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설교에 청중을 집중하게 하고 자연스럽게 주목하게 만들 수 있을까요?
1. 설교에 대한 일반적인 문제
(1) 청중이 설교에 주목하지 못하는 이유는 낚시꾼 탓입니다. 저는 예민해서 그런지 눈먼 맹인이라도 설교 시간에 나를 향하여 얼굴을 들고 바라보지 않으면 아주 신경이 거슬립니다. 제 설교 시간에 청중들 가운데서 어느 누가 이리저리 사방을 둘러본다든가, 또는 주위 사람과 속삭인다든가, 졸고 있다든가, 시계를 꺼내본다든가 하면 저는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가급적 최대한 설교에 집중시키는 방 법을 제가 연구하고 계발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설교시간에는 어린아이들도 제 설교에 집중하게 합니다.(어린아 이들이 부모와 함께 예배드리는 상황) 그래서 저는 설교시간에 종종 어린아이들에게 눈길을 줍니다. 그들을 쳐다볼 때 그들은 제게 집중되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어린아이들을 집중시키기 위해서라도 설교 중에 아이들도 재미있게 알아들을 수 있는 예화를 꼭 집어넣습니다.
여러분, 두 사람이 같이 낚시를 해도 한 사람은 많이 잡는데 다른 한 사람은 거의 못 잡습니다. 그건 물고기 탓이 아니라 낚시꾼 탓입니다. 낚시 가서 물고기를 한 마리도 못 잡으면 그건 낚시꾼을 탓해야 합니다. 낚시꾼은 낚싯바늘에 물고기가 반응하도록 전문가가 되어야 합니다. 설교자가 회중들이 졸든지 산만하든지 자기가 할 말만 하고 내려온다면 그는 훌륭한 설교자는 아닙니다. 비록 회중이 산만하고 피곤해도 눈과 귀가 번쩍 뜨일 만큼 강력한 메시지를 전하는 설교자가 전문가입니다. 물고기 탓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2) 설교 시간에 바알세불이 역사합니다.
여기서 바알세불을 그냥 우화적으로 말씀드립니다. 신학적이 아니라 마 12:22-24의 그는 ‘파리의 신’인데 다름 아니라 설교 시간에 ‘파리’ 가 웽웽 하고 날아다니기 때문입니다. 어떤 파리들인가 하면; � 어떤 농부는 설교 중 밭 갈고 씨 뿌리는 생각으로 가득 차있습니다. � 농부 아내는 말린 농작물 거둬드릴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합니다. � 상인은 결제하지 못한 수표가 눈앞에 맴돕니다. � 가게 주인은 물건 팔 생각으로 눈앞에 파리가 웽웽 거립니다. � 심지어는 여자 교인의 리본이나 드레스에 한 눈이 팔리기도 하고 교인의 구두에서 나는 삐꺽대는 소리가 주위를 산만하게 만듭니다. 이렇게 예배시간에 특히 설교 중에는 아주 성가신 파리들이 무수히 날아다닙니다. 복음의 잔치가 있는 곳에 파리들이 날아와서 훼방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회중의 주목과 주의 집중을 빼앗아 버립니다. 제가 이 시간에 ‘설교의 주의 집중’을 주제로 말씀드리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영국의 많은 교회들에서 설교에 집중하는 설교자나 회중들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사실이 그렇다면 예배나 설교는 그저 ‘행사로 치르기’ 식이 되어버리고 말지요.
회중들의 태도 자체가 설교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것이 습관이 된 것 같습니다. 예배에 참석은 하지만 설교자의 말 에는 아예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이지요. 대신에 자꾸 고개를 사방으로 기웃거리면서 ‘누가 왔나, 안 왔나?’ 둘러보는 사람들이 교회마다 있습 니다. 때로는 늦게 들어오면서(삐거덕거리는 마루가 있었던 시절에) 발 소리를 내기도 하며 문 닫는 소리가 쾅하고 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제게는 그런 여러분의 두리번거림이 얼마나 거슬리는지 모릅니다. 이렇게 사람들이 설교시간에 집중하지 못하는 이유를 잘 아시겠지 요? 사람들이 ‘설교는 별로 들을 게 없다’는 의식이 매우 오랜 세월동 안 그들의 정신 속에 고착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설교가 별로 들을 만한 내용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대부분 교회의 설교 시간이 산만 하고 ‘파리’들이 막 공중에 날아다니는 것입니다.
말, 말, 말뿐인 설교’ 말 이외에는 없는 설교에 회중들은 오래 주의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감사’에 관한 설교를 가장 잘 하는 분이 있다면 그는 평소에 늘 감 사하는 삶을 실천하며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에 관한 설교를 가 장 잘 하는 분이 있다면 그는 평소에 늘 쉬지 않고 기도하는 습관으로 사는 분입니다. 그런데 ‘전도’에 관한 설교를 잘 하는 분을 찾기가 매 우 어렵습니다. 그 이유는 평소에 ‘전도’를 잘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설교는 이와 같이 ‘말, 말, 말’이 아니라 ‘삶, 삶, 삶’인 것입니다.
여러분의 설교에 정말 들을만한 ‘내용’이 있다면 사람들은 50마일을 걸어서라도 그 설교를 들으러 나올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설교에 대한 기대’가 있도록 해야 합니다. “오늘 교회에 가면 하나님이 내게 무슨 말씀을 주실까?” 성도들이 그런 기대를 가지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런 데 성도들이 말씀에 대한 아무 기대감도 없이 그저 습관적으로 교회에 다니고 있다면 그건 물고기 탓을 할 게 아니라 어부 탓을 해야 합니다.
정말 우리가 심각하게 점검해 보십시다. 오늘날 우리 교우들이 교 회에 나올 때 어떤 기대감을 갖고 나오는가? 아니면 그저 때우기 식으로 나오는가? 아예 설교에 대한 아무 기대감도 갖지 않고 교회에 나오는 데 설교 시간에 그런 성도들에게 집중하기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설교자는 이 점을 정직하고 심각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찰스 스펄젼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