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민 박사(전 고려신학대학원 교수, 전 미국복음대학 교수)
대표적인 세가지 교회의 정치 형태들을 비교할때에
1. 감독교회는 최고 위치에 있는 1人의 생각이 교회를 지배하기 쉽기에 문제가 있고 2. 회중교회는 결국 민주주의적 다수의견이 성경을 통해 나타나는 그리 스도의 뜻을 대체하게 되기에 적절하지 않고 3. 당회중심의 개혁교회가 그리스도의 뜻을 가깝게 반영하기에 그래도 적절한 형태이다.
1. 감독교회
1) 감독교회 구조의 본질적 문제 그리스도의 뜻과 하나님의 은혜가 감독기구에 바르게 전달된다 하더라 도 감독기구를 이루는 자들은 각자의 인간적 성격 등에 관계없이 경직된 위 계질서하에 있으며 그리스도의 뜻 보다 바로 그 인간적 위계질서에 따라 평 신도를 실제로 지도관리함으로써 바른 course로 부터의 deviation(일탈) 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렇게 변형된 뜻으로는 교인을 바르게 하나님께 이 끌 수 없다.
2) 교인의 믿음과 영적 성숙의 문제 평신도는 기본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의 직접적 은혜에 의한 신앙적 자 발성이 결여되어 있으니 스스로 하나님께 예배할 수 없고 소위 영적기구인 감독기구가 예배를 통한 신앙적 표현을 하나님을 향해 직접 행해야 한다. 그러나 감독기구는 하나님의 은혜에 바르게 반응하는 진정한 예배 대신 자 체 위계질서에 따른 잘못된 예배, 즉 미사를 행할 뿐이다. 하나님을 향한 자발성이 없는 평신도는 감독들에 의한 미사를 관람(?)할 뿐이다. 3) 감독교회의 현실 평신도 개인은 세속적 삶 속에서도 자의로 신앙인적 표현의 삶을 살 수 없으니 감독기구가 세속에서의 교인들의 삶을 지도 관리할 뿐 아니라 앞장 서서 그들을 이끌어야 한다. 소위 영적기구라는 감독기구가 즉 동일한 감 독기구가 세속 정치, 경제에 있어서의 기독교 power를 과시하는 일종의 이익집단으로 변신하여 나타난다. 영적기구로서의 “베드로 사원”이 세속국가의 형태를 지닌 “Vatican 市國”으로 나타나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 다. 그런 이익집단이 교인들의 삶을 바르게 하나님께로 이끌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2. 회중교회
1) 회중교회의 비전과 이상 그리스도의 뜻과 하나님의 은혜가 교인 각자에게 바르게 전달되어 교인 들이 건전한 영적 회중의 교회를 형성하여 영적으로 바른 예배를 하나님께 드리고 또한 그 회중들이 함께 세속에서의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산 다는 취지와 이상을 가진 교회가 회중교회이다. 2) 인간의 연약함과 회중교회의 현실 하지만 그리스도의 뜻이 회중 각자의 마음에 들어오면서 바른 course를 벗어나는 deviation이 다양하게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이 결국 회중들의 마음이 아니겠는가? 교회가 감독기구 등의 중심으로 체계적인 신앙적 표 현을 할 수 없으니 그 대신 교회를 형성하는 회중이 ‘떼거리’로 영적으로 질 서 없는 즉흥적, 감성적 예배를 하게 될 것이며 때로 회중 중에 교회적 직 분과 무관하게 chief가 나타나서 때로는 독재적으로 때로는 민주적으로 통 일된 예배를 할 수 있으나 이미 왜곡된 course를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회중의 세속에서의 삶도 ‘떼거리’의 형태로, 때로는 ‘농민전쟁’과 같은 과 격한 형태를 취하든지 때로는 비폭력무저항(menonite 출신 미국의 신학 자 Yoder의 주장처럼)의 방식을 취할 수 있다. 이때에도 세속적 형태의 chief가 나타나 회중의 통일된 삶을 이끌면서 격리된 그들만의 삶의 형태 를 취하기 쉽다. 이 과정에서 성경적 원리가 배제되고 chief의 생각이 독 재적으로, 민주적으로 작동하게 된다. 작금, 당회의 역할이 다분히 배제되 면서 목자들의 개인적인 영성과 목장의 자율성을 강조하면서 운영되는 소 위 목장중심의 교회는 앞으로 어떤 형태의 모습을 취하게 될까?
2’. 무교회주의
1) 무교회주의의 이상과 비전 하나님의 뜻과 은혜가 개인에게 바로 전달되어 교회 없이 신자가 올바른 신앙적 표현을 하나님을 향해 행할 수 있다는 것이 무교회주의의 이상과 취 지이다. 2) 인간의 연약함과 무교회주의의 현실 무교회주의의 이상과 취지는 순수하고 고상하게 보이지만, 그 과정에서 인간의 부패와 연약함으로 인해 올바른 course를 벗어나는 deviation이 필연적으로 나타난다. 그 중에서도 교회와는 전혀 무관하게 세속적 삶을 지향하는 세속적 무교회주의와, 영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parachurch movement 같은 영적무교회주의가 있을 수 있다
3. 개혁교회
1) 인간의 연약함에 대한 개혁교회의 이해 그리스도의 뜻과 하나님의 은혜가 당회원에게 전달되어 그 당회가 교인 들을 지도관리 하지만 정도(正道)에서 벗어나는 deviation이 생긴다. 감 독교회와 달리 당회원들은 직분에 있어서의 직무의 차이가 있으나 신분에 있어서의 차이는 없으니 ‘위계질서’에 의한 왜곡이 아니라 할지라도 그리스 도의 뜻이 인간인 당회원의 마음을 통과하면서 약간의 deviation은 불가 피하다. 한편 그리스도의 뜻과 하나님의 은혜가 중생한 각자 교인들의 마 음을 움직여 그들로 하여금 교회를 봉사하면서 당회 중심의 교회가 영적으 로 바른 예배를 드리는 교회이게끔 일조하도록 하겠으나, 역시 인간의 마 음의 연약함 때문에 deviation이 불가피하다. 이러한 deviation들을 당회와 개교인 사이의 ‘하향식’,’상향식’의 융화가 일어나는 ‘interaction’을 통해 조금씩이라도 바로 잡아서 마침내 당회와 교인들이 본래의 그리스도의 뜻을 바르게 반영하는 course에 실제로 가까 워질 수 없겠는가? 그로 인해 교회는 당회중심으로 교인과 함께 올바른 영 적 표현을 통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 주로 합당한 영적, 진정한 예배 를 통해… 교회에서 감화 받은 개인들이 교회봉사도 하지만 자신들의 신앙 적 결단과 더불어 세속에서도 하나님 영광 나타내는 신앙 인격적 삶을 행 한다. 정치, 경제 등의 분야를 포함해서… 만일 당회가 앞장서서 교인들의 삶을 이끈답시고 -개혁교인들에게는 사실상 불필요한 일 - 세속에서의 자 기 과시를 하게 되면 사회속의 이익집단의 하나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따 라서 개혁교회에서의 기독교적 사회활동은 개개교인들이 개인적으로 또는 group을 형성하여 행할 뿐 당회중심의 교회자체가 앞장서서는 안 된다.
2) 개혁교회 교인과 당회의 특징 개혁교회의 모든 과정에서 ‘윤활유’가 될 수 있는 것은 교인들이 ‘은 혜’(Gabe)와 ‘사명’(Aufgabe)을 동시에 인지한다는 사실이다. 즉 개혁교 인은 수동적인 ‘칭의’를 넘어 능동적인 ‘중생’, ‘성화’의 존재이기에 하나님의은혜를 감사해하며 보답할 것을 사명 또는 과제로 인식한다. 그리고 그 사 명을 행할 수 있는 사실 자체를 또 다른 차원의 하나님의 은혜로 인지한다. 구체적으로, 개혁교인은 교회를 통한 은혜를 세속적 삶에서의 하나님 영 광을 나타내는 사명수행으로 인지하면서도 사명수행 자체를 또 다른 은혜 로 여기기에 더욱 열심히 감사함으로 사명을 수행한다. 개혁교인은 또한 하나님의 개별적 직접적 은혜를 통해 교회를 봉사하고 교회가 당회중심으 로 올바른 영적기구가 되어짐에 일조하는 사명을 인지하므로 그 사명을 또 한 번 은혜로 알아서 충심으로 사명수행을 한다. 당회는 당회대로 교인들 을 설교/성례/심방/교육 등을 통해 지도관리하며 바른 신앙적 삶을 사는데 도움 주는 것을 은혜와 사명으로 인지하여 열심히 행하고 교인들과 함께 영 적으로 바른 예배를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사명을 은혜로 알아 감사함으로 열심히 행한다.
(3) 개혁교회: “하나님의 은혜가 세우는 교회” 개혁교회는, 한마디로 은혜가 사명으로 사명이 또한 은혜로 깨달아지는 ‘선순환’이 가능하기에 당회와 교인들이 각자 사명수행을 은혜로 알아 열심 히 행하고 당회와 교인이 서로 서로 사명수행의 은혜를 인지하므로, 즉 한 하나님을 향한 서로의 사명수행을 같은 하나님의 은혜로 각각 인정하기에 당회와 교인들이 하향식, 상향식으로 접함에 있어서 conflict 보다는 ‘융 화’되는 상호작용이 쉽게 가능하게 될 것이다. 그를 통해 교회에는 그 누구 의 뜻도 아닌 그리스도의 뜻이 부각되어지고… 사실상 그리스도의 뜻이 교 회에서 부각되어진다 함은 성경을 통해 나타나는 그리스도의 뜻이 교회와 교인들의 현상황에 합당하게 적용됨을 뜻한다 하겠다. 성경적인 뜻을 바르 게 파악하는 일에 우위에 있는 목사와 장로로 구성된 당회가 은혜로운 사 명의 파트너인 교인들을 사랑과 친절과 인내로써 설득하여 - 주로 목사가 설교와 설교의 feedback을 통해 - 성경적 뜻을 진심으로 이해하게 되도 록 힘써야 할 것이며 현상황에 대해 솔직하게 개진하는 교인들의 의견을 열린 마음으로 경청하여 -주로 장로들이 심방을 통해 - 성경적인 뜻이 교회 와 교인들의 현상황에 될 수 있는 대로 바르게 적용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교인들도 자신들의 개인적 깨달음에 집착만 하고 있을 것이 아 니라 당회원들을 존경하면서 그들의 설교와 바른 설명을 받아들일 수 있어 야 할 것이다. 이런 은혜로운 사명의 파트너들 (당회와 교인) 사이에 ‘융화’ 되는 ‘상호작용’이 실제로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개혁교회에서 그렇게 중요한 interaction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한마디 로, 당회원들과 교인들이 자신들의 본래 주장의 course를 바꿀수 있어야 한다. 개혁교인들은 하나님 앞에서 감사함으로 책임을 다하는 사명자들이 기에 ‘아집’에 사로잡혀 있지 않고 자신을 되돌아보면서 ‘자책’할 수 있는 사 람들이다. 다르게 표현해서, 개혁교인은 나의 뜻이 아닌 주님의 뜻이 나타 나도록 ‘기도’하고 또 그 기도한대로 살고자 하는 사람들(ora et labora)이 기에 아집의 행동이 아니라 자책할 수 있는 삶을 산다. 왜? 기도했으니까. 당회원들이나 교인들은, 따라서 상대방의 의견이나 주장을 경청하면서 받아들일 것은 서슴지 않고 받아들임으로써 자신의 본래의 course를 스스 로 바꿀 수 있다. 또한 이들은 상대를 은혜로운 사명의 파트너로 알아서 사 랑과 친절, 인내, 그리고 존경심을 가지고 그 상대에게 자기의 생각을 설 명하며 설득하는 사명을 행하여 상대로 하여금 본래의 course를 바꾸게 할 수 있다. 그 사명수행을 귀찮아하지 않고 은혜로 알아서 감사함으로 열 심히 행하기에 그 상대가 자기의 본래 입장을 바꾸게 되기가 그만큼 쉽다. 이들은 하나님 앞에서의 책임을 아는 사람들이기에 때로 책임을 망각하고 잘못된 course를 갈 때에는 책임추궁을 당하고, - 그것이 곧 개혁교회의 권징 - 본래, 책임을 아는 이들이기에 권징을 은혜롭게 받아들이면서 자 기의 본래의 course를 바꿀 수 있다.
4) 개혁교회의 현실과 과제 그러나 현실적으로 교인들 중에는 아직 개혁교회 교인일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당회원들은 이런 이들을 잘 분별하여 모름지기 다르게 접근하는 지혜를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이들에게는 때로 신랄한 책임추궁보다는 사랑으로 덮어주고 보살펴 주면서 장기적인 계획을 가지고 개혁교회 교인 이 마침내 될 수 있도록 애써야 할 것이다. 특별히 목회자들의 기도와 헌 신, 그리고 희생적 노력이 요구된다고 하겠다.
5)개혁교회를 위한 현실적인 제언 (1) 당회원의 영적 자질과 당회의 역할 참고로, 개혁교회의 당회는 회의 방식에 있어서 감독교회의 ‘상명하달식’ 도 회중교회의 민주적 ‘다수결’방식도 아닌 성경적 뜻이 우선시 되는 ‘성경 적’방식이어야 한다. 성경적, 신학적 지식에 정통한 1인(人)의 의장(당회 장,목사)이 다수의 장로회원들의 수적 견제를 두려워할 필요 없이 성경적 바른 뜻대로 의사결정이 될 수 있도록 당회원들을 바른 설명과 설득으로 이 해시켜야한다. 그리고 교인들의 현 상황을 다각도로 인지하고 있는 장로들 의 주장도 존중되면서 그런 상황들에게 성경적 뜻이 어떻게 적용될 것인가 를 당회원 모두가 신중하게 숙의해야한다. (2) 당회,노회,총회에 대한 바른 이해 일종의‘상회’로오인되기쉬운‘particualr synod’(노회에해당). ‘general synod’(총회에 해당)등은 개체교회 위에 상설적으로 존재하는 감독기 구 같은 것이 아니고 개교회의 당회가 돌아가면서 전국 개교회들의 대표를 소집하여 임시적으로 구성되는 비상설협의체와 같은 것이다. 개교회들의 지역적, 신학적 한계 때문에 취급하기 어려운 문제들을 회의를 통해 결정 하며 그 회의 의장을 비롯한 임원들의 직무는 그 회가 끝남과 동시에 소멸 한다. 그러기에 특별한 감독기구나 감독의 성격은 일체 배제된다. (3) 말씀의 봉사자인 목사 개혁교회의 설교자는 말씀의 선포자인가? 말씀의 봉사자인가? 말씀은 물론 선포된다. 하지만 인간 선포자에 의해서가 아니고 하나님 자신에 의 해서다. 인간 설교자가 교인들에게 선포자로 보이려고 선포적 어투나 어휘 들을 함부로 사용해서 하나님에 의해 선포되는 말씀이 교인들을 감화하고 설복하고 설득하는 데에 방해가 되어서는 안 된다. 개혁교회는 원만한 interaction을 위해서도 설교자 자신이 선포자로 보이지 않고 봉사자로 나 타나져야 한다. 그 리고 개혁교회에서 설교는 예배의 중요한 부분으로서 예배 순서 속에 속하면서도, 전술한대로, interaction을 통해 교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바르게 경배하는 예배를 드릴 수 있게 하기에 예배 자체 를 가능하게 하는 예배의 초석이 된다 하겠다. (4) 성찬의 올바른 집행 전술한 ‘권징’,‘설교’와 함께 개혁교회에서 교회의 3대 ‘표지’로 중요시되 는 ‘성례’, 특히, ‘성찬’도 예배 시에 시행되기에 예배 순서의 한부분이 되지 만 당회가 주도하는 성찬이 교인들로 하여금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주님의 용서를 받아 올바른 자세로 하나님을 경배하게 하는 interaction으로 작 용하기에, 역시, 예배를 가능하게 하는 ‘초석’이 된다. (5) 개혁교회가 각성할 점 사실상, 전술한 감독교회 나 회중교회에서는 상호작용(interaction)이 라는 것이 필요 없으며 그러기에 잘못된 상호작용에 의한 conflict도 잘 일 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개혁교회에서는 상호작용이 원만하지 못할 때 교회 내의 분쟁의 가능성이 월등히 높은 것도 사실이다. 한국내 교회분열의 많 은 부분을 개혁주의적이라는 장로교회가 차지하지 않았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