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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lom aleikhem !

שָׁלוֹם עֲלֵיכֶ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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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6-03-10 21:24
깨끗한 양심을 가진 사람을 보기가 쉽지 않은 것이 요즘의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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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창암
조회 : 245  

많은 사람들이 외모는 열심히 가꾸면서 자신의 내면은 돌보지 않습니다. 깨끗한 양심을 가진 사람을 보기가 쉽지 않은 것이 요즘의 현실입니다. 이 세상의 소금과 빛이어야 하는 그리스도인들 중에서조차 비양심적인 행동으로 물의를 일으키고 세상의 비웃음과 지탄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바울은 양심이 하는 일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율법이 없는 이방 사람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한다면 비록 그에게는 율법이 없을지라도 자기 자신이 자기에게 율법이 됩니다. 이런 사람은 율법의 요구가 자기 마음에 기록돼 있음을 보여 줍니다. 그들의 양심도 이것을 증언합니다. 그들의 생각이 서로 고발하기도 하고 변호하기도 합니다”(롬 2:14-15,).

이 말씀은 율법이 없는 이방 사람이라 해도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가 그의 마음에 쓰여 있기 때문에 그가 어떻게 행동하는가에 따라 양심이 증언할 뿐 아니라 생각이 고발하거나 변호한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양심은 간단히 말해서 우리가 옳지 않다고 알고 있는 것을 행하거나 옳다고 알고 있는 것을 행하지 않을 때 우리를 가책하는 내적 기제입니다. 내면의 경고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앤드류 머리(Andrew Murray) 목사는 그의 역저 ‘그리스도의 영’(‘The Spirit of Christ’)에서 “양심은 인간 속에 남아 있는 하나님의 형상이고, 인간 속에서 하나님께 가장 가까이 접근하는 것이며, 타락으로 인한 파멸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존귀하심을 수호하는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생명체 중 사람만이 양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가 오시면,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세상의 잘못을 깨우치실 것이다”(요 16:8, 새번역).

 예수님께서는 보혜사 성령이 오시면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서 세상의 잘못을 깨우치실 것이라고 하셨는데 그렇게 깨우치시는 것은 성령께서 사람의 양심에 빛을 비춰 주심으로써 이루어집니다. 빛을 비춤 받은 사람의 양심이 반응할 때 그 사람은 죄를 깨닫게 되고 회개하게 됩니다. 사도행전은 성령께서 강림하신 오순절에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이 마음이 찔려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라고 물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행 2:37, 우리말성경) 이는 그들의 양심이 반응한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히 10:22).

양심이 반응해서 회개가 따른다 해도 그 양심은 여전히 가책하는, 더럽혀진 양심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뿌려지는 그리스도의 피만이 우리의 양심을 깨끗하게 해서 우리로 하여금 죄책감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습니다. 양심이 깨끗해져서 우리가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전에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히 9:14).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의 양심을 깨끗하게 해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게 합니다. 깨끗한 양심을 갖지 않고서는 하나님을 섬길 수 없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조상들을 본받아 깨끗한 양심으로 하나님을 섬긴다고 했습니다(딤후 1:3).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요일 3:21).

 이 말씀은 양심에 거리끼는 것이 없으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떳떳할 수 있음을 말해 줍니다. 바꿔 말하면, 양심에 거리끼는 것이 있으면 하나님 앞에 떳떳하게 나아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양심이 정죄하는 것은 하나님께서도 정죄하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자책할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나 이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고전 4:4).

 양심에 거리끼는 것이 전혀 없다고 해서 의롭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심판하실 하나님의 기준은 사람의 양심의 기준보다 더 높기 때문입니다. 양심의 기준은 완전하지 않습니다. 또한, 사람의 양심은 그가 자란 가정과 그가 속한 사회의 가치관, 문화, 풍속, 전통 등에 의해 영향을 받습니다. 그래서 양심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양심은 성경 말씀과 성령께서 주시는 깨달음에 따라 하나님의 기준에 맞춰져 가야 합니다. 그러나 양심의 소리는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나타내 보이시는 그분의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양심에 순종해야 합니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나도 하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나이다”(행 24:16).

바울이 한 말입니다. 우리도 바울처럼 항상 거리낌없는 양심을 가지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무엇이든 양심에 어긋나는 일은 하지 않으려고 항상 애써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그렇게 살아왔다면 세상 사람들이 지금과 같이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을 손가락질하고 폄하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벧전 3:16).

우리가 선한 양심을 갖고 그리스도 안에서 선하게 행동한다면 그러한 행동을 비방하는 사람들이 있다 해도 비방의 근거를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오히려 그들이 수치를 당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항상 양심을 깨끗하게 유지하면서 선하게 행동한다면 세상 사람들이 비방한다 해도 우리는 떳떳하지 않겠습니까?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사람들 앞에서 떳떳하지 못한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요?

 미국 유타주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도시의 경찰관이 어느 날 자기의 지갑을 열어 보고 운전면허증이 만료된 것을 뒤늦게 알게 됐다고 합니다. 잠시 당황했지만 그는 곧 티켓을 꺼내서 자신에게 위반 티켓을 발부하고 그 티켓을 법원에 제출한 후 범칙금을 납부했다고 합니다. 왜 그랬냐는 질문에 경찰관은 ‘내 자신의 위반에 대해 티켓을 발부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다른 사람의 위반에 대해 티켓을 발부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 경찰관처럼 손해를 본다 해도 양심에 어긋나는 일을 하지 않으며 산다면 교회와 그리스도인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평가와 시각이 달라지지 않을까요?  

 이제는 양심에 거리낌이 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아 보겠습니다. 마음에 품은 생각이나 의도가 거리낌을 줄 때는 즉시 그 생각이나 의도를 버리고 더이상 나아가지 말아야 합니다. 이미 실행에 옮겼다면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6-7).

 첫 번째 구절은 어둠 가운데 행하면서 하나님과 교제하고 있다고 말하면 그 말은 거짓말이라는 말씀입니다. 양심이 정죄하는 것을 행하면 어둠 가운데 행하는 것이므로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집니다. 그러나 회개하고 빛 가운데 행하면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복할 수 있고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해 줍니다. 그런데 문제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양심의 가책을 느낄 때 회개하지 않고 이성의 논리로 합리화하거나 다른 선행을 해서 양심의 가책을 애써 무마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양심이 정죄한 죄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에 양심은 그만큼 더럽혀지고 무디어지게 됩니다.

 “이 교훈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이거늘”(딤전 1:5).

이 말씀에 의하면, 교훈의 목적인 사랑을 행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가 필요한데 그중 하나가 선한 양심입니다. 선한 양심이 없이는 사랑을 행할 수 없습니다. 선한 양심과 거짓 없는 믿음은 함께 갑니다. 바울은 디모데전서 3장 9절에서 집사는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간직한 사람이어야 한다고 했고 디모데전서 1장 19절에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딤전 1:19).

 선한 양심을 버리면 신앙 생활에 파선을 당하게 됩니다. 믿는다고 하면서 더러운 양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나 더럽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아무것도 깨끗한 것이 없고 오직 그들의 마음과 양심이 더러운지라 그들이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하지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딛 1:15-16).

 믿는다고 하면서 더러운 양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안다고 말하지만 행위로는 부인하는, 가증스럽고 완고한 사람들이라서 선한 일을 행하기에 부적합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딤전 4:1-2).

 양심의 소리를 계속해서 외면하면 양심의 기능은 점점 약화되어 결국 더이상 기능하지 않는 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위 말씀에서 양심이 화인을 맞았다는 것은 양심이 그 상태까지 간 것을 뜻합니다. 양심이 화인을 맞은 사람들은 쉽게 위선의 탈을 쓰고 거짓말을 합니다. 또한 위 말씀에 의하면 그러한 사람들은 믿음에서 떠나 속이는 영들과 귀신들의 가르침을 따릅니다. 이는 그 사람들이 전에는 믿음 안에 있었던 사람들임을 가르쳐 줍니다. 바울은 이런 현상이 마지막 때에 나타날 것임을 성령께서 밝히 말씀하셨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가 마지막 때인데 마지막 때는 거짓과 기만이 난무하는 때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재림과 세상 종말의 징조에 관하여 예수님께 여쭈었을 때 예수님께서 제일 먼저 말씀하신 것은 ‘속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것이었습니다(마 24:4). 속지 않기 위해서는 양심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양심에 순종하는 삶을 살지 않을 때 우리의 양심은 무디어져서 빛과 진리 가운데 행하기가 그만큼 더 힘들어질 뿐 아니라 속이는 영들에게 틈을 주게 됩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롬 9:1).

 바울은 그의 양심이 성령 안에서 그에게 증언한다고 했습니다. 진리의 영이신 성령께서는 양심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양심에 순종하면 성령께서는 더 많은 빛을 우리에게 주시고 우리의 양심은 그만큼 더 예민하게 됩니다. 이렇게 빛을 받아 점점 더 예민해지는 양심에 우리가 계속 순종하면 양심의 증언은 성령의 증언과 점점 더 근접하게 됩니다. 반면에, 양심에 순종하지 않으면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없게 되고 성령과의 교제가 끊어지게 됩니다. 양심은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두신 작은 빛입니다. 그 작은 빛에 따라 행하기를 거부하면서 큰 빛이시고 참 빛이신 성령을 따를 수는 없습니다. 성령을 따라 행하기 위해서는 먼저 양심에 순종해야 합니다.

양심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매우 귀중한 선물입니다. 우리는 양심을 소중하게 여기고 항상 양심에 순종하는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합니다.

[출처] 선한 양심을 가지라|작성자 홍세봉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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