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바울의 선교 사역을 “바울 전도 여행”이라 부르는 데 익숙합니다. 여러 선교단체들은 바울의 선교를 모델로 하여 각종 순례전도 프로 그램들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선교는 (그런 선교 프로그램들 기획자들이 흔히 짐작하는 것과는 달리) 이 마을 저 마을로 유랑하며 복 음을 전하는 식의 소위 길거리 전도가 아니었습니다. 그의 선교의 화살 은 오직 한 가지 과녁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선교 현지에 교회를 건설하는 일이었습니다. 전도만 하고서 훌쩍 떠나버리는 대신, 그곳에 교회를 설립하고 또 그 교회가 보존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바울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장로(들)”입니다.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 금식기도 하며 그들이 믿는 주께 그들을 위탁하고”(행14:23)
“내가 너를 그레데에 남겨 둔 이유는 남은 일을 정리하고 내가 명한 대로 각 성에 장로들을 세우게 하려 함이니”(딛1:5) 매우 긴급한 피신 등을 제외하면, 바울은 선교 현지에 교회를 설립하 여 일정 기간 말씀사역을 한 뒤, 그곳에 장로들을 세운 후에야 다른 곳으로 떠났습니다. 그의 신실한 동역자인 디도를 크레타 섬에 남겨둔 이유 역시 이를 위해서였습니다.
바울은 동역자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 속에서 두 종류의 장로, 즉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장로(목사)와 다스리는 장로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딤전5:17). 장로들은 교회의 지속적인 예배와 정결의 보존, 즉 말씀과 성례와 권징사역을 위한 필요조건니 다(행20:28-32).
그러니 이런 중요한 직무를 수행할 사람들에 대한 검증을 교회가 어떻게 게을리할 수 있겠습니까?(딤전3:17; 딛1:5-9). 각 노회의 목사고시와 장로고시는 참 교회의 건설과 보존을 위해 매우 엄정하고 공정한 기준과 과정 위에서 시행되어야 합니다. 이뿐 아니라 선교 현지의 교회라는 이 유로, 그 나라가 물질적으로 우리보다 궁핍하다는 이유로, 후보자들의 학력이 낮다는 이유로 성경적 기준을 후퇴시켜서는 안 됩니다.
16세기 개혁자들은 한결같이, 올바른 말씀 선포와 올바른 성례가 있는 곳에 참 교회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칼빈은 이것이 장로(목사와 장 로)제도를 통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로마 천주교에 의해 수 세기 동안 사라진 성경적 장로 제도를 부활시켰습니다. 유럽 전역 에 흩어진 남은 자들은 “우리에게 나무토막을 보내주십시오. 그러면 화살을 만들어 돌려드리겠습니다.”라는 칼빈의 외침에 부응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제네바로 와서 배우고 돌아가 말씀과 성례가 살아 있는 교회를 건설했습니다. 이 모든 일은 바로 성경적 장로 제도의 회복과 맞물려 있습니다. 1907년에 시작된 한국장로교 독노회, 그리고 신사참배로 얼룩 진 역사의 현장 가운데 설립된 고려신학교는 모두 말씀과 성례를 바르게 세우는 성경적 장로교회와 맞물려 내딛은, 작지만 획기적인(historic) 발 걸음입니다.
칼빈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 실 마리가 된 것은 “택하여[헬라어 케이로토네산테스(χειροτον?σαντε?)]” (행14:23)라는 표현이었습니다.
칼빈은 이 단어가 고대 사회에서 투표의 전형적인 방식인 “거수(擧手)하다”, 즉 “손들어 선출하다(elect by raising hands)”는 뜻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를 통 해 교회의 직분자들이 위로부터 임명되는 방식이 아니라, 성령 받은 성도들 즉 교회 회원들의 투표에 의해 선출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오늘날 목사 청빙, 장로 선출을 위한 투표는 세속의 문화가 교회 안으로 유입된 것이 아닙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계시해주신 놀라운 은혜요 성령 받은 교회/성도가 수여받은 특권입니다. 우리가 이 언약의 특권을 가벼이 여기거나 남용할 때, 그리스도의 신부는 폭군 직분자들에 의해 그리고 권위를 업신여기는 무법한 회중에 의해 더럽혀질 것입니다. 하늘 보좌에 앉아 계신 장로(벧전5:4)께서는 지금도 이 땅 위의 신실한 장로들을 통해 교회를 지키시며(벧전5:1-3), 성도들의 순복을 명령하십니다(벧전5:5).
발체: 권기현 목사/ 월간 고신 생명나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