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난 수십년간 가정이 콩가루처럼 부셔지는 것을 보아왔는데 이제는 산사태처럼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보고있다.이제는 산사태를 보고도 무감각한 상태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는 결혼과 가정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것만으로는 더 이상 만족하지않고 결과 가정을 심하게 공격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삶의 질서는 성적 자유를 추구하는 이 문화권에 위협이 되기 때문이다.
지난 20년 동안 일어난 가정을 향한 범세계적인 공격을 생각해 보자. 2000년도에 네델란드 의회는 역사상 처음으로 동성 간에 결혼할 수 있는 권리를 법제화하여 통과시켰다.
네델란드에 이어서 벨기에 (2003), 스페인 (2005), 카나다 (2005), 남아프리카 공화국(2006), 그리고 노르웨이 (2008)가 그 뒤를 이었다. 비록 미국에서는 전통적인 결혼이 훨씬 전에 (1993)에 도전을 받았지만, 보수주의자들과 도덕적인 대다수의 지도자들이 신속하게 결혼을 보호하는 방책을 세웠다. 의회로 하여금 동성 결혼 금지령을 국가적으로 채택하도록 촉구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금지령은 오래가지 않았다.
법관들이 금지령을 해제하고 의회에게 법을 개정하도록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보수주의자들의 “승리”는 오래가지 않았다. 2008년부터 미국 내에서 결혼과 가정을 반대하는 하는 것이 격렬해지고 놀랍게도 그리스도인임을 의심하지 않았던 사람들까지도 그 반대에 동참하였다.
캘리포니아의 미국 지방 법원 판사로 선출된 동성애자인 보근 워커는 가정을 향한 공격을 감행했다. 그는 자신이 가진 사법권을 이용하여 캘리포니아 주민이 투표로 결정한 주민 발의안 8의 투표 결과를 뒤집었다. 그 법률 수정안은 결혼은 남자와 여자가 하나 되는 것이라 정의하는 것이었다.
워커 법관은 제 8 발의안은 헌법에 위배된다고 선포했다. 더 이상 논의할 수없게되었다. 지금은 워커 법관이 그들이 선택한 죄에 맞도록 결혼의 기본적인 개념을 재정의하도록 함으로써 동성애를 찬성하는 안건이 성공했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적인 결혼관과 가족관을 지지하는 기독교인들을 백인 우월주의자들과 같은 부류로 구분할 것이다. 그들은 동성애를 혐오스러운 범죄로 단정하는 것을 반대하는데에 모든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이 전쟁의 또 다른 주요 선수는 헐리우드이다. 헐리우드는 현대 영화나, 텔레비젼 드라마, 코미디와 시트콤등을 통하여 가정을 표현할 때마다, 거의 항상 역겹도록 기능장애가 있는 가정으로 묘사한다.
거의 모든 경우에 눈에 띄게 남성 리더쉽이 없을 뿐 아니라, 많은 경우에 권위가 있는 인물이 전혀 없고, 무엇을 해도 상관하지 않는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그리고 아빠만 없는 것이 아니라 엄마도 없다.
헐리우드가 미국사람들의 가정을 이렇게 묘사하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이런 것들이 실제적으로 영화 화면을 점령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사랑, 질서, 권위, 그리고 정의를 고의적으로 무시하는 타락한 문화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에 전염되어있는 도덕성의 부재에 대하여 존 맥아더목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혼외정사는 당연한 일이고 이혼하는 것이 유행이다. 결혼 자체가 줄어들고 있다. 많은 남자들과 여자들은 혼약을 하거나 정식으로 가정을 꾸미지 않고 같이 사는 것이 더 좋다고 결정하기 때문이다. 낙태는 세계적인 전염병이다. 청소년 비행이 만연하고, 많은 부모들은 가정에서 그들의 권위를 고의적으로 포기하 고 있다. 한편, 여러가지 모습의 어린이 학대가 늘어나고 있다.
이 모든 요소들이 우리 사회에 만연하고 있고 이 모든 것들이 우리들의 타락한 인간성을 반향한다. 그래서 그것들이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점령하고 있는 것이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르는 것이다. 헐리우드는사람들이 원하는 것 즉 타락을 제공한다.
전통적이고 조화된 가정을 텔레비젼에서 찾는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러한 예들이 어떤 기독교인들에게는 사소하고 해롭지 않은 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물로 바위가 침식 되듯이, 가족을 이러한 부패한 취향에 노출시킨 사람들이 이러한 세속적인 생각들의 영향을 받다가 결국에는 그들의 생각이 세속적인 것의 지배를 받게 될 것이다. 기독교인이라고 믿어 의심하지 않았던 사람들도 그렇게 될 것이다.
한 예로 롯을 보자. 롯은 “그의 장막을 옳겨 소돔까지 이르렀다.” ” 왜 그일이 중요한가? 왜냐하면 “소돔 사람들은 악하여 여호와 앞에 큰 죄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록된 말씀을 보면 그 후에 롯은 더 이상 사악한 소돔의 거주지에 더 이상 이방인이 아니었다. 그는 그들을 인도하는 지도자 중에 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더우기 그는 그들을 그의 “형제들”이라고 불렀고, 그들 중에서 그의 아내를 얻었고, 그들의 두 딸을 이교도적인 환경에서 길렀다. 롯은 소돔 사람들의 사악한 생활에 익숙해졌던 것이 분명하다. 하나님께서 그의 가족을 구원하기 위하여 두 천사를 보냈을 때, 소돔의 모든 남성들은 롯의 가족의 집에서 밤을 지내기 위하여 숙박한 천사인 손님과 성적 관계를 맺으려고 하였다. 롯의 제시한 해결 방법은 무엇이었는가? 그는그들의 성적 욕구를 채워 주기 위하여 급히 그의 처녀 딸 둘을 내놓았다.
신약성경에서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어떻게 유혹의 문턱에서 구할 수 있는가를 설명할 때 롯의 이야기를 예로 사용하였다. 그 이야기를 하면서 그는 하나님께서 “무법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로 말미암아 고통 당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이는 이 의인이 그들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이 상함이라).” 라고 기록하면서 소돔의 타락한영향력의 심각성을 추가로 강조하였다.
하나님께서 롯의 가족을 구원한 후에 소돔을 심판하셨다. 자신의 죄된 삶의 모습으로 돌아가기를 갈망하는 롯의 아내는 소금 기둥이 되어버렸다. 비극은 계속되었다. 롯의 두 딸은 그들의 대를 잇기 위하여 아버지를 술취하게 하고 술취한 아버지와 근친상간을 범했다. 롯이 이야기는 비극적인 말로 끝 맺는다. 그는 그와 그의 가족을 타협하는 삶을 살게 함으로써 위태롭게한 고통 당하는 영혼이었다. 그는 저주받는 종족인 암몬족과 모압족을 낳았다. 이것이 그의 유산이었다.
롯의 이야기는 얼마나 쉽게 세상이 의로운 마음을 오염시키고 타락 시킬 수 있는지를 알려 주는 전형적인 이야기이다.
기독교인들이여, 당신은 소돔과 얼마나 가까이 텐트를 쳤는가? 최근에 당신은 당신의 가족을 가까이서 살펴 본 적이 있는가?
생각해 보라.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은 가족들을 위한 문화적인 전쟁에 얼마나 무관심하거나 마비되어 있는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