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독교에서 ‘영성신학'이라는 말이 많이 사용되고 있는 것은 한국교회의 세속화의 영향 때문이 아닌가라고 생각해 봅니다. 그러나 교회의 교회답지 못함을 '영성운동'을 통해 해결한다는 의미는 일면 그럴 듯해 보이기는 하나 여간 조심스럽지 않습니다.
전통적인 영성신학은 성경적이 아니라 인본주의적 신학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시대에 영성신학이라 하면 대부분의 교인들이 긍정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대개 '영성'이라는 말을 '육적' 혹은 '물질적'이라는 말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 신앙인들은 육적이고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을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기독교에서 '영적'이라 할 때는 단순히 '육적'인 것에 대비되는 개념으로써 영적(spiritual)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성령적'(Holy Spiritual)이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성령적이란 성경과 성령의 가르침에 순종한다는 의미여야 하며 이는 단순히 비육체적 혹은 비물질적이라는 의미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전통적 영성운동은 원래 로마교회와 동방정교회에서 일어난 운동입니다. 그들은 그 운동을 통해 수도하는 삶을 살며 영적인 수양과 훈련을 이루어 전인(全人)을 추구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영성운동이란 성령의 인도하심이란 의미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 인간의 자기수양을 통한 인간성 회복을 추구했던 것입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인간의 자기수양과 일종의 인간적 득도(得道)와 같은 것일 따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시대 일부 기독교에서 전개되는 영성운동은 위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진리보다는 인간의 종교적 윤리를 강조하는 어리석음에 빠질 우려가 있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우리시대의 교회가 굳이 영성운동을 새롭게 추진할 필요가 없습니다. 더구나 전통적 영성운동이 추구하고 있는 바를 잘 알고 있는 우리로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우리가 진정한 ‘영성회복’을 바란다면 ‘말씀회복운동’을 전개해야 할 것입니다. 중세 종교개혁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할 것을 외쳤는데 우리시대에도 그와 같은 운동이 일어나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말씀운동과 영성운동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말씀운동은 그 출발이 인간내부가 아닌 하나님의 계시에서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성운동이라 하면 그 출발이 인간의 자기내부에서 출발하게 됩니다. 이는 엄연히 다른 의미이며 그 출발점을 전혀 달리합니다.
진정으로 성령이 충만했던 인물들은 성경에 잘 소개되고 있습니다. 구약성경에 나타나는 여러 선지자들이나 신약시대의 여러 사도들이 곧 그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을 매우 심하게 꾸짖으셨으며 그들을 향해 화를 내기도 하셨습니다. '독사의 자식들' '회칠한 무덤' 등의 극언을 사용해 가시며 그들을 질책하셨던 것입니다. 세례요한도 자신에게 세례를 받기 위해 요단강으로 나아온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마3:7)며 강하게 질책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베드로가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죽음에 내어준 사실(행5:1이하)을 우리는 잘 알고 있으며 사도바울이 극한 투쟁 가운데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지키려 애썼던 사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영적인 사람이란 바로 그런 사람들을 말하며 우리가 배워 익혀야 할 영성이란 바로 그러한 영성입니다. 만일 그러한 영성이 아니라면 그것은 성경이 말하는 바 영성이 아닙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영성을 회복하여 영적인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면, 주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했던 세례요한이나 베드로, 바울 등이 소유했던 것과 같은 영성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인간중심의 영성운동이 널리 환영 받는 이러한 때에 복음을 아는 우리들이 행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말씀회복을 위해 애쓰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오직 말씀'(sola scriptura)만이 우리의 잣대이며 말씀을 통해서 만이 우리의 영성을 회복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어지럽기 짝이 없는 우리시대에 진정한 영성회복 운동은 성경말씀의 교훈들을 좇아 일어나는 말씀회복운동이어야 하겠습니다.
조에성경신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