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실천의 문제: 성경과 음성 중 무엇을 선호해야 할까?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과 성경 외적인 이차적 음성 모두를 열어둔다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 무엇을 더 선호할 것인지의 문제다. 지방교회의 창립자인 워치만 니의 신비주의적인 ‘하나님 음성 듣기’의 이단성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해석하여 하나님의 뜻을 배우는 것을 저차원적인 것으로 여기고, 영과 영의 직통 교감을 통해 더 고차원적인 계시를 선호한다는 데 있다. 현대판 영지주의라고 할 수 있다. 영지주의는 성경 자체를 직접적으로 괄시하지 않는다. 하지만 성경을 ‘이용’하여 고차원적인 의미를, 성경의 본래 의미가 과연 그러한지 전혀 상관하지 않은 채, 얻는 것에 집중한다. 결국엔 성경보다 성경 외적 계시를 우위에 두고 선호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성경은 성경대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데 사용하지만, 하나님께서 또렷이 들리는 음성이 아니라 내적 음성 즉 마음의 울림, 감동, 떨림 등 미세하지만 인지할 수 있는 방식으로 당신의 뜻을 알리실 때가 있다고 믿는다. 성경을 통해서는 보다 일반적이고 원칙적인 뜻을 알리신다면, 내적 음성을 통해서는(외적 음성도 마찬가지로) 구체적이고 적용적인 하나님의 뜻을 제시하신다고 본다. 그럴듯해 보이지만, 이런 구분은 하나님의 사람을 오히려 혼란스럽게 한다.
첫째, 하나님의 나타내신 뜻과 감추어두신 뜻은 분명하게 구분된다. 내적 음성으로 우리가 알고자 하는 뜻은 분명히 나타내신 뜻이 아니라 감추어두신 뜻이다(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다). 계시가 아니라 섭리의 영역이다. 미세한 힌트를 가지고 아무리 알려 해도 정확히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것은 계시로 확증될 때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먹지 말라고 하신 나타내신 뜻에 순종하면서 사람은 동산의 모든 나무를 임의로 먹을 수 있었다. 내적 울림과 감동을 통해 오늘 반드시 먹어야 하는 실과를 찾아야만 했던 게 아니다.
둘째, 그런데도 우리가 하나님의 감추어두신 뜻을 추측하며 어떻게든 힌트를 얻기 위해 마음에서 일어나는 감정의 변화에 귀 기울이는 것이 하나의 습관이 된다면, 우리는 확신을 가지고 살기보다 불안감을 가지고 살게 될 것이다. 음성을 듣는 이들은 습관적으로 음성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데, 하나님이 말씀하시지 않을 때조차 하나님이 뜻하신 바가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이 정하신 답에 맞게 선택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인지 맞추기 무척 어려워진다. 뭔가 일이 잘못되면 하나님의 뜻을 잘못 분별한 자기 책임이기 때문에 죄책감과 수치심을 갖고 후회한다. 하나님은 분명한 진리로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는 분인가? 아니면 당신의 뜻을 추측하며 거기 매여 살게 하시는 분인가?
조정의 목사: 유평교회, Master’s Seminary 에서 M.Div와 Th.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