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명확하게 명예 직분을 금한다.
그 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교회의 모든 직분은 봉사이다.
모든 봉사가 반드시 직분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모든 직분은 반드시 봉사여야 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친히 직분자로 이 세상에 보냄을 받아 봉사의 길을 걸었기 때문이다.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는 “인자가 온 것을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고 하셨다.
따라서 이 세상에 세움 받은 교회의 모든 직분자는 지상에 있는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그리스도를 섬기도록 부름을 받은 종에 불과하다. 그래서 신약성경은 직분을 가리켜 ‘사역자’ 혹은 ‘종’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데는 큰 뜻이 있다(고전 3:5).
교회 직분자가 그리스도의 종의 자리를 떠나고 그분의 말씀을 벗어날 때는 직분으로서의 특성과 권위를 잃는다. 성경은 신자들도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라고 부른다(살전 1:9, 롬 12:11, 14:18, 골 3:24, 벧전 2:16).
그렇기 때문에 봉사가 아닌 명예를 위해 직분을 세우는 것은 그리스도의 길이 아니다.
둘째, 성경은 모든 교회가 항상 신실하게 시행해야 할 공적 직무 혹은 공적 사역이 있고, 여기서 해당하는 직분이 나오고, 그리고 그 직무에 적합한 은사와 능력을 받은 특정한 사람이 그 직분으로 부름을 받는 것을 순서로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성경은 ‘교회의 공적 직무→ 직분 → 사람’의 순서를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제시하는 교회가 신실하게 시행할 공적 직무는 어떤 것일까? 저명한 개혁교회 법학자 바우만(H. Bouwman)은 이렇게 말했다.
“그리스도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그의 교회를 가르치기 위해 최고의 선지자와 교사로, 그의 교회를 구속하기 위해 유일한 대제사장으로, 그의 교회를 다스리고 돌보시기 위해 영원한 왕으로 세움을 입은 것처럼, 그리스도는 가르치는 직분(목사)을 통해 자기 교회를 가르치시고, 감독직(장로)을 통해 그의 교회를 인도하시며, 집사직을 통해 그의 자비의 풍성함을 나타내시기를 원하신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교회에 선지자ㆍ왕ㆍ제사장 세 직분을 세우셔서 그의 백성을 돌보신 주님은 신약시대의 그의 교회에 말씀 봉사자(목사)ㆍ장로ㆍ집사를 세우셔서 그의 교회를 돌보시기를 기뻐하신 것이다.
스코틀랜드 교회의 개혁가 앤드류 멜빌이 작성한 『스코틀랜드 제2권징서』(1578년)는 교회의 공적 직무를 ‘교리(doctrine), 권징(discipline), 구제(distribution)’, 이렇게 셋으로 말했다. 여기서 교리는 설교와 성례(성찬, 세례)와 연관된다. 바로 이 공적 직무에서 목사ㆍ장로ㆍ집사 직분이 나오며, 이를 위해 부름 받은 자들은 모두 교회의 사역자라고 하였다.
종교개혁 당시 교회 정치에 큰 영향을 끼친 개혁가 요한 아 라스코(1499-1560) 역시 독일의 엠던, 영국 런던 등에서 사역할 때 교회의 4대 공적 사역 즉 설교와 성례 시행, 구제, 권징을 제시하고 또 이를 신실하게 시행하기 위해 네 직분을 말하였다.
이러한 정신에 따라 『웨스트민스터 교회정치』(1645년)는 목사, 장로, 집사 직분을 가리켜서 “통상적이고 영구한”(ordinary and perpetual) 직분이라고 하였다. 바로 여기서 “항존(恒存) 직원”이라는 말이 나왔다. 즉 설교, 성례, 권징, 구제는 교회라면 언제나 갖추어야 할 공적 직무이자 공적 사역이면서 또 통상적이고 영구한 직무,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직무이다.
이같이 교회 직분을 교회에 항존(恒存)하는 기능을 따라 구분하고, 그리고 직분을 가진 자가 자기 직분에 고유한 직무에 전적으로 헌신하도록 한 것은 종교개혁의 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점에 비추어 볼 때 명예 권사(집사)는 공적 직무나 사역과 상관없이 명예를 위해 직분만 가진 것이기에 이는 결코 성경적이 아니며, 나아가 종교개혁 정신과 교회정치에 역행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성경은 사람보다 직분이, 직분보다 교회의 공적 직무가 우선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