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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3-07-16 20:12
신학생 보내기 운동...과연 해결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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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창암
조회 : 1,668  

 “언 발에 오줌 누기”라는 속담이 있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놓은 급한 대책이 잠시 효과가 있을지 모르나 오히려 나중에는 더 악화될 수 있는 해결책임을 의미하는 속담이다. 실제로 언 발에 오줌을 누면 잠시 발이 녹지만, 곧 다시 더 얼어버린다. 미봉책(彌縫策)이라고도 한다. 표현만 다를 뿐, 눈가림만 하는 일시적인 대책을 의미한다. 이런 속담이 있는 건, 인류 역사에서 늘 그런 일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신학생 감소와 신학생 보내기 운동

신학생이 줄고 있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신학교 정원을 늘려달라는 청원이 있었다(2005, 2006년 총회). 그러나 2020년 이후 신학교 지원자는 정원보다 현저히 적다. 대책으로 2023년 고려신학대학원은 ‘한 교회 한 신학생 보내기 운동’을 펼치고 있다.

 바른 해결책인가?

 과연 이러한 해결책이 성경적인가? 개혁주의 직분관에 충실한가? 신학생과 목사를 중요하게 여기는 이들에게서 나올 발상인가? 아니면 ‘언 발에 오줌 누기’인가?

   ‘한 교회 한 신학생 보내기 운동’ 일종의 캠페인이다. 저출산 현상에 대해 ‘아기 낳기 운동’을 벌이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결코 될 수 없는 일이다. 그냥 일단 신학생을 모으고 보자는 것만큼 단순한 대책이 없다.

   어떤 문제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진지한 반성과 성찰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급하게 대책을 마련할 때 과정이 정당하지 못할 수 있고, 심지어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특히 신학생 감소가 단순히 사회학적 현상이 아니라 영적 현상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말씀을 살피고, 우리가 그동안 바람직한 방식으로 신학생을 뽑아왔는지, 왜 이렇게 신학생이 줄었는지,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등등을 영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목사 후보생의 감소가 목사직으로의 부르심에 시작점이라면 이에 대해 바른 직분관으로 성찰해야 한다. 교회를 불러 모으시는 주님께서(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50문답) 자기 교회를 목양케 할 말씀 사역자(Verbi Dei Minister)요 교사(엡 4:11; 딤후 1:11)인 목사를 부르시는 일에 있어서 줄이신 현상을 영적으로 해석하고 영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하지만, ‘한 교회 한 신학생 보내기 운동’이라는 표현에서부터 시작해서 그 방식으로 제시되는 대안들이 너무나 인위적이고 인본주의적이다. 결국 신학생은 끌어모을지 모르겠으나 당장의 감소 현상을 해결해 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오히려 교회의 세속화로 이어질 수도 있으며, 직분에 대한 교인들의 인식을 왜곡하게 만들 수도 있으며, 목사직에 합당하지 못한 신학생의 증가 문제로 인해 또 다른 문제점들을 낳을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진지한 반성과 성찰이 전제되어야 한다. 지금 현재는 신학생이 줄어들고 있지만, 신학생이 넘쳐나던 시절도 있었다. 불과 몇 년 전이다. 게다가 그 부작용은 현재 진행형이다.

   필자는 우리 나이로 46세다. 동기와 친구 중에 부목사로 봉사하는 이들이 태반이다. 언제 담임목사가 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던 일이다. 필자보다 20년 전 선배들은 30대에 담임이 되었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신학생 수급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아니 신학생이 모자랄 때 더 뽑아야 한다고 하듯이, 신학생이 넘쳐날 때 그만 뽑아야 한다는 주장이 있어야 했지만, 지금 현재 그 부작용에 대한 책임은 개인에게 돌리고 있다.

   그러니 신학생이 부족하다고 호소하기 전에, 신학생을 많이 뽑아 호황(?)을 누리던 시대에 대한 반성, 그 부작용에 대한 성찰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에 대한 반성 없이 그저 지금 현재의 문제만 해결하려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지게 만든다.

   그렇지 않고 그저 “한 교회 한 신학생 보내기 운동”이라는 구호는 지나치게 감정적이다.  

소명으로 접근하기보다 운동으로 접근하는 심각성

“한 교회 한 신학생 보내기 운동”의 가장 심각한 문제점은 근본적인 접근 방식이다. 신학생이란 목사 후보생이다. 목사라는 직분자를 세우기 위한 출발이다.

   직분자는 어떻게 세워지는가? 직분자는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세워진다. 소명(召命)이다. 운동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이때 소명이란 내적 소명과 외적 소명이라는 두 측면으로 나뉜다. 이 둘 중 어느 한 가지만 있어도 안 된다. 내적 소명만으로 직분자를 세우지 않고 외적 소명을 확인하는 이유는 내적 소명은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외적 소명을 통해 내적 소명을 확인받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소명은 결코 인위적이어서는 안 된다.

 목사의 경우 수많은 확인 과정을 거친다. 먼저 말씀으로 교회를 섬길 내적 소명을 강하게 느낀 성도가 노회로부터 외적 소명을 확인받는다. 노회는 그 사람을 목사 후보생으로 신학교에 추천한다. 신학교에서는 노회로부터 위탁받은 학생을 가르친다. 이 과정에 중도 탈락할 경우 외적 소명이 없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또한 노회는 매년 신학 계속 허락이라는 절차를 통해 외적 소명을 확인한다. 모든 과정을 마치고 신학교를 졸업한 학생은 그 실력을 테스트하여 강도사로 인허한다. 외적 소명을 확인하는 방식이다. 강도사 기간 동안 수련을 거쳐 노회는 목사 고시를 치른다. 외적 소명을 확인하는 방식이다. 고시를 합격해도 청빙이 없으면 임직하지 않는다. 외적 소명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목사 한 사람을 세우기까지 소명은 너무나 중요하다.

 그런데 신학생 보내기 운동은 내적 소명을 억지로 끌어내는 방식이다. “목사가 중요하다. 너는 목사가 될만하다”라고 자꾸 부추기면 자기도 모르게 내적 소명을 착각하게 된다. 오히려 무분별한 내적 소명을 점검하기 위한 방식으로서의 외적 소명 절차가 중요하다.

   안타깝게도 신학생 보내기 운동은 위와 같은 과정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없는 해결방식이다. 오히려 신학교라면 지금까지의 소명 확인 방식에 대한 진지한 점검을 해야 한다. 부족하다고 억지로 끌어내지 말아야 한다. 넘쳐날 때 마구 뽑아서 문제가 되어 나타나는 부작용이 현재 진행형인데, 부족하다고 부추겨서 소명을 착각하게 만드는 것은 더 위험하지 않을까?

 신학교 지원자가 줄어든다는 건, 내적 소명자가 줄어든다는 것인데, 부르심의 주체가 하나님이라는 측면에서 억지로 소명을 이끌어 내는 것이 과연 옳은지, 인본주의적이지는 않은지, 과연 신학생 확보가 ‘구인’과 같은 방식으로 하는 것이 옳은지 냉정하게 물어야 한다. ‘신학교’는 ‘신학생 확보’라는 일을 포함한 모든 일을 ‘신학적으로’ 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대안으로 제시되는 것의 문제점들

 신학생 부족에 대한 대안이 제시된다. 그 가운데는 수련회 개최가 있다. 그야말로 인위적인 해결책이다. 과연 70-90년대 수련회를 통해 소명을 강요(?)받는 방식이 정당했는가? 이른바 ‘강단 초청’(altar call)과 같은 아르미니안적 방식을 사용하였는데, 그렇게 해서 순간적인 감정에 따라 목사로 헌신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개혁주의 신학을 지향하는 고신교회가 그에 대한 철저한 반성을 해도 모자랄 판에 다시금 그런 방식으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너무 안타깝다.

   결국 신학생 부족 현상을 해결하기 위한 미봉책으로 제시된 ‘신학생 보내기 운동’은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오히려 더 큰 문제와 부작용을 낳을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결론

목사로 섬길 것을 독려하는 것이 결코 나쁜 일은 아니다. 목사가 부족하다는 현실을 알리고 그것을 해결하자고 말하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이는 바른 방식을 통해서 해야 한다. “이러다 큰일 난다”는 식으로 윽박지를 일이 아니다. 또 다른 부작용을 낳을 해결책이라면 안하느니만 못하다.

   신학생 부족 ‘현상’을 ‘문제’로 본다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이전에, 그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 인간적인 성찰이 아닌 영적인 성찰이. 이에 대한 신학적, 교회론적, 현실적인 토론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자기 교회를 위해 헌신할 자들을 친히 부르시지 않을까?(사 6:1-8; 렘 1:4-10)

손재익 목사 (한길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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