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하게 된 땅에 추수할 일군들을 보내달라고 기도를 주문하신 분은 주님이시다. 그렇게 하시겠다는 약속이 전제된 기도였다. 제자들을 불러 훈련하시고 파송하신 분도 주님이시다. 자기 백성들의 울부짖음에 귀를 기울이시고 건질 자를 보내시는 일도 주님이 하신다. 입이 뻣뻣하고 둔하여 말을 할 줄 모른다고 변명하는 자에게 할 말을 주시거나 대신 말할 자를 세우시는 분도 주님이시다. 어린아이라 말할 줄 모른다는 이에게도 변명하지 말고 보내는 곳에 가서 명한 대로 말하라고 하시는 분도 주님이시다. 하기 싫어서 도망가는 자도 풍랑을 동원하고 큰 물고기를 이용하여 기어이 사명을 감당케 하시는 분도 주님이시다.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소리에 아시아로 가던 길을 돌이키어 유럽대륙으로 향하게 하신 분도 주님이시다. 오지에 사람들을 보내어 허물과 죄로 죽은 자들을 구원하시게 하시는 분도 주님이시다.
그런 주님께서 한 명이라도 더 필요한 때에 설교자의 입을 닫게 하실 때가 있다. 무엇 때문일까? 충분히 예단 가능한 것은 설교자 자신이 그 일을 감당할 수 없는 부정적인 뭔가가 있어서 그렇게 하실 것이다. 이것은 누구나 다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실지로 더럽고 추한 풍기 문란한 죄에 간여 되어 있거나 미풍양속을 헤치는 일에 빠졌을 때 설교자의 입은 닫혀야 한다. 자신의 죄악들을 숨기고 강행하고자 할 때 하나님은 강제적인 수단을 허용하시어 입을 열지 못하게 막으신다.
또 가능한 일은 그보다 더 나은 설교자가 있기 때문이다. 성경 본문에 충실하고 교리적 가르침에 하자가 없으며 실천적 적용에 탁월한 설교자가 있기에 그렇지 못한 자의 입은 닫는 것이 낫다고 여길 수 있다.
또 다른 나은 사역자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예단도 어떤 곳에서는 맞지만, 어떤 곳에서는 아닌 경우도 존재한다. 전임자보다 후임자가 훨씬 못함에도 전임자의 입을 닫게 할 수 있다. 그것은 둘 중의 하나다. 설교자를 온전히 받지 못하는 자들을 향한 하나님 징계의 채찍이거나 아니면 도무지 분별력이 없는 백성들의 영적 무지로 말미암는 것일 수 있다. 그때는 임의대로 방치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교만한 백성들을 물리치신다. 그들을 향한 징계의 채찍은 날카롭다. 그런데 보아도 알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무지와 분별력의 결함은 참 설교자보다 더 못한 자로 변경하실 수 있다.
생명수를 늘 흘려보내도 구정물과 뒤섞어버리는 어리석은 무지로 인해 결국 설교자의 입을 닫게 할 수 있다. 어쩌면 이것이 촛대를 옮기는 일이 될 수 있다. 참과 거짓, 의와 불의, 옳음과 그름, 천사와 악마,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없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불호령을 내려서 회개케 하시거나 아니면 저들의 상태로 내버려 두신다. 그 결말은 파멸뿐이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데도 설교자의 입이 닫히는 경우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하나님의 깊은 섭리를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다고 하셨다. 그리고 가장 유익한 것으로 가르치시고 마땅히 가야 할 길로 인도하시는 주님이심을 믿는다(사 48:17). 주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 택할 길을 가르치시는 주님이시다(시 25:12). 그렇다면 입을 닫게 하시는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인내하며 우리가 택할 길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시고 보여주시기를 간구해야 한다. 은총의 표징을 보여주옵소서!
서창원 목사,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