는데도 아직 그 도시에는 도둑이 없다고 했다. 혹시 외부에서 도둑이 오더라도 금방 잡힌다고 했다.
칼빈은 믿음도 강조하고, 동시에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도 강조했다. 이것이 칼빈주의이고 개혁주의이다. 퇴직 후의 행복은 퇴직 전 잘 보낸 시간에 대한 보상이다. 반면 퇴직 후의 불행은 내가 잘못 보낸 시간에 대한 보복이라 할 수 있다. 현역일 때 성실히 산 사람은 퇴직 후 먹고 살 걱정 없도록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신다. 늙어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어디서 어떻게 살까?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오늘 내가 주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 힘을 다해 애씀으로, 멋진 퇴직 후의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란다.
3. 은퇴 후에는 천국 소망을 가진 자답게 넉넉한 마음으로 살아야
누구나 퇴직이나 은퇴를 한다. 은퇴 후의 삶을 좀더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퇴직 또는 은퇴를 영어로 리타이어(Re Tire), 타이어를 새로 갈아 끼우는 것이라 표현한다. 그만 달리려고 타이어를 교체하는 건 아니다. 은퇴했다고 모든 것이 끝난 건 아니다.
산에 올라가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내려오는 것이다. 사실 산 정상에 있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올라갈 때보다는 내려올 때 사고의 위험이 더 높다. 과거에 내가 해왔던 일만 나의 정체성은 아니다. 보통 한번 교장 하면 죽을 때까지 교장이라고 부르고, 한번 면장은 죽을 때까지 면장이라 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긴다. 또 본인들도 그렇게 불리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은퇴 후에도 여전히 그 직책의 타성에 젖어 있곤 한다.
그러나 교장이었으니 은퇴했더라도 점잖은 처지라 집안청소하고, 쓰레기 버리고, 빨래 널고 하면 안 되는 게 아니다. 면장 했던 사람이 후일에 도지사보다 더 큰 명성을 얻으면 안 되는 걸까? 그렇지 않다. 성도는 노년에도 크고 작은 새로운 목표를 만들어서 의욕을 가지고 그 일을 해 나가야 한다. 무기력한 노인이 아니라 존경받는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 매일 기도와 성경읽기는 필수다. 긍정적 사고와 언어를 사용하라. 격려와 축복의 말을 자주하라.
갈렙은 85세에 “이 산지를 내게 주옵소서”라고 했다. (수 14:11-12)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죽을 때까지 할 일이 남아 있다. 곡식은 추수 때가, 단풍잎은 떨어지기 직전이 그리고 햇빛은 서산 낙조가 가장 아름답다. 우리의 노년도 그렇게 되기를 소원하자. 속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방향이다. 현역에 있을 때 은퇴 후를 내다보고 목표를 향해 바른 길을 걸어가야 한다.
중요한 것은 지금 매일의 삶에서의 누적이다. 내가 무엇이 되느냐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 노년은 결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때가 아니다.
이선웅 목사(남문교회 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