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회는 그 경이적인 성장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와 문화 속에 보다 완숙한 차원의 기독교 신앙 문화를 창출해 내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영적 부흥과 실제적 삶을 연결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복음적 신앙을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실천 또는 역동화하지 못함으로 복음의 능력을 무력화 내지는 화석화한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그리스도인 개인의 신앙과 생활 속에서는 더욱 심각하게 반영되어 나타나고 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개인적인 신앙고백을 자신의 실재적인 삶에 적용하지 못하고, 신앙과 생활의 이중적인 틀 속에서 끝없는 갈등과 혼동 그리고 무기력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예배당 안에서의 “아멘!”이 일상생활의 현장에서의 “아멘!”으로 연결되지 못한다.
이것은 한국교회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아직도 영적 유아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린 유아들은 자신의 생활을 능동적으로 이끌어 가거나 그들의 가족과 공동체의 가치형성에 실제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여 변화를 가져 올 수도 없다. 성숙하여 장성한 사람들이 될 때 비로소 자신의 삶뿐만 아니라 가정과 사회 그리고 국가와 세상 속에서 강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도 영적으로 성숙하여 온전한 사람들로 그리스도의 충만에 까지 이르러야 한다(엡 4:13).
오늘날 교회 중에 아직도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로 부터 다시 가르침을 받아야할 유아들이 많이 있다. 사도 바울도 자신이 어렸을 때에는 말하고 깨달으며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고전 13:11)고 하였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 까지” 이르기 위하여서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야만 한다. 제자는 그리스도의 학교에 입학하여 하나님의 지식을 날로 새롭게 배워가는 자이다. 그래서 “의의 말씀을 경험”하고 장성한 자들이 되어 단단한 식물도 먹으면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히 5:13-14)이 되어야 한다.
특히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있어 보다 성숙하여 갈 것을 권고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곧 “신학”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신학자이어야 한다.
신학은 우리 영혼의 양식을 제공한다.
그 마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열정으로 가득 찬 영혼은 먼저 그 지성이 하나님의 성품과 뜻을 온전히 깨달아 알아야 한다. 먼저 내 머리 속에 있지 아니한 그 어떤 것도 내 마음 속에 있을 수 없다. 내가 전혀 모르는 어떤 사람을 우리가 정말 믿을 수 없는 것처럼 내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어떻게 사랑할 수 있겠는가? 내가 하나님을 보다 더 온전히 알면 알수록 그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나의 능력은 더 크지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마 22:37)고 하셨을 때에 그 “뜻”은 “생각하는 기능, 지성, 이해”를 의미하는 말이다. 따라서 하나님을 온전히 알기 위하여 신학하는 것은 우리의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구체적인 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올바른 하나님 지식의 추구를 위한 신학연구의 노력은 우리의 영적 성장을 위한 “필수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그러한 하나님 지식이 영적 성장을 위한 “충분조건”이라는 것은 아니다. 필수조건이라는 것은 바라는 결과가 일어나기 위하여 꼭 있어야만 하는 조건을 말한다. 그것 없이는 그 결과를 기대할 수 없다.
예를 들면 산소(oxygen)는 불을 위한 필수조건이다. 그러나 산소가 있다는 것만으로는 불이 발생할 것이라는 것을 충분히 보장할 수 없다. 이 사실은 사실상 우리에게 천만다행한 일이다. 왜냐하면 만일 산소가 자동적으로 불을 일으킨다면 온 세상은 곧 화염에 휩싸이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산소는 불을 위해 꼭 필요하지만 그 자체만으로 불을 만들기에 충분한 것은 아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에 대한 체계적 지식(신학적 지식)은 영적 성장을 위한 충분조건은 아니지만 영적 성장을 위해 꼭 있어야할 필수조건인 것이다. 궁극적으로 성령께서 은혜로 우리 마음속에 불 붙여 주셔야 하지만 그 전에 먼저 우리가 하나님을 온전히 알아야만 하는 것이다.
분명히 기억할 것은 참된 하나님 지식이 없이는, 신학하지 않고서는, 신학하는 사람이 되지 않고서는 바람직한 영적 성장도 온전한 신앙생활도 불가능하며 구원(성화)을 온전히 이룰 수도 없다는 것이다. 실로 하나님을 먼저 바로 알지 못하고는 하나님을 바로 믿을 수 없으며 하나님을 바로 믿지 않고는 영생에 이를 자가 아무도 없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 곧 영생이라고 한 것이다(요17:3).
그 외에 성경 여러 곳에서도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에 대한 올바른 지식이 없이는 참된 믿음도 구원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롬10:17, 롬1:16, 마28:19-16, 요17:17, 엡6:17, 살후2:16).
이환봉 교수, 목사: 대한민국의 신학자이며 고신대학교에서 조직신학 교수를 역임하였다. 개혁주의 학술원 창립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