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주의 예배가 성경적이다
“모세가 아론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라 이르시기를 나는 나를 가까이 하는 자 중에 내가 거룩하다 함을 얻겠고 온 백성 앞에 내가 영광을 얻으리라 하셨느니라”(레10:3)
성경의 하나님은 예배의 자세한 것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신다.
레위기 10장에 있는 친숙하면서도 여전히 두려운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1절)’을 드렸다는 것을 기억한다. 이러한 구절들 바로 전에, 우리는 나답과 아비후의 부친인 아론이 이스라엘의 예배의식 속에서 첫 제사를 드렸다. 아론의 경우는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단 위의 번제물과 기름을 사른지라(레9:24)’라고 되어있다. 반면에 나답과 아비후의 경우는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레10:2)’라고 하였다. 차이가 무엇인가?
아론도 제사장이었고 그 아들들도 마찬가지였다. 아론도 희생제사를 드렸고 그 아들들도 그러하였다. 이것이 충분히 선하지 않은 것인가? 이 성경 이야기가 우리들에게 주는 답은 아론은 ‘여호와께서 명하신대로....규례대로(레9:10,16)’ 희생을 드렸지만 그러나 나답과 아비후는 ‘여호와께서 명하지 않은 불’을 드렸다. 즉 그것은 명령되지 않은 것일 뿐만 아니라 금지되었던 것이다.
나답과 아비후의 이야기는 아무리 인간이 신실하다할찌라도 예배라는 것은 인간 자신의 소원을 따라 드려서는 안되고 하나님 말씀을 따라 드려야 된다는 것을 말한다.
규정되지 않은 예배를 드리는 것은 여호와께 불경스러운 것이고 그의 영광을 빼앗아가는 것이 된다. 나답과 아비후가 불살라졌을 때에, 이것이 왜 모세가 아론에게 ‘나는 나를 가까이 하는 자 중에 내가 거룩하다 함을 얻겠고 온 백성 앞에 내가 영광을 얻으리라(레10:3)’라고 말한 이유이다.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영광 때문에,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이 그를 예배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들이 어떻게 예배해야 될지도 규정하셨다. 그리하여 성막인 예배장소는 ‘네게 보이던 본을 좇아’ 만들어진 것이었고(히8:5, 참고: 출25:9, 40, 26:30, 27:8, 민8:4, 행7:44), 예배의 행위인 희생제사는 ‘규례대로’ 드려지는 것이었다(레5:10, 9:16).
개혁된 교회인 우리가 예배에서 행하고 있는 것은 성경에 근거한 것이다.
물론 ‘성경을 믿는다고 하는’ 모든 교회가 오늘날 ‘우리 교회의 예배가 성경적이다!’라고 말한다. 누가 비성경적인 예배를 원하겠는가? 개혁된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질투하는 하나님이시며 구속자이시고 성결케 하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를 간절히 원한다. 이것이 왜 우리가 성경적으로 예배를 드리는가하는 이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적’이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무엇과 같은가?
말씀의 회중
첫째로, 우리 주님의 교회는 믿음의 공동체로서 성경에 묘사되어있다. 이 믿음은 말씀에 의하여 만들어지고 형성된다. 목회서신에서 바울이 교회를 계속 배우고 가르치는 것으로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를 아래에서 들어보라.
믿음의 말씀(딤전4:6)
바른 교훈(딤전1:10, 딛1:9, 2:1)
바른 가르침(딤후4:3)
바른 말(딤전6:3, 딤후1:13)
선한 교훈(딤전4:6)
아름다운 것(딤후1:14)
믿음의 비밀(딤전3:9)
미쁜 말씀(딛1:9)
신,구약에 나오는 교회는 언제나 ‘경건치 않은 사람들에 의하여 진리를 막는(롬1:18)’ 사람들로 가득 찬 타락한 세상가운데 믿음의 공동체로서 존재해왔다.
우리 세대는 다른가? 그렇지 않다. 성경적으로 말하자면, 타락 때부터 마지막 때까지 모든 세대가 다 ‘썩어짐의 종노릇(롬8:21)가운데 있는 ‘악한 세대’(갈1:4)이다. 우리는 특별히 서구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 불신 이웃들이 가지고 있는 많은 성경책들과 그럴듯하게 보이는 대형교회들의 성공과 넘쳐나는 개혁 캠페인들(crusades)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결코 잊지 말아야한다.
우리 시대의 성경적인 문맹을 보기 위하여, 우리는 불신 이웃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단순한 질문을 할 필요가 있다. ‘성경이 하나님과 우리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무엇이라 말하는가? 그리고 사람이 어떻게 구원받는다고 말하는가?’ 불행하게도 이것이 심지어 교회 안에서 조차도 사실이다.
이것이 성경과 무슨 연관이 있는가? 이러한 ‘믿음의 말씀’을 배우기 위하여 우리는 출애굽 후에 광야에서 이스라엘이 하였던 것같이 공동체로써 모인다.
출애굽기의 이야기는 하나님의 율법을 받기 위하여 시내산 밑에 모였던 구약 교회를 보여준다. 하나님의 신약 백성으로서 우리는, 말씀과 성례라는 하나님께서 정해준 수단을 통한 예배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위하여,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히12:22)으로 모여서 올라간다. 이러한 이유때문에, 개혁주의 예배는 이전부터 성경적인 것으로 가득 차 있다. 제네바, 하이델베르그 예배모범서는 성경 본문들과 성경적인 언급들로 가득 차 있었다.
개혁주의 예배가 성경적이다 (2)
두 번째로, 우리의 예배는 우리가 예배 순서를 결정하는 방식 때문에 성경적이다. 우리가 예배에서 하는 것은 우리에게 즐거운 것인지 아닌지 또는 우리가 좋아하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대신에 예배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의하여 규정된 것이다. 그것은 ‘규례대로’이다.
이것을 예증하기 위하여 우리의 고백서 중의 하나를 사용해보자. 개혁교회로서 우리는 ‘고백적 교회’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성경에서 가르치는 것을 우리가 믿고 있다고 하는 것을 요약하고 설명하는 믿음의 고백들을 우리가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개혁교회가 웨스트민스터 표준을 사용하든지 아니면 ‘하나되는 세 고백서(Three Forms of Unity,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네덜란드 신앙고백서, 도르트 신조)를 사용하든지,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예배순서를 갖는가에 대한 가르침은 같다. 개혁교회로서 우리는 성경에 대한 다음의 내용을 믿고, 그들이 어떻게 우리의 예배원칙을 지도하는가를 믿는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예배의 전체 방식이 성경 안에서 대체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벨직 고백서 7조).
본성의 빛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 하나님은 만물에 대하여 통치권과 주권을 행사하신다. 그는 선하시며, 만물에게 선을 행하신다. 그러므로 인간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그를 경외하며, 사랑하며, 찬양하며, 부르며, 신뢰하며, 그리고 섬겨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참되신 하나님을 예배하는 합당한 방법은 그 자신이 친히 정해 주셨으므로 그 자신의 계시된 뜻 안에서 한정되어 있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상상이나 고안, 또한 사탄의 지시에 따라 어떤 가견적인 구상을 사용하거나, 성경에 규정되어 있지 않는 다른 방법을 따라서는 하나님을 예배할 수가 없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21.1)
그래서 개혁주의적인 예배는 우리가 하는 특별한 일들 때문에 성경적이다. 즉, 공적 예배에서 예배의 요소는 하나님 자신에 의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예배의 규정적인 원리(regulative principle of worship)’ 또는 축약해서 RPW라고 부른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 안에서 그를 어떻게 예배해야하는지를 규정해 주셨다는 것이다. 예배는 견해나 기호나 취향의 문제가 아니다. 하나님은 그의 이름이 경외함을 받고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기를 원하신다(출20:7, 마6:9).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할 때에 우리는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기게 될 것이다(히12:28).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가르쳐지는 이러한 원리를 우리는 어디서 발견하는가? 성경의 여러 곳에서이다. 예를 들면 십계명의 제1,2계명인데, 제1계명에서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예배하도록 가르침을 받는다(‘너는 나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반면에 제2계명에서는 그가 요구하는 유일한 방식에 대하여 배운다(‘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1563년 독일 하이델베르그 지역에 있는 신실한 자들을 가르치기 위하여 첫 출판된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에서 우리는 제2계명의 개혁주의적인 해석을 배운다. 그것은 이렇게 말한다.
문: 제 2계명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답: 어떠한 형태로든 신의 형상을 만들지 말고 말씀을 통하여 명령하신 방법과 다르게 그 를 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규례대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창세기 4장에 나오는 가인과 아벨 이야기의 본질이다.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고 그의 아우 아벨은 양치는 자였다(창4:2).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다(창4:3,4).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는 받으셨지만 가인의 것은 받지 않으셨다(참조:창4:4-5). 왜 그러하셨는가?
그들 모두는 예배의 희생제사를 드렸다. 그들은 모두 신실해 보였다. 많은 사람이 이것이 예배를 규정할 유일한 원리인가라고 말하지 않겠는가?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물을 받으시고 가인의 것을 받지 않으신 이유는 아벨이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을 드렸기 때문이다. 그는 결코 자신의 생각에 최상이라고 여겨지는 이상한 것을 드리지 않았다.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그것의 기름을 드렸다. 이러한 것들은 나중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예배의 자세한 내용을 주실 때에 레위기에서 사용되는 용어들이다. 아담과 하와가 동물가죽으로 덮여졌을 때에 용서받았던 것같이 아벨의 예배 역시 그의 죄를 위한 다른 것을 통하여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는 것을 아벨은 이해하였다. 우리는 하나님이 명한 그대로 정확하게 예배 해야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의 이름을 위하여 거룩하시고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개혁주의 예배가 성경적이다 (3)
(성경의 충분성)
왜 우리가 개혁주의 예배를 성경적인 것으로 말하는지에 대한 세 번째 이유는 개혁주의 개신교도들로서 우리는 성경만이 우리에게 예배의 ‘주체와 목적과 시간과 장소와 이유’를 가르치기에 충분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성경만이 교훈과 신학과 교리와 삶과 실천을 위한 무오류적인 인도자이다. 이 말씀이 우리의 구원과 그리스도인의 삶을 위하여 충족하기 때문에, 이것은 확실히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하여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이다. 우리의 예배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예배를 드릴 때 뿐이다. 이것이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이다(레1:9). 투표, 취향, 기호 그리고 통계는 하나님 예배를 결정하는 개신교도적인 방식이 아니다.
예배의 요소
마지막으로 우리의 예배는 예배 순서안에 놓여지는 것 때문에 성경적이다. 우리가 위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가 모여서 공적 예배를 드릴 때에 성경이 우리에게 하도록 명령하는 것이 예배의 ‘요소(elements)’라고 불리운다. 예를 들어서, 행2:42에서 우리는 신약시대의 초기 회중의 예배규정에 대하여 읽는다. 거기서 우리는 초기 기독교인들은 ‘교제’에 매우 헌신적이었는데 그것은 상호적인 사랑의 끈이었다. 또한 그들은 그리스도인의 친교처럼 사도의 가르침(말씀)과 떡을 떼는 것(성찬)과 기도에도 헌신하였다. 그래서 예배의 일반적인 범주는 말씀과 성례와 기도인 것이다.
개혁주의 예배의 각 요소는 이러한 세 가지 넓은 범주에 속한다. 말씀의 범주는 많은 요소들을 포함한다. 역사적 개혁주의 실천에 있어서 예배는 그것이 예수님의 세례적인 말씀이든지 아니면 제네바에 있는 것처럼 ‘우리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의 이름 안에 있습니다’라는 성경과 함께 시작된다.
오늘날 대부분의 개혁주의 교회들은 그의 백성들을 예배로 초청하는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바로 그 말씀으로 예배를 시작한다(예: 시95). 그때에 목회자는 예를 들어서 딤전1:2 이든지 아니면 계1:4-5이든지 주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인사를 말한다. 그리고 우리는 마22장에 있는 예수님의 율법의 요약과 함께 출20장이든지 아니면 신5장 이든지 하나님의 율법을 읽는다. 그리고 즉흥적이든지 아니면 쓰여진 것을 읽든지 기도의 고백이 따른다. 물론 이것은 성경적 언급들로 가득 찬 것이다.
회중들의 원죄와 자범죄를 회개하며 은혜를 구한다. 그리고 청중들에게 좋은 소식을 약속하는 다른 성경 본문이 읽혀지고 적용된다(요일1:9). 그리고 시편과 성경적인 근거를 가진 찬송을 부른다. 우리는 사도신경이나 또는 니케아 신경을 고백하고 성경이 읽혀지고 선포되는 것을 듣는다(딤전4:13). 우리는 성찬 제정의 성경적인 말씀을 듣는다. 그리고 우리는 아론의 축도이든지(민6:24-26) 아니면 사도의 축도이든지(고후13:14) 축복의 성경적인 말씀을 받는다. 그 때에 우리 예배는 실제적으로 규례대로 우리의 예배가 되어졌기 때문에 성경적이다.
성례의 범주에는, 그리스도의 명령에 따라 주어진 세례와 성찬의 두 신약적인 성례가 있다(눅22:17-20, 고전11:23-26).
기도의 범주에는 두 개의 형태가 있다. 말하여지는 기도와 노래되는 기도이다. 말하여지는 기도는 중보의 기도(딤전2:1), 고백(시51) 그리고 숭배(시8)이다. 노래되어지는 기도는 시편과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이다(엡5:19, 골3:16).
그래서 개혁주의 교회에서 행하는 것은 성경에 있기 때문에 예배에서 행하는 것이다. 결국 성경 그 자체가 레위기 9,10장에 있는 이스라엘 예배에서 말하여지는 똑같은 방식으로 하나님의 거룩하심 때문에 ‘규례대로’로서의 기독교적인 예배를 말하는 것이다.
Daniel R. Hyde / 강문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