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마틴 로이드 존스가 살아있다면, 미국 켄터키주 애즈베리 대학교에서 2월 8일부터 3주에 걸쳐 이어진 부흥 집회를 어떻게 평가했을까? 좀 더 시간을 두고 참된 부흥의 열매가 나타나는지 지켜보자는 신중론, 틀림없이 성령께서 기름 부으신 놀라운 부흥의 역사라고 보는 긍정론 중 어느 쪽으로 기울까? 존 파이퍼는 영적 거장 특강 시리즈 마지막 9권인 <부흥의 영웅들>에서 마틴 로이드 존스를 다루며 성령의 강력한 부흥의 역사를 기대했던 그가 비판한 오순절 주의를 다뤘다(부흥과개혁사, 2022).어쩌면 우리는 여기서 조심스럽게 로이드 존스의 평가를 예측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1. 건전한 교리적 근거를 가지고 있는가? 가지고 있지 않은가?
(1) 로이드 존스는 부흥이 건전한 교리적 근거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토드는 애즈베리 부흥의 열매를 신중하게 살펴보기도 전에 성령의 역사라고 칭송한 사람들의 이름을 언급한다: 타드 벤틀리(33명의 죽은 자를 살리고, 100명 이상의 청각 장애인을 고쳤다고 주장하는), 션 포이트(벧엘 뮤직), 셰인 클레이본(기독교 활동가, 작가). 이들의 공통점은 건전한 교리적 근거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토드는 애즈베리 채플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활동은 ‘워십’(찬양)이 대부분이고, 성경을 강해하는 설교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성경이 말하는 부흥과 얼마나 다른가? 에스라는 율법책을 백성들 앞에서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가르쳤다. 새벽부터 정오까지. 첫날부터 끝날까지 날마다(느 8장). 참된 부흥은 이처럼 건전한 교리적 근거 위에 일어난다.
토드는 이어서 죄, 하나님의 심판, 회개가 거의 언급되지 않으며, 애즈베리에 방문한 몇몇 사람의 말에 따르면 복음을 한 번도 말하지 않았다고 고발했다. 성령은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신다. 성령은 믿음을 주시고 회개에 이르게 하시며 복음의 효력을 맛보게 하신다. 이런 건전한 교리적 근거 없이 성령이 일으키시는 부흥은 정말 참된 부흥인가?
2. 성령의 주권적인 역사인가? 사람이 만든 이벤트인가?
(2) 은사주의자는 자기가 하는 일을 너무 강조하고 성령이 자신의 마음대로 오시고 가시는 자유와 주권을 충분히 강조하지 않는다
(3) 은사주의자들은 때때로 방언을 성령 세례의 표지로 주장하지만, 로이드 존스는 당연히 그것을 거부한다
(4) 그러나 훨씬 더 자주 대부분의 은사주의자들은 자기들이 원할 때마다 방언을 말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2-4번까지, 존 파이퍼가 정리한 로이드 존스의 평가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성령이 일으키신 부흥은 인위적이지 않다는 말이다. 교회사에서 진짜 부흥의 역사는 분명 있었다. 이안 머리는 1차, 2차 영적 대각성 운동이 실제로 성령의 역사였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후에 곧바로 ‘부흥 주의’라는 인위적인 운동이 뒤따랐다는 것을 냉철하게 지적했다(부흥과 개혁사에서 나온 <부흥과 부흥 주의>를 읽어보라).
로이드 존스는 성령께서 자유롭게 오시고 가시고 역사하시는 주권을 충분히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방언만을 특별한 성령의 표지로 여기며 언제든지 원할 때마다 성령을 불러올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성령의 자유와 주권을 인정하는 태도가 아니라 지극히 주관적이고 인위적인 방식이다.
3. 특별한 은사에 관심을 두는가? 성경적 회심에 관심을 두는가?
(5) 너무 자주 체험은 간증을 위해 능력을 부여받는 것과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 자체를 위해 추구된다
(6) 은사주의자들은 어떤 사람이 강력한 은사가 있으면, 그는 좋은 사람이고 인도하고 가르치는 일에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실수에 쉽게 빠질 수 있다
(7) 은사주의자는 독특하게 성경의 설명보다 주관적인 인상과 특별한 은사에 더 관심이 있는 경향이 있다
(8) 은사주의자는 때때로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이성을 통제하는 것을 포기하고 스스로를 놓아 버리도록 부추긴다
로이드 존스는 은사중지론자가 아니었다. 이안 머리는 오순절에 일어난 성령의 역사에 관하여 로이드 존스가 한 말을 소개했다: “이 모든 은사가 사도들 또는 사도 시대와 함께 끝났다고 말하는 것은 성경적 근거가 전혀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그 이후로 의심할 여지 없는 기적이 있었다고 믿는다”(존 파이퍼가 인용한 이안 머리의 마틴 로이드 존스 전기, <부흥의 영웅들>, 82p). 하지만 로이드 존스는 오늘날 은사 주의자가 추구하는 체험, 능력, 주관적 인상이나 은사에 주목하지 않았다. 이성을 놓고 비이성을 좇는 행위를 좋게 보지 않았다. 로이드 존스는 성령의 역사를 기대하고 바랐지만, 중심은 그리스도의 영광, 성경의 설명, 이성을 벗어나지 않았다. 은사의 강력함이 어떤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성경적 자질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확신했다.
토드 프리엘은 애즈베리에서 지금 성령의 부흥이 일어나고 있는지 헤아려보자고 하면서, 성경 중심으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추구하며 거룩함을 좇는 개인과 교회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임재와 능력을 강하게 느끼고 경험하는 주관적 체험이 강조되고 있는 것 같다며 우려를 표했다. 애즈베리 부흥을 경험한 이들의 TV 인터뷰에서는 성령을 강하게 체험했다는 말이 주를 이루고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얘기는 거의 없었는데, 토드는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하시는 일은 아들의 영광을 알게 하시고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는 것이 아니냐고 묻는다. 애즈베리에서 그들이 강하게 체험한 것은 결국 무엇이냐는 근본적인 질문이다.
토드는 로이드가 우려한 체험 중심의 부흥이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특징으로 참된 개혁이 교회 안에서 밖으로 번져 구원의 역사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체험이 있는 곳으로 사람을 끌어오게 하는 데서 멈춘다는 것을 지적했다. 또한 애즈베리 채플에서 방언과 여성 목사의 가르침, 심지어 귀신을 쫓아내는 행위가 일어난 것에 유의하라고 경고했다. 이 또한 주관적인 경험과 특별한 은사에 치우친 부흥 주의의 특징이다.
존 멕아더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