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세대는 사회가 만들어낸 권위에 쉽게 굴복하지 않는다. 단지 나이가 많다고, 경험이 많다고, 특정 분야에서 잘 알려졌다고 존중과 복종을 요구할 수 없다.
그들을 움직이는 진짜 권위는 말하는 사람의 인격이다. 존경할 만한 인품과 덕이 되는 말, 본이 되는 행실이 따르는 자의 말은 그들이 듣는다. 반대로 인격이 엉망이면, 아무리 뛰어난 논증이나 설득력을 가진 목소리로 메시지를 전해도 청중은 이를 쉽게 외면한다. 비단 다음 세대만 그런 것이 아니다. 설교는 설교자의 삶을 통해 선포되는 영의 양식이기 때문에, 설교자의 인격은 모든 듣는 자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E. M. 바운즈는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의 가슴에서 나오는 젖이 어머니의 생명이나 마찬가지이듯이 설교자가 하는 말은 모두 그 설교자의 됨됨이에 따라 내용과 맛이 결정된다…설교 뒤에는 사람이 있다. 사람의 전인격이 거기 있다…설교가 성숙해지낟면 그것은 그 사람이 성장하기 때문이다. 설교가 힘이 있다면 그 사람이 힘이 있기 때문이다. 설교가 거룩하다면 그 사람이 거룩하기 때문이다. 설교에 거룩한 열정이 가득하다면 그 사람이 거룩한 열정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기도의 능력>, CH북스, 16-17pp)
설교자는 자신을 먼저 돌아보고 점검해야 한다. 성령께서 조명하여 알게 하신 성경 본문에 나타난 하나님의 생각이 먼저 자신에게 적용되고 있는지 물어야 한다. 용서를 권하는 말씀을 준비하면서 혹시 나는 용서하지 못하고 여전히 미워하는 사람은 있지 않은지 생각해 봐야 한다. 만일 있다면, 강단에 올라가 준비한 예물을 주께 드리기 전에 먼저 화해하는 것이 맞다(마 5:23-24). 어떻게 설교자 자신은 마음 깊은 곳에 원망과 분노를 품고, 성도들 앞에서는 ‘주께서 우리를 용서하신 것처럼 서로 용서해야 한다’고 힘 있게 선포할 수 있는가? 신앙의 양심을 버리고 철저한 외식 주의자가 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바울도 율법을 자랑하며 외식하는 유대인들을 다음과 같이 책망했다: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모본을 가진 자로서 어리석은 자의 교사요 어린 아이의 선생이라고 스스로 믿으니 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은 가르치지 아니하느냐…”(롬 2:20-21). 설교는 먼저 설교자에게 실질적으로 적용되어야 한다. 설교자의 인격과 경험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설교라면 청중에게 아무런 변화도 일으키지 않더라도 놀랄 게 전혀 없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설교를 통하여 회중을 변화시킬 것을 기대하고 또 그렇게 하실 것을 믿는다. 설교가 아무리 오래된 커뮤니케이션 방식이고, 짧고 자극적이며 조작이 가능한 미디어에 거의 평생 노출된 다음 세대가 40-50분, 한 사람이 말로만 전달하는 설교를 견딜 수 있을까? 이를 통해 유익을 얻을 수 있을까? 의심이 생길 수도 있지만, 태초부터 ‘말씀하신’ 하나님은 과거 선지자와 사도를 통하여, 마지막 날엔 아들을 통하여, 지금은 그 모든 말씀이 기록된 성경을 통하여 말씀하신다. 설교자는 그 말씀을 회중 앞에서 전달하는 아주 중요한 책무를 맡았다. 말세에 사람들이 여러 가지 불의와 불법으로 고통받을 때, 진리가 아닌 허탄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이 듣고 싶은 것만을 찾아 들으려 할 때도, 설교자는 항상 말씀을 선포해야 한다. 그 말씀이 말세에 경건하게 살아갈 힘을 주고, 거짓에서 돌이켜 진리를 따라 살도록 방향을 제시하며, 인격과 삶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실 것을 확신하고 굳게 믿기 때문이다.
정직하게 자신을 돌아볼 때, 하나님 앞에서 또 성도 앞에서 자기 인격과 삶을 본받으라고 말할 수 있는 설교자가 얼마나 될까? 성도가 겪고 있는 문제와 짊어지고 있는 삶의 짐을 하나하나 생각해보면, 강단에서 전달되는 몇 마디 말이 정말 그들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그들이 겪고 있는 상황을 이겨낼만큼 큰 힘과 지혜를 얻게 할 수 있을까 자신이 없을 때도 많다. 하지만, 설교자의 책임은 전달하는 것까지다. 말씀의 씨를 심고 말씀의 물을 주는 것 뿐이다. 자라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하나님은 먼저, 설교자의 삶에서 그리고 회중의 삶에서 말씀으로 반드시 뜻하신 바를 이루신다. 설교자는 바로 그 확신 가운데 계속해서 성실하게 자기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잡히기 전 에베소 장로들을 모아 놓고 이렇게 말했다: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행 20:32).
다음 세대를 든든히 세워 약속하신 기업을 얻게 하실 분은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은 은혜의 말씀으로 그렇게 하신다. 설교자는 먼저 자기 삶을 변화시키는 은혜의 말씀을 경험하고, 그 말씀이 회중의 삶에 적용되기를 구해야 한다. 그 은혜의 말씀에 회중을 부탁해야 한다. 부지런히 말씀을 연구하여 하나님의 생각을 분명하게 알고 하나님의 권위를 담아 전달하는 것, 성령께서 본문을 통해 설교자에게 말씀하실 때 그것에 올바르게 반응하는 것이 설교자가 할 일이다. 그 일에 충성할 때, 하나님은 설교자를 통하여 반드시 회중을 은혜의 말씀으로 붙드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