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은 한자로는 다를 이 (異), 끝 단(端)자를 쓰는데 '끝이 다르다'는 말입니다. 완전히 다르면 금방 알아보겠는데, 끝이 약간 다르므로 매우 조심해야만 합니다.
이단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라 초대교회 시절부터 존재해왔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도 이단 무리에 대한 경계심을 가질 것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유다서 1장 4절에는 “가만히 들어 온 사람”이라는 표현은 옆으로 들어 온 사람으로도 번역될 있는데, 바로 이단무리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4절에서도 “가만히 들어온 사람들”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와 같이 초대교회 시절에도 건전한 교회를 어지럽히기 위한 목적으로 가만히 들어와서 형제자매들을 유혹하던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특히 갈라디아서와 유다서는 이단에 대한 경고입니다. 특히 유다서는 짧은 서신이지만 이단을 규탄하고, 정통신앙을 옹호하려는 목적으로 기록하였습니다. 이단에 대하여 강력하게 싸울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다른 성도를 의도적으로 의심할 필요는 없겠지만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가만히 들어온 사람”들이 혹시라도 우리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지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럴 때일수록 교회 밖에서 실시되는 집회와 성경공부 모임에는 참석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별반 유익이 없습니다. 교회는 언제나 사랑을 외치지만, 가만히 들어온 이단에 대해서는 단호했던 것이 기독교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가만히 들어온 사람들이 우리의 아름다운 공동체를 어지럽히지 않도록 더욱 경계해야 할 때입니다. 각종 이단들이 왕성하게 교세를 확장해가는 것을 경계해야 하겠습니다. 어느 정도 그들에게는 건전한 교회보다 깊고 친밀한 교제가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교회가 갖지 못한 영적인 세계가 있는 것처럼 선전하기도 합니다.
어느 정도는 아름답게 보이는 면이 혹시 있을지라도 성경에서 벗어나 있고, 독선적이고, 주님의 몸인 교회를 파괴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이단의 속성입니다.
이들은 선교사 등이 인도하는 교회 밖 성경공부 모임 참석을 종용하고, 나태하던 신앙생활에서 지나친 확신을 갖고, 갑자기 성경에 관한 이상한 질문을 당당하게 해대기 시작하며, 공예배에 불참하거나 참석하더라도 딴 짓을 하면서 예배에 집중하지 않으며, 과거에 양같이 순하던 성도가 갑자기 돌변하여 장로, 권사, 구역장 등의 지도자들과 목회자의 허물을 들춰내어 퍼뜨리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이단은 그냥 멀리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먼저 다가가서 알아보겠다거나 연구해 볼 필요가 없습니다. 이단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무리에서 나뉘지 마십시오. 무리에서 멀리 떨어진 자들이 가장 먼저 공격을 받습니다.
기독교적인 용어들과 성경을 사용한다고 말하지만 전통적이고 역사적인 기독교의 교리와 관례와 생활에서 벗어나 있고, 오직 자기들만이 참되다고 주장하고, 어떤 특정한 환상적인 인물로부터 시작되었으며. 회원들의 생활을 자기 집단 안에 폐쇄적으로 집중시키고, 자주 반사회적으로 이끌어가는 개인이나 단체를 말합니다. 구원받을 사람들의 일정한 숫자를 강조하거나. 건전한 교회와 목회자를 비방하고, 직분을 부인하며, 성경의 지나친 영적인 해석을 내세우고, 자신들만 구원받는다는 것을 주장하거나, 교회 밖의 모임이나 성경공부에 참석하자고 미혹하거나, 영적 특권의식을 내세우는 자들은 일단 이단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한두 번 경계한 후에 멀리 하십시오. 인사도 하지 마십시오(요한2서 10절).
발체: 교회와 이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