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교회분립개척의 의의
5-1-1. 성장주의 극복
앞에서도 언급하였지만 한국교회를 이렇게 타락시키고 쇠퇴하게 만든 주원인을 찾는다면 그것은 바로 성장주의라고 단언할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교회성장을 추구하는 성장주의가 한국교회를 병들게 만들었고, 교회를 쇠퇴케 만들었다. 교회가 성장을 추구하는 것이 결코 나쁜 일이 아니지만, 이를 추구하는 목회자들이 거룩함을 잃어버리고 세속주의에 오염되면서 역작용이 일어난 것이다. 영혼구원보다는 교회성장에, 생명보다는 숫자에 관심이 더 집중되었다. 그리고 목회자들이 교회성장 자체보다 이를 통하여 주어지는 세속적인 명예와 권세에로 경도되기 시작하면서 “많은 교인, 큰 교회당”은 우상이 되었다. 필자는 이런 잘못된 성장주의를 극복하고 교회를 세우신 주님의 목적에 충실하려는 방법 중 하나가 교회분립개척이라고 생각한다.
성장주의는 일부 목회자들이 가진 사상이 아니다. 거의 모든 목회자들이 여기에 휩쓸려있다. 필자도 담임목사로서의 사역을 시작하면서 하루도 빠짐없이 내적 외적으로 압박을 받았던 것이 바로 교회성장 곧 교회의 양적인 부흥이었다. 교인수에 대한 관심이 항상 필자를 압박했다. 그리고 겉으로는 필자가 말하는 부흥이 단순히 양적인 부흥이 아니라 영적인 부흥이어야 한다고 강조하지만, 이마져도 결국 양적 부흥의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며 고통스러워해야 했다.
5-1-2. 안정적인 교회개척
교회분립이 교회개척의 안정적이고 확실한 방법이다. 지금은 예배 장소를 준비하고 교역자를 파송한다고 해서 교회가 세워지는 때가 아니다. 특히 교회가 사회적 신뢰를 잃고 큰 위기를 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옛날식의 교회개척은 거의 불가능하다. 기성신자든, 초신자든, 구도자든 누가 썰렁한 자리에 앉아 제대로 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릴 수 있겠는가? 모교회는 재정지원뿐 아니라 교역자와 교회개척에 뜻을 가진 교인들을 함께 파송해야 한다. 그래야 교회가 처음부터 안정된 가운데 시작하여 본래의 사명에 충실할 수 있다.
교회개척을 그야말로 맨바닥에서 시작하게 되면 교회가 자립이 될 때까지는 오직 서바이벌 하는 일에 모든 에너지를 쏟게 되고, 그러다 보니 자립을 위해서라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게 되어 비신앙적인 것은 물론 비윤리적인 일들까지 많이 저지르게 되는 것이 오늘 우리의 현실이다. 자칫 교회개척이 영구적인 미자립교회를 설립하는 결과를 가져올 뿐 아니라 목회자들을 성직자가 아니라 생계형 직업인으로 내몰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또 목회자와의 개인적인 관계 때문에 자의반 타의반 개척교회에 참여하게 된 소수의 교인들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들도 얼마 지나지 않아 영육 간에 탈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교회분립개척은 이런 부작용을 막고 처음부터 교회가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해준다.
5-1-3. 교회 건강성 제고
교회분립은 교회개척을 건강하게 할 수 있는 방법임과 동시에 교회를 더욱 건강하게 가꾸어가는 방안이기도 하다. 대형교회라고 해서 다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교회가 대형화되는 것은 여러 가지 면에서 많은 위험이 동반된다. 가장 첫 번째 문제는 기독교 신앙의 터요 기둥인 그리스도의 주되심(the Lordship)에 대한 신앙고백이 약화되거나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의식하는 목회자도 교인도 많지 않지만, 필자는 성장주의와 함께 이것이 한국교회를 타락하게 만든 가장 큰 요인들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목회자의 탁월한 리더십과 카리스마에 의해 대형화된 교회에서는 담임목사가 - 때론 담임목사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이 - 교회의 로드십의 일정 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그가 가진 영적 권위는 동시에 실제적인 권력을 수반하게 되는 데, 이런 중에서도 끝까지 겸손을 견지할 수 있는 목사들은 많지 않다. 담임목사가 주님처럼 떠받음을 받는 교회에서 목사가 스튜워드십(stewardship)을 계속 유지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는 말이다. 리더십에서 스튜워드십이 약해지면 교회의 건강도 크게 약화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또 하나 대형교회가 갖기 쉬운 문제 중 하나는 성도의 교제가 현저히 약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성도들이 서로를 알고 사랑하며 섬기는 삶의 공유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피로 거듭난 성도들의 공동체다. 이 공동체는 바로 하나님의 권속이요 영적인 가정이다. 이것은 교회가 가진 본질적 특성이요 교회의 정체성이다. 구원이란 개개인이 새 생명을 얻는 것만이 아니라 새로운 공동체가 이루어지는 것이요 하나님나라가 임하는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교인들이 이것을 교리적으로는 인정하지만 삶으로는 고백하지 못한다.
교회들마다 홀로 신앙생활 하는 익명의 교인들, 주일예배에만 참석하는 교인들이 많다. 이런 현상은 우리 사회가 산업화와 도시화로 급변하면서 한국교회 전체가 이미 오래 전부터 당면하고 있는 교회외적인 문제이기도 하지만 내적으로도 교회가 대형화되면서 더욱 악화되었다. 교회는 병든 사회를 치유하는 공동체인데 오히려 세상이 좇는 물량주의에 휩쓸려 공동체성이 약해져버렸다. 기계에서 기계로(machine to machine)의 사회일수록 얼굴과 얼굴을 대하는(face to face) 인격적인 만남이 더욱 중요하고 필요한데 교회가 이를 잃어가고 있다. 교회의 교회됨 곧 공동체를 회복해야 한다. 이를 위해 건강한 중소형교회를 많이 세워야 한다. 교회분립은 이를 위해서도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다. 대형교회들은 교회분립을 통해서 교회 공동체성의 제고를 도모해야 한다.
5-1-4. 평신도 사역자 개발
교회분립개척은 잠자는 일꾼들을 깨워 분발시킬 수 있다. 어느 교회나 여러 가지 이유로 잠자는 일꾼들이 있다. 리더십에 대한 불만 때문에, 다른 교우들과 깨어진 관계 때문에, 혹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없어서 뒷자리로 물러나 있는 교인들이 있다. 교회분립은 이런 사람들을 일깨워 열심 있는 봉사자들로 서게 할 수 있다.
그리고 큰 교회들에서는 새로운 일꾼들을 개발하여 세우는 일도 쉽지 않다. 교인들끼리 서로 얼굴도 잘 모르니 각자가 가진 은사들을 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러다보니 직분자를 선택하여 세우는 일도 원만하게 이루어지지 않게 되고, 이런 분위기가 오래 가면 교회직분을 세속적인 관점으로 바라보게 되는 타락이 보편화될 수 있다. 사실 한국교회는 이 문제에서도 아주 심각한 상황이다. 하지만 중소형교회에서는 교인들이 친밀한 교제를 통하여 서로 잘 알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자들을 분별하여 합당한 자들을 세울 수 있다.
5-1-5. 모교회의 영적 쇄신
분립개척은 분립되는 자매 교회뿐 아니라 분립하는 모교회도 영적인 쇄신과 부흥을 이룰 수 있다. 교회가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목회자나 몇몇 장로들의 독특한 리더십 때문에 교회가 영적으로 정체되거나 심한 경우 갈등이 일어나는 경우가 있는데, 교회분립은 이런 문제들을 해소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기도 한다. 한국교회의 지난 역사는 분립이 아닌 분열의 역사로 점철돼왔다. 싸우다가 분열하는 것은 많은 교인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게 되고 밖으로는 전도의 문을 막는 비극이 된다. 교회를 설립하는 적극적인 믿음과 복음전도의 열정으로 교회를 분립할 수 있다면 이는 일석삼조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