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내적 위기
지금까지 한국교회가 당면하고 있는 외적인 위기들을 간단히 살펴보았지만 가장 심각하고 결정적인 문제는 교회 내부에 있다. 한국교회가 타락하였고 이 타락은 당분간 가속될 것이며, 이로 인해 한국교회가 이미 사회로부터 신뢰를 상실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에 대한 신뢰도는 전도와 직결돼 있고 교회의 미래 운명을 좌우하는 문제다.
이문장은 “기독교에 대한 한국인들의 배타적인 정서가 서서히 형성되고 있고 또한 확산되고 있다. 민심을 끌어당기는 감화력은 점점 상실되고, 오히려 교회가 일반인들에게 불신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평가도 이미 10여 년 전의 평가라서 오늘의 현실과는 거리가 있는 온정적인 평가이다. 지금 한국교회는 사회로부터 차츰 증오의 대상이 돼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불신이 어디서부터 온 것일까? 한국교회가 물량주의적인 성장주의에 휩쓸리면서 기독교신앙의 동력이 상실돼왔는데, 이 영적인 쇠약이 윤리적 타락으로 이어져 오늘의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사회적 불신은 교회의 불신앙에서 비롯되었다. 교인들의 신앙이 약화되면서 교회에 대한 사회의 불신은 강해졌다. 그런데 더 답답한 일은 한국교회의 많은 지도자들이 스스로 자해행위를 하고 있으면서도 이에 대한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혹은 인식은 하고 있지만 어떻게 이를 극복해야 할지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고, 그러면서 무력감에 빠져 있는 지도자들도 많다.
한국교회의 신뢰도를 추락시키고 있는 요인들이 무엇인가? 이미 대부분 상식처럼 알고 있는 내용들이지만 확인하는 차원에서 몇 가지만 정리해보려 한다.
2-1. 목회자의 과잉배출과 질적 저하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신학교의 난립이다. 그 수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힘들 정도로 많다. 결과 목사의 양산이 경쟁적으로 이루어짐과 동시에 목사의 도덕적 영적 성품과 자질은 심각하게 저하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대부분 이런 상황을 알고 있지만 교회가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나 자정능력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첫째는 교파분열로 신학교가 계속 세워지고 있는데 이를 통제하고 조정할 수 있는 그 어떤 기관도 없을 뿐 아니라 방법도 없다. 교파분열이 교리나 신학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인 패싸움(?)의 성격이 크기 때문에 자파의 신학교를 따로 설립할 이유가 없는데도 교파주의의 연장으로 신학교를 세운다.
둘째는 일단 신학교가 설립되면 "유지관리를 위한 재정자립"이라는 현실적인 요구에 매여 학생 수를 조절하거나, 자격자를 선발하는 일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셋째는 설사 규모 있는 신학교에서 학생을 선발한다 해도 낙방한 학생들이 목사 되기를 포기하지 않는 한 어느 신학교든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몇몇 신학교가 학생을 선발한다 해도 한국교회 전체로 보면 선발이 아무 의미가 없다.
결국 자격이 없거나 질 낮은 목사들이 계속 양산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그리고 이것은 교회의 모든 문제의 근원이 되고 있다. 그리고 교회는 영적인 공동체임으로 교회갱신은 제도나 법으로 이루어지기보다는 구성원들의 영적인 성숙으로 이루어지는 것인데 교회의 지도자인 목사의 자질 저하는 교회의 타락과 직결된다.
이와 같이 오늘날 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자격이 없는 목사의 양산이다. 여기서 모든 문제가 발생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제도나 법의 문제를 뛰어넘는 근원적인 문제이다. 그런데 참으로 답답한 것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도 그 가능성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누가 교파의 분열을 막고 신학교의 난립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현재 무임목사나 미자립교회의 목사들에게는 복음전도와 하나님나라를 위한 헌신이라는 사명감을 새롭게 하거나 목회자로서의 영적 권위의 회복을 논할 여유가 없다. 거의 60% 이상의 목회자들이 생존을 위해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절박한 처지에 있고, 이런 목사회자들의 수는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요즈음은 복음전도의 사명보다 먹고 사는 일이 우선이 되고 있는 "생계형" 목회자들이 늘고 있다.
2-2. 계속 터져 나온 대형교회 목사들의 대형사고
한국교회 신뢰도 추락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교회 내에서 일어난 윤리적 대형 사고들이다. 목사들의 성적인 비리들, 재정사고 곧 횡령과 배임으로 입건되거나 구속되는 목사들, 담임목사직 세습, 총회장이나 어떤 직책을 맡겼다고 정치인들 이상으로 타락한 선거운동을 벌이는 목사들, 남의 설교를 그대로 베껴서 설교한 목사들, 그리고 세상 사람들과 아무 다를 바 없는 신자들의 행태가 한국교회의 윤리성에 먹칠을 해왔다.
이런 일들을 보면서 불신자들은 기독교에 대한 실망을 넘어 분노를 표출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기대했던 것들에 실망하게 되면 분노한다. 불신자들은 교회 밖에 있지만 그래도 기독교에 대해 기대하는 바가 있다. 그들은 교회를 바라보며 “진리체득의 치열함, 자기를 부정하는 모습, 이타적인 사랑의 실천, 세상 가치관을 뛰어넘어 사는 사람들, 이 세상에서 누리는 재물과 명예와 권세에 초연한 모습, 빈부귀천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을 귀하게 여기는 자세 등”기대한다. 그런데 이런 기대와는 정반대되는 사고들이 터지게 되니 실망을 넘어 분노가 일어나는 것이다.
사실 이런 대형 사고를 낸 목사들은 소수다. 그런데도 한국교회의 신뢰도에 미친 영향은 측량키 힘들 정도다. 한국교회에도 “숨겨진 7천명” 같은 선량한 목사들이 많이 있지만 이들의 존재는 드러난 소수 목사들이 저지른 사건들에 함몰되어 버리고 만다.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소수의 나쁜 사건들이 가져오는 악영향에 대해 이원규 교수는 흥미로운 주장을 하고 있다. 그는 “사회적 존경과 신뢰에 대한 보다 중요한 척도는 친사회적 행위를 얼마나 하는지가 아니라, 반사회적 행위를 얼마나 하지 않느냐 하는 것이란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이타주의와 같은 행위가 종교인에게는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지만, 일탈과 같은 행위는 철저하게 하지 말도록 요구되는 사항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 따라서 종교의 도덕성 수준 평가는 긍정적 기준보다 부정적 기준에 더 의존하는 것 같다. 즉, 종교인에게 보다 강하게 요구되는 도덕성은 좋은 일을 하는 것보다 나쁜 일을 하지 않는 것이라는 말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