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사이트는 [회원가입]을 하신 후에 내용들을 보실 수가 있습니다. 

회원가입 후, 하루 정도 기다리시면 정식회원으로 등록해 드리며 모든 내용을 다 보실 수 있습니다. 

사역의 특성상, 불가피한 절차임을 이해 바랍니다. 

자세한 사항은 drcharleshong@gmail.com 으로 문의 바랍니다.

오늘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충만하시기를  기도 드립니다. 

Shalom aleikhem !

שָׁלוֹם עֲלֵיכֶם


 auto
 
작성일 : 24-01-23 18:55
성경적 설교’는 어떻게 하는 것인가?
인쇄
 글쓴이 : 창암
조회 : 1,744  

성경적 설교’는 어떻게 하는 것인가?

칼빈은 “교회는 곧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어지는 곳이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오늘 이 땅의 수많은 교회에서 수없이 외쳐지는 설교가 과연 전부 다 성경적인 하나님의 말씀의 선포라고 볼 수 있는가? 우리가 이렇게 반문해 볼 때 우리는 대답을 주저할 수밖에 없다. 우리를 주저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원인 중 하나는 그 많은 설교자들이 설교에 대한 분명한 신학적인 이해가 결여된 채 나름대로의 열정이나 습관적인 반복만을 거듭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설교의 기능을 하나님의 말씀 ‘선포’(Proclamation), ‘해석’(Interpretation), ‘적용’(Application)이라고 할 때 거기에는 ‘무엇을?’, ‘어떻게?’, ‘누구에게?’라는 질문이 따르게 된다. 즉 설교는 아무런 전제나 조건이 없이 즉흥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수단과 언어를 하나님의 말씀이 되게 하는 신학적인 내용이어야 하는 것이다.

이제 그 같은 ‘성경적 설교’의 신학적 원리를 규명하기 위해 ‘성경적 설교’의 개념을 정의해 보고 ‘성경적 설교’의 신학적 원리를 성경적 의미와 구원론의 의미 그리고 삶과 사회에 영향을 주어야 한다는 현실적인 의미에서 찾아보고자 한다.

1. 성경에서 출발되는 ‘성경적 설교’

“설교는 반드시 ‘성경적 설교’이어야만 하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가장 좋은 설교는 ‘성경적 설교’이다. 그 이유는 우리가 성경을 떠나서는 설교를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설교는 성경 해석이요, 설교는 성경의 설명이며, 설교는 하나님 자신에 의하여 말씀되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설교는 반드시 ‘성경적 설교’이어야만 한다는 확신을 가진 죤 브라이트(J. Bright)는 이렇게 단언하고 있다. “성경적 설교를 대치할 만한 것은 없다. 성경적 설교는 권위를 수반하는 단 하나의 방법이다. 설교자의 권위는 교회가 항상 확증하는 것 같이 성경에 두고 있다.”

영국 신학자 포시트(Forsyth)는 그의 저서 ‘적극적 설교와 현대 이성’(Positive Preaching and the Modern mind)의 제1장에서 “설교자가 끊임없이 성경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될 큰 이유는 성경이 곧 최대의 설교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이 같이 성경을 떠나서는 설교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은 주지(主枝)의 사실이다. 그러므로 유능한 설교자는 성경의 조용한 내부에서부터 그의 설교를 시작한다.

바레트(C. K. Barrett) 역시 이 사실에 공감을 표시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설교자는 자신을 나타내거나 자기주장을 교인들에게 펴기 위해서 강단에 서는 것이 아니다. 가능한 한 인간적인 설명은 적게 하고 가능한 한 성경에 담겨있는 하나님의 진리를 드러내고 표현하기 위하여 강단에 서게 되는 것이다.”

이런 사실들에 비추어 본다면 어떤 형태의 설교이든지 설교의 본문이 선포하는 메시지로부터 이탈한다거나 너무 다른 내용에 관심을 둔 나머지 본문은 언급 조차하지 않는 설교는 결코 용납될 수 없다. 그 이유는 말씀의 주인이신 하나님에 대한 이탈 내지 무관심으로서 설교자가 흔히 범하기 쉬운 범죄(犯罪)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런 모순을 박근원도 그의 ‘오늘의 설교론’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한 바 있다. “많은 경우에 있어 성경 본문은 설교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뒷받침해 주는 권유의 근거로서 선택한 성구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성경 본문은 읽되 설교 내용은 그것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한국교회의 설교 풍토의 맹점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런 비(非) 성경적 설교의 팽배라고 할 수 있다.” 한국교회의 비(非) 성경적 설교 풍토의 팽배를 지적한 박근원 교수의 지적에 필자는 전적으로 공감하면서 그 이유를 살펴보고자 한다.      

설교는 물론 문화의 영향이나 재래의 습관과 그 시대의 윤리에 영향을 받는다. 특별히 한국 강단은 재래의 윤리주의, 유교적인 교훈, 샤머니즘과 기복주의 신앙 등으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이것은 잘못된 설교자들의 설교 내용 가운데 불교적인 요소와 유교적인 내용이 많이 포함되어 있는 것과 설교에 있어 가장 중요한 성경은 설교의 도입을 위해서만 이용하고 대부분의 전개는 비(非) 성경적인 것들로 엮어져 있는데서 확실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한국 강단의 설교가 ‘성경적 설교’가 되지 못하는 더 큰 이유를 보면 설교자의 신학의 부재(不在)와 교육과 훈련 부족 그리고 간혹 과다한 설교사역을 들 수 있다. 그 배경에는 1980년 이전까지만 해도 한국 신학교에는 설교학을 전공한 설교학 교수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따라서 한국 신학교에서 설교가 무엇이고, 어떻게 하는 것이며, 무엇을 전하는 것인가에 대해 교육받을 기회가 거의 전무했던 것이다. 그 결과 ‘성경적 설교’의 이해 부족에서 ‘성경적 설교’를 성경 구절을 많이 인용하는 설교로 이해하거나, 성경 전체와 동떨어진 주어진 본문만을 강조하는 설교를 하는 것이다.

이 같은 설교에 대해 다니엘 바우만(J. Daniel Baumann)은 “그것은 ‘성경적 설교’이기보다 자기의 주장을 펴기에 편리한 본문들만 잘못된 방법으로 나열하는 주제설교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고 비판했고, 죤낙스(J. Knox)는 “성경 본문을 기초로 하고도 전혀 비(非) ‘성경적 설교’를 할 수도 있고 또 전혀 본문에 매달리지 않고도 매우 ‘성경적인 설교’를 할 수가 있다.”고 하여 바우만의 입장을 지지한다.  

우리가 바우만의 이 같은 비판을 겸손히 받아들인다면 “한국 강단의 설교가 성경적이냐 비성경적이냐?”하는 것은 성구를 열거한 설교였다 하더라도 대부분 그 형태가 주제설교나 제목설교였고 ‘성경적 설교’가 못 된다는 것을 누구라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한국 강단의 기형적 설교가 궤도를 수정하여 나아가야 될 돌파구는 ‘성경적 설교’로 돌아가는 길 외에 없다고 본다.

그렇다면 “성경적 설교는 무엇이며, 어떻게 하는 것인가?” 성경적 설교란 처음부터 끝까지 그 주제와 내용이 성경과 성경적인 사상으로만 이루어진 설교로 ‘성경으로 시작하여, 성경에 의하여, 성경으로 끝나는 설교’이다. 이것은 다른 형태의 설교가 다루지 않았던 몇 가지 영역과 방법들을 설교의 세계로 끌어들이고 있다. 기존의 제목설교나 본문설교 그리고 강해설교가 대부분의 경우 설교의 본문이 몇 구절이거나 아주 짧았고 충분한 석의(釋義)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설교자 혼자 준비하여 성인들만을 대상으로 선포됨으로써 설교가 예화(例話) 진열장이 되거나 인간의 말이 되었던 단점들을 보완해 준다.

2. 성경으로 설명되는 ‘성경적 설교’

(1) 설교의 근원과 출발은 성경이다.        

성경은 영(靈)으로 임하시는 그리스도 자신이 교사로 계시는 곳이다. 성경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이 실제적으로 자신을 알리신 것은 성경뿐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이름을 문자로 기록해 주고 있으며 그 과거의 역사를 가르쳐 주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존하여 존재한다. 성경 전체는 이 사실에 대한 증언이라 할 수 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성경을 통해 말씀하시며 자신의 길을 가르치신다. 그렇기에 설교는 성경의 본문을 낭독하는데서 시작해야 된다고 보렌은 역설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가장 좋은 설교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라는 것이다.”라고 한 죠우엘의 말을 빌려 김이태 교수는 설교가 성경을 씨앗으로 잉태(孕胎)되고 자라나야 됨을 말한다. 이것은 설교자가 성경을 해석하고, 적용하고, 표현할 수는 있지만 새로운 것을 창안해 낼 수는 없으며, 성경은 설교라는 나무의 씨로서 말씀이 없거나 말씀과 무관한 설교는 설교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2) 성경은 설교의 영원한 원천이다.            

말씀의 씨앗은 삶의 주변적인 사건이나 어떤 인기 있는 사상이 아니라 성경이어야 할 뿐만 아니라 성경이 설교 자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한 성경학자는 이런 견해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한 세대 동안 성경의 교리를 연구했지만 그 진술에 있어서 가장 만족할 만한 모범은 성경을 하나님이 설교하시는 책이라고 기술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또 어떤 신학자는 “성경이 곧 설교다.”라는 입장을 밝히면서 이렇게 강조하고 있다. “설교자가 끊임없이 성경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될 큰 이유는 성경이 최대의 설교(Kerygma, κῆρυγμα)이기 때문이다. 다른 어떤 기능보다도 월등하게 성경은 하나의 설교이다.”

(3) 성경 자체보다 더 분명한 설교는 없다.

“성경으로 성경을 해석하게 하라!”는 말을 생각할 때 더욱 성경은 설교로 간주된다. 바우만은 “설교에 따라 기독교의 성패는 결정이 된다.”고 말한다. 이 명제는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얼마나 충실하냐에 따라 그 성패가 좌우되고 이에 따른 설교의 성패가 기독교의 성패를 결정한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설교란 그 자체가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계시하고 그 역사를 이룬 성경의 대 진리를 선포하는데 그 의미가 있다.

그러므로 성경을 떠난 설교는 하나의 종교 에세이(essay, 수필, 작문) 이거나 단순한 인간의 주장을 발표하는 종교적 연설(演說)에 불과하다. 설교자가 성경을 모른다거나 설교의 원천을 성경에 충실히 두지 않을 때 그 설교는 위험한 신비주의(神秘主義)나 광신주의(狂信主義)로 흘러갈 수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설교는 성경에서 말씀하신 그 말씀과 성경에서 성취하신 그 은혜를 성경에 있는 그대로 전달해야 한다.

이 점은 구약의 선지자들에게서 분명히 드러난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단순한 성경 해석자가 아니라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말씀을  어떤 인간의 수식이나 가감이 없이 그대로 선포해야만 했다. 구약성경은 끊임없는 선지자들의 이 같은 말씀선포 사역을 소개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그 백성과 자손들에게 가르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신약성경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에게 집중된다. 따라서 초대교회 사도들의 설교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 초점이 모아졌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은 모든 성경의 응답이며 진수라는 사실을 증거 하였고 십자가에 매달리시고 부활하신 예수는 우리의 주와 그리스도가 된다는 사실을 증거 했다. 그리고 십자가를 통한 죄인들의 회개, 죄 용서, 하나님의 은총을 설교했다.              

신구약 성경을 살펴본 결과는 설교가 하나님을 향해 인간이 무엇을 외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하나님이 인간을 향해 무엇을 어떻게 하셨다는 메시지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준다. 즉 설교는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말이 아니라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이다. 선지자들은 하나님에 관한 인간의 생각이나 인간의 말을 구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어떻게 구속의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지를 인간에게 알리는 것을 주 임무로 삼았다.

그 결과 하나님은 선지자들의 설교에서 언제나 주체이셨지 결코 그 대상이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의 설교자들은 그들의 삶 전체가 하나님의 장중에 사로잡혀 그 주인의 뜻대로 말씀을 전하고 행동해야만 했었다. 이 같은 사실들을 고려해 볼 때 설교자는 무엇보다 항상 성경을 친근히 하고 성경 전체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 출처 / 월간 목양,  


 
 

일반형 뉴스형 사진형 Total 7,994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6694 스펄젼과 함께하는 아침묵상 창암 01-26 790
6693 내가 얻은 지침이 성경적으로나 신학적으로 옳은지 그른지는 별로 중요한 … 창암 01-25 949
6692 스펄젼과 함께하는 아침묵상 창암 01-25 788
6691 개신교 소수 종교로…“10년 후 전체 인구 중 12%” 창암 01-24 1027
6690 스펄젼과 함께하는 아침묵상 창암 01-24 972
6689 성경적 설교’는 어떻게 하는 것인가? 창암 01-23 1745
6688 스펄젼과 함께하는 아침묵상 창암 01-23 801
6687 감정을 어떤 관점으로 보는가? 창암 01-22 799
6686 스펄젼과 함께하는 아침묵상 창암 01-22 822
6685 하나님이 맡겨주신 가정과 교회를 지키자... 창암 01-21 1743
6684 스펄젼과 함께하는 아침묵상 창암 01-21 777
6683 가라지와 염소는 하나님의 교회가 아닙니다... 창암 01-19 1762
6682 스펄젼과 함께하는 아침묵상 창암 01-19 816
6681 기독교 상담학에 대한 개혁주의 관점.. 창암 01-18 971
6680 스펄젼과 함께하는 아침묵상 창암 01-18 1102
6679 영성이 믿음과 경건을 밀어내는 현실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창암 01-17 908
6678 스펄젼과 함께하는 아침묵상 창암 01-17 848
6677 성경을 주관적으로 해석하여 엉터리 주장으로 진리를 흐리기 시작했었습니… 창암 01-16 1643
6676 스펄젼과 함께하는 아침묵상 창암 01-16 846
6675 우리에게 유익이 된다면 거짓말을 해도 좋다?? 창암 01-15 1693
6674 스펄젼과 함께하는 아침묵상 창암 01-15 965
6673 북한 성경 배달 사역 이렇게 시작되었다. 창암 01-14 1124
6672 스펄젼과 함께하는 아침묵상 창암 01-14 1235
6671 “아무에게나 경솔히 안수하지 말고”... 창암 01-12 922
6670 스펄젼과 함께하는 아침묵상 창암 01-12 811
6669 판단을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분별력을 더욱 강조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창암 01-11 1632
6668 스펄젼과 함께하는 아침묵상 창암 01-11 1602
6667 건강한 교회의 10가지 요소를 소개한다... 창암 01-10 957
6666 스펄젼과 함께하는 아침묵상 창암 01-10 789
6665 교권주의가 성행하게 되는 교회는 잘못되는 겁니다.. 창암 01-09 876
6664 스펄젼과 함께하는 아침묵상 창암 01-09 788
6663 목회의 우선순위 중...맨 마지막은 신학? 창암 01-08 1186
6662 스펄젼과 함께하는 아침묵상 창암 01-08 1101
6661 교회안의 공로주의, 구원론적 능동주의를 경계하라. 창암 01-07 1621
6660 스펄젼과 함께하는 아침묵상 창암 01-07 789
6659 감사와 원망... 창암 01-05 956
6658 스펄젼과 함께하는 아침묵상 창암 01-05 2193
6657 왜? 교회에서 학력을 묻고 기재하나..... 창암 01-04 1647
6656 스펄젼과 함께하는 아침묵상 창암 01-04 1255
6655 독일 사람들은 평생에 해야 할 일이 세 가지 있다고 한다... 창암 01-03 921
6654 스펄젼과 함께하는 아침묵상 창암 01-03 969
6653 가만히 들어 온 사람들을 경계하자 창암 01-02 1113
6652 스펄젼과 함께하는 아침묵상 창암 01-02 921
6651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 창암 01-01 1085
6650 스펄젼과 함께하는 아침묵상 창암 01-01 898
6649 카톡을 통해 처리하게 되니, 때로는 두려운 생각을 하게 된다. 창암 12-29 1250
6648 스펄젼과 함께하는 아침묵상 창암 12-29 1038
6647 배우는 자의 자세 없이는 잘 가르칠 수 없다! 창암 12-28 987
6646 스펄젼과 함께하는 아침묵상 창암 12-28 842
6645 다음 세대를 위한 설교의 과제 3/3 창암 12-27 1653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32  33  34  35  36  37  38  39  40  41  42  43  44  45  46  47  48  49  50  51  52  53  54  55  56  57  58  59  60  61  62  63  64  65  66  67  68  69  70  71  72  73  74  75  76  77  78  79  80  81  82  83  84  85  86  87  88  89  90  91  92  93  94  95  96  97  98  99  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