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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충만하시기를  기도 드립니다. 

Shalom aleikhem !

שָׁלוֹם עֲלֵיכֶם


 auto
 
작성일 : 23-12-29 18:13
카톡을 통해 처리하게 되니, 때로는 두려운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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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창암
조회 : 1,249  

세상은 편리해지는 것을 발전이라고 한다. 크고 무거운 컴퓨터를 부팅과 기다림 속에 겨우 사용이 가능했던 그런 시대를 지나, 이제는 손가락 하나로 세상을 클릭하는 만능 휴대전화의 최첨단 시대를 살고 있다. 가끔은 이토록 편리한 전화기가 조지 바나가 말하는 ‘주전자 속 개구리(the Frog in a Kettle)’처럼 나를 삼켜버리지는 않을까 생각해본다.

심방, 광고, 공문, 심지어 노회의 회의까지도 카톡을 통해 처리하게 되니, 편리함도 좋지만 때로는 두려운 생각을 하게 된다. 가끔, 지나친 기능 탓에 시간과 생각을 빼앗겨 버리고는 다시 베이직 폰으로 돌아갈까 하는 그런 생각도 해보았지만, 실제로는 이 편리한 문명의 도구를 포기하지 못할 것 같다.

그러나 그러면서 또 질문해 본다. 과연 편리해지는 것만이 진보와 발전인가? 인간으로서 삶의 편리함을 거부할 이유는 없겠지만, 이것이 영적인 부분까지 침투해서 신앙의 본질을 흐리게 만드는 악성 편리주의라면 결코 용납될 수 없음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삶의 지나친 편리주의는 반드시 죄로 가득한 세속화로 나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편리주의가 영적인 부분에도 많이 침투되어 있음을 본다. 예전에는 주일성수를 신앙의 가장 기본으로 생각해서 목숨을 걸고 주일을 지켰다. 그러나 오늘날 자신의 편리를 먼저 따지며 ‘1주일에 한 번만 교회 가면 되지 않느냐, 꼭 교회 가야만 예배가 되느냐, 하나님은 어디나 계시지 않는가?’라는 사상들이 확산해가는 것을 본다. 마치, 예전에 교회마다 아주 이른 시간의 주일예배가 드려지게 된 계기가 교사 등 봉사를 해야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시작된 것이었는데, 지금은 많은 부분에서 예배를 빨리 드리고 또 다른 목적을 위해서 사용되는 예가 많음을 본다.

예배가 무엇인가? 예배는 하나님을 사랑하니까 드려지는 것이다. 그래서 예배는 결코 때우기가 될 수 없다. 그런데 주일에 일찍 드리는 예배를 ‘해치우기’ 하고서는 말한다. ‘깔끔하고 좋았고, 무엇보다 주일 시간을 여유롭게 사용하게 되어 감사하다’는 말이다. 하나님 사랑이라는 기본을 빼내어 버린 예배, 형식적인 껍데기로만 드린 실패한 예배자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몸이 교회로 오지 않는 편리한 예배를 드리겠다고 말한다. 몸을 산 제물로 주님 앞에 가져오지 못하는 예배를 드리겠다고 하는 것이다. 말세에 모이기를 힘쓰라 하셨는데, 몸을 움직여 모이지 않고 귀신도 아닌 데 몸이 없는 예배, 몸이 가지 않아도 되는 그런 교회의 예배를 생각하는 것이다. ‘꼭 내가 몸을 움직여 교회에 갈 필요가 있겠느냐? 그냥 집에서 편하게 인터넷으로 말씀을 듣고, 필요하면 헌금은 온라인으로 보내면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자기 소견을 따라 행함으로, 하나님이 받지 않으신 가인 같은 마음 없는 예배자에 불과한 것이다. 훗날, 교회에서 섬기는 봉사의 일들도, 로봇이나 돈으로 고용된 일꾼에 의해 감당하게 할지 모를 일이다.

세속화-마귀의 지혜

아마 조금 더 나아가 미래세대에는 내가 예배하는 처소도 필요 없다는 예배당 무용론에 도달할지 모른다. 극단적인 예가 될지 모르지만, 너무나 사람이 모이지 않으니 예배당에서 유행가 가수의 쇼가 펼쳐진다.

서울의 어느 대형교회는 이미 초신자를 편안하게 해주기 위해서 교회당 한쪽에 재떨이를 두었다고 한다. 구별됨의 장소로서 교회는 이미 무너져가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저들의 음성, ‘교회 가지 마라, 예배드리러 가지 마라, 편하게 편리하게 신앙생활 해라’는 결코 성령의 음성이 아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애굽에서 부르짖는 소리를 듣고 하나님께서 다시 저들을 회복시키고자, 모세를 보내어 바로 왕을 만나게 하셨다. 하나님을 섬기며 살기 원하니, 예배드리러 광야로 보내 달라고 말한다. 이에 대한 바로의 첫 번째 대답은, ‘거기까지 갈 필요가 뭐가 있느냐? 너무 멀리 가지 마라(출 8:28). 광야에 가지 말고 그냥 여기서 예배를 드려라.’ 그렇게 대답했다.

바로 왕의 대답은 마귀의 지혜이다. 광야, 구별된 장소로 가지 말고 그냥 여기 있는 자리에서 머뭇거리면서, 여기 침대 위에서 속옷 차림으로 인터넷을 켜두고 내 마음의 사정에 따라 은혜가 되는 목사님을 선택해서 아주 편안한 자세로 바로 여기서 설교 듣고 예배드리라는 것이다. 전화기에서 온갖 말씀이 다 나오는데, 불편하게 연료비 들여서 구태여 갈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예배자를 낙심하게 하는 마귀의 소리다.

결코 포기하지 않는 모세에게 바로는 다시 타협안을 제시한다.

광야에서 예배를 드리기는 드려라, 그런데 가족 모두 가지는 말고 남정네들만(출 10:11) 가라는 것이다. 남자만 가라는 것이다. 오늘날로 말하면, ‘집안의 대표자만 가면 되지 않느냐, 신앙은 개인적인데, 너만 잘 믿으면 되지, 왜 믿음을 가족들에게까지 강요하느냐?’는 것이다. ‘꼭 가족이 같은 신앙을 가질 필요가 있느냐? 때가 되면 다 믿겠지, 너무 어렵게 말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것은 사단의 교묘한 타협의 소리이다.

내가 가진 그리스도의 신앙이 영원한 생명의 유일한 길이라고 할 때, 우리는 사랑하는 가족에게 강요 이상의 강요를 넘어, 강권함으로 저들과 함께 주님의 나라에 가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제물 없이 예배드리라

거듭된 재앙의 고통 가운데, 마지막으로 바로는 모세를 불러서 ‘너희는 가서 여호와를 섬기되 너희 양과 소는 머물러 두고 너희 어린 것은 너희와 함께 갈찌니라’고 말한다. 예배에 드릴 제물은 두고 빈손으로 가라는 것이다. 교회에 은혜가 떨어지면 재정문제가 시험 거리가 되듯이, 남자가 신앙이 떨어지면 돈부터 말해서 하나님 앞에 빈손으로 가게 만든다. 예배를 온전히 못 드리게 하는 것이다. 은혜는 받았는데, 드릴 게 없으면 마음이 냉랭하게 차가워진다. 하나님 앞에 공수로 나아가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제물이 없으면 제사가 되지 않음을 기억해야 한다. 더 나아가 사단은 십일조의 말씀을 교회에서 돈 이야기하지 말라고, 왜 부담을 주느냐? 라고 반박하는 지혜를 가지고 신자를 유혹하게 된다. 바로 왕의 소리는 사단 마귀의 소리다.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하나님은 유월절 재앙을 통해서도 반드시 그 백성들을 자신이 원하시는 구별된 자리로 이끄시는 분이라는 사실이다. 힘들고 어려워도, 많이 불편해도, 부담되어도 구별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예배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죽으나 사나 말씀 그대로 정한 시간, 정한 장소에서 하나님을 신앙해야 할 것이다.

신앙생활, 예배는 편한 것이 아니다. 예배는 시작부터 마치기까지, 그리스도의 보혈과 그 십자가를 붙잡고 회개하며 마음이 축축해서 드려지는 시간이다. 예배는 편하게 하는 게 아니다.

죄성을 거스르며 성령과 말씀이 내 영혼을 조명하고 철저히 말씀에 초점을 맞추어 에스겔 36장 26절의 말씀처럼, 영혼의 불순물이 씻겨 나고, 굳은 마음이 부드러운 마음으로 변화되는, 영혼이 수술받는 구별된 시간이다. 불편할지라도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예배의 구별이 온전히 있어야 한다. 그래서 자연히 구별된 복장도 필요하다. 또 댄스홀에 왔는지, 예배당에 왔는지 구별되지 않거나,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것인지 어떤지 모를 자세로는 도저히 구별된 예배가 될 수 없는 것이다.

교회는 예배 공동체이다. 교회의 존재 목적의 가장 첫 번째가 예배다. 신앙의 선배들은 예배가 있는 곳에 교회가 있다고 했다. 예배가 없는 교회는 교회가 아니고, 예배를 잘못 드리는 교회는 좋은 교회가 아니다.

소비자 중심주의 태도를 없애야 한다. 마치 물건을 자신의 기호에 맞게 사듯이, 자기만족과 기쁨과 편안함이 목적인 소비자 중심의 소비주의가 되면 안 된다. 오직 하나님을 높이고 그분에게 영광을 올려드림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그 예배를 받으신 하나님이 하늘로부터 하늘 문을 열고 주시는 은혜가 우리가 누릴 만족과 기쁨이다.

악한세대의 참믿음

오늘날 인터넷을 보면, 십일조나 주일성수를 강조하는 목사님을 향해 율법적이라고 공격하는 일들이 많음을 본다. 예배하는 날로 정하신 주일도 마음대로 바꾸고, 교회예배당 무용론을 주장하는 분들은 선각자처럼 대우받는 것을 보게 된다. 이것저것 편리하게 다 바꾸게 되면, 나중에는 편안하게 팬티 바람으로 집에 앉아서 다할 것이다. 망하는 세대, 타락하는 세대 모습이다.

이 악한세대는 참으로 믿음을 가지고 살려는 우리에게 요구한다. 코로나 시대를 지나면서 더욱 강력하게 요구할 것이다. ‘편하게 믿어라. 뭘 그렇게 별나게 신앙생활을 하느냐고 말한다. 적당히 섞여 살아라’라고 말한다.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말씀대로 지키자고 하면 율법적이라고 말한다. 그 내면 깊숙한 곳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신앙과 멀어지게 하는 바로의 소리가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신앙은 편리주의로 하는 것이 아니다. 신앙은 하나님의 뜻을 구별하여 악한세대를 거슬러 올라가 나의 기쁨이 아닌 하나님의 기쁨과 영광을 구하는 것이다. 편리하고 편한 것만이 발전과 성숙은 아니다.


전남수 목사(미국 알칸사 제자들교회 담임) 경북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서양철학(B.A./M.A.) 고려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 석사(M.Div) 교회사를 전공하면서 영지주의에 대한 논문으로 Th.M. 과정을 마쳤다.
Bob Jones 대학원에서 교회사 박사

출처 : 고신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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