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영성운동가들은 인간에게 처음부터 신실함과 선함과 신성이 내재되었다고 보는 이교도들의 종교수련으로부터 영향받았다. 기독교는 초월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임하는 구원의 은혜에 의존하므로 “주여! 내게 은혜를 주옵소서!”라고 하나님을 향해 간구한다.
그러나 세상 종교들은 이미 인간 속에 영원한 생명이 있다고 믿으니 눈을 자기의 내면으로 집중하라고 한다. 자기의 내면을 더 보기위해서는 마음과 생각이 조용해야 한다. 그래서 일반 불교, 티벳 불교, 힌두교, 뉴에이지, 영지주의, 도교... 모든 종교들은 고요한 영혼을 추구하는 것이다.
“목회자의 영혼이 고요하지 않고 어떻게 신자들을 고요한 물가로 인도할 수 있겠는가?”(유진 피터슨)
일부 교역자들은 설교 중에 유진 피터슨(Eugene Peterson)의 말을 자주 소개했다. 유진 피터슨도 이방 종교와 기독교 사이에 존재하는 근본적이고 절대적인 차이를 무시하는 뉴에이지 사상가라고 평가되는 사람이다. 그가 번역한 성경에는 뉴에이지 사상이 반영된 흔적이 많다고 많은 전문가들이 비판한다.
뉴에이지 성향을 가진 유진 피터슨이 ‘목회자의 영혼이 고요해야 한다'라고 말하는 것은 인간의 내면으로 향하는 명상영성의 고요한 영혼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명상을 통해 영혼이 고요해지면, 그 다음에는 인간의 내면에서 나타나는 고요한 음성을 듣게된다. 기독교 명상 영성운동가들은 그것을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할 것이고, 그것을 통해 영혼이 평안하고 건강해진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아주 그럴싸한 가르침이나, 사실은 매우 비성경적이고 심각한 이단사상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음성은 인간의 내부로부터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계시의 말씀으로 자기의 뜻을 드러내셨다. 기독교에서는 기록된 성경의 말씀이 하나님의 음성이다. 신자들 속에 거하시는 성령은 하나님의 음성을 만들어 주시는 분이 아니고, 초월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된 말씀을 깨달아서 삶과 신앙에 적용하게 만드시는 분이다. 결코 내주하시는 성령으로부터 직접 계시의 음성이 나오지 않으므로, 고요한 영혼이 되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는 뉴에이지 영성가들의 가르침은 하나님의 교회로부터 모두 추방되어야 한다.
그런데 일부 목회자는 유진 피터슨의 말을 그대로 인용하여 목회자의 영성관리에 대해 설명했다. 정말 명상을 통해 영혼이 고요해져야 정말 목회가 잘되는 것일까? 목회를 가장 잘했던 사도행전의 사도들과 제자들은 유진 피터슨이 말하는 것처럼 침묵을 통해 영혼을 고요하게 만들어서 큰 믿음의 능력을 발휘했었는가?
사도행전을 보면 오히려 그 반대이다. 사도들과 제자들의 영혼은 고요한 영혼이 아니었다. 생사가 오고가는 살벌한 선교상황 속에서 사도들과 제자들은 말씀과 기도에 전무하면서 분주하게 뛰었고, 성령은 그들보다 더 열심히 그들을 보호하시면 일하셨다. 그래서 그들은 고요한 영혼이 아니라 성령으로 충만해진 ‘담대한 영혼’이 되었다.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행 4:31)
“그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행 23:11)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면 주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것을 가르치되 금하는 사람이 없었더라.”(행 28:31)
성도의 영혼은 기도와 말씀으로 담대해야 한다. 유진 피터슨과 같은 사람은 아주 그럴싸하게 기독교 속에다 이방종교 사상을 배합하는 위험한 사람이다. 성도들은 영혼의 고요함을 추구하지 말고, 기도와 말씀으로 무장되고 성령과 함께 일하는 담대한 영혼 되기를 사모해야 한다.
출처 : 바른믿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