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형상에 대한 성경적 고찰
예배당 안에 십자가가 있어도 좋다든지 있으면 더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십자가 형상을 숭배하는 것이 아니니 별문제가 없을 뿐만 아니라,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예수님이 달리신 십자가를 생각하게 되고,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게 되니 좋지 않습니까?” 라고 반문한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논의가 예배당 안에 다양한 상(像, images, icon)을 세우고 있던 천주교회의 논의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예배당 안에 다양한 상(象)에 대한 천주교의 변명(辨明)은 이렇다.
“교 회 내의 상(象, icon)들에게 경배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배하고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데 더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상이 있는 것도 그 앞에 절하는 것도 사실은 그 상(象)에게 경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象) 배후에 계신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니 문제 될 것이 없다.”고 한다. 즉 오직 하나님께만 경배(latria) 를 드리는 것이니 예배당 안에 상(象)이 있고 심지어 그 상(象)에 절을 하고(dulia), 성자들을 존숭(dulia)해도 그것은 하나님께만 돌려 드리는 영예를 조금도 다른 데로 돌려 드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한국 개신교도들 가운데 십자가에 예수님의 상을 붙이자고 하는 사람들은 드물다. 그러므로 이것과는 다른 것이라고 하지만 그러나 교회당 안 십자가 부착을 찬성하는 그 배후 논리가 상당히 이와 비슷하다는 데 주의해야 한다. 천주교회는 상(象)을 통해 그 상 배후에 계신 하나님께 나아간다는 것이고 헌의 자들은 “십자가 자체가 아니라 ‘상(象)이 없는 십자가 형상’을 통해 그 배후의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를 생각하게 되니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과거 우리의 선배들이 왜 이것이 문제라고 여겼는지, 왜 어떤 것을 보면서 그것 배후의 것을 생각하게 하는 것 자체도 문제가 된다고 생각했는지를 돌아보아야 한다.
이러한 주장에는 가장 본질적인 문제가 있다.
첫째, 주님의 십자가를 사랑하는 것과 천주교가 주장하는 십자가 형상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우리가 십자가 형상이 있어야만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그 어떤 형상이 없이 영적으로 참으로 오직 영적으로 하나님께 경배하기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예배당 안에는 하나님에게 우리가 영적으로 나아가는 데 지장을 줄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있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다.
둘째, 예배당 안에 십자가 형상이 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수 없이 많은 악용과 오용의 문제들이 있다. 물론 이것은 부차적인 것들이다. 그러나 이것이 실제에 있어서는 더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천주교처럼 십자가 형상이 있으면 그것 앞에서 하는 기도가 더 효과적이고 생각하는 오용이 나타날 수도 있고, 중세 사람들이 그리하였듯이 그것을 붙잡고 기도하면 더 효과가 있다고 생각 할 수도 있으며, 그와 같은 수 없이 많은 오용들이 나타나기 쉬운 것이다. 천주교는 현재 바로 이런 상태에 있다.
이렇게 잘못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과거의 종교개혁자들은 처음 부터 그런 문제가 발생할 소지를 차단하려 했던 것이다. 실제로 그 시 대의 그들 자신이 형상(icon)의 오용과 영적 폐해(弊害)를 뼈저리게 경험 했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런 문제가 일어날 일이 없다고 할 수도 있으나 그것은 인간의 부패성을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우리는 오늘날의 로마 가톨릭을 보면서 이를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발체: 개혁신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