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당히 오랜 기간을 교회에 출석하고 교회에서 직분까지 맡고 있으면서 "믿음" 이 무엇인가? 라고 물으면 선뜻 대답을 못하고 "예수를 믿어 구원을 얻는것입니다" 라고 할뿐 그 이상 설명을 못하는 분들이 종종 있다.
막연하게 "믿음" 이라고하면 무엇이든 내가 의지 하는 것이면 믿음이라고 할수 있다. 심지어 자기의 권력이나 명예나 재물을 믿으면 그런 사람에게는 그의 믿음은 그런 것들을 믿는 것이리라.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 이란 그런 세속적인 개념을 초월한다.
그럼, "믿음" 이 무엇인가?
성겅에서 말하는 <참 믿음, The Faith> 는 하나뿐이다. 좋은 예를 누가복음 18:8에서 볼수 있다.
주님께서 말씀 하시기를, "인자가 다시 올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곘느냐?" 라고 하셨는데 여기서 "믿음" 이라는 단어 앞에는 원문인 헬라어 성겨에는 여성 정관사 "헤이, hei" 가 붙어 있으니 보통 흔히 말하는 a faith (한 믿음) 이 아니고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뿐인 유일한 그 믿음>을 말함이 분명하다. 세상에 "믿음" 이라는 것이 많이 있고 기독교안에서도 "믿음"을 여러가지로 논하지만 성경적인 믿음은 오직 하나뿐이라는 말이다.
흔히 기독교의 여러 교파들이 말하는 "믿음" 은 크게 네가지로 구분하여 볼수 있다.
첫째, 역사적인 신앙 이다.
이것은 머리로만 아는 신앙이다. 가령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 십자가상에서의 대속의 죽음, 육적인 부활, 육적인 재림 등을 논하고 머리로 알고 있지만 그런 역사적인 사실들을 100% 믿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신학교에서 샌학생들에게 신학을 가르친다.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지금은 세상을 떠났지만 Rudolf Bultimann 같은 사람이다. 그 분은 성경에 나오는 기적과 이적을 실제로 역사속에 일어난 사건으로 믿지 않는다. 어떻게 죽은 사람이 살아 날수 있는가? 그것은 하나의 신화이다.
어떻게 동정녀가 아들을 낳을수 있는가? 제자들이 꾸며낸 이야기 이며 신화이므로 믿을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도 그런 목사나 신학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옛날 대구에 있는 어느 교회에서 청장년부를 가르치던 김 모 장로가 있었다. 그는 대구 시내 모 대학교에셔 영문학을 교수하면서 나름대로 사회봉사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던 분인데 그가 쓴 책, "지성인을 위한 성경해석" 이라는 책에서 그는 말하기를 "이사야는 주전 700년 전 사람인데 그가 어떻게 예수가 동정녀의 몸에 태어 날것을 알았겠는가?" 라고 말한다. 이런 사람의 신앙을 "역사적 신앙" 이라고 하는데 이런 <역사적 신앙> 은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
둘째, 임시 신앙이다
임시 신앙은 문자 그대로 잠시 믿다가 중간에서 도중 하차하는 믿음이다. 마치 길가에 뿌려진
씨 같은 신앙이다. 이런 신앙은 뿌리도 진액도 없다. 열적적으로 감정에 치우쳐서 열광하다가 핍박이 오면 그냥 쓰러지는 신앙이다. 놀라웁게도 이런 부류의 신앙이 오늘 상당히 유행하고 있다.
이런 신앙은 구원에 이르지 못하다. "누구든지 저를 믿는자는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르리라" 라는 말은 이런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진실로 거듭난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셋째, 기적직 신앙이다.
기적적 사건을 보고야 믿기를 좋아하는 신앙이다. 한국의 부흥사들중 상당수가 기적적 신앙을 강조한다. 사람의 심성은 무엇인가 이상한 것을 보아야 믿고 실어지는 충동이 누구에게나 있다. 그냥 성경 말씀을 통해서 믿는 것 보다는 무엇인가 뚜럿한 이적이나 기적을 보면 더욱 믿음이 돈독해 질것이 아니냐? 라고 논박할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고린도후서 5:7에서 "우리는 보는 것으로 행치아니하고 믿음으로 한다" 라는 말이 있다. 좋은 예로, 아브라함을 들수 있다. 하나님은 그와 언약을 맺으면서 많은 것을 약속했다. 그중에서 "너의 자손이 하늘의 별같이 바다의 모래알 같이 되리라" 라는 약속의 말씀은 아브라힘이 죽기 전에 이룩된 것이 아니고 죽은 다음에 성취되었다. 그러나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하신 언약이 반드시 먼 훗날 이루어 질것을 의심없이 굳게 믿으면서 눈을 감았다. 이것이 참 믿음이가. 우리는 보는 것으로 행치 않는다. 믿음으로 행한다. 여기서 "행한다" 란 마른 원문에서 "peripateo" 이니 "걸어간다, walk" 의 의미이다. 평생을 믿음으로 걸어간다 라는 말이다.
신명기 13장과 18장을 자세히 읽어 보라, 하나님이 무엇이라고 하시는가? 이런 기적적 믿음이 우리를 구원하지 못한다.
넷째, 구원에 이르는 믿음이다.
우리는 위에서 세가지 형태의 구원얻지 못할 믿음을 보았다.
그렇다면, 구원에 이르는 믿음이란 어떤 것인가?
<구원에 이르는 믿음, saving faith> 에는 세가지 요소가 이다. 즉, 지식, 동의, 의지 이다.
지식 (knowledge), 동의 (Assent), 의지 (trust) 이 세가지는 <구원에 이르는 믿음>에서 업지 못할 필요불가결의 <3대 요소> 이다
섳째, 지식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성경의 내용을 아는 것이다. 죄의 댓가는 사망이고 그리스도가 구세주인것을 아는 것이며 그리스도에게 돌아오면 영원히 산다는 것을 안다. 믿음에는 이런 지식이 항상 선행한다
둘째, 아는 것만 아니고 내가 그 지식에 동의한다. 아무리 성경의 내용과 죄인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멧세지가 있다해도 내가 그 멧세지에 동의 하지 않으면 그런 구원의 계획은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내가 알고, 알뿐만 아니라 나의 지.정.의가 동의한다.
죄인을 구하시는 복음을 내가 받아 드린다는 말이다. 복음의 멧세지에 동의하지 못한다면 그는 구원에 이르는 믿음이 없는 분이다. 요즘 자유주의 신학자들이나 신식으로 목회하는 신신학 목회자들 중에 이런 분들이 얼마나 많은가? 복음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과 복음서에 기록된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를 머리로만 알고 마음에 받아 드리지 않으면 그는 구원과는 관계가 없는 삶이다.
셋째, 의지하는 일이다. 복음을 알고, 내가 복음에 동의하드라도 내가 전폭적으로 의지하지 않으면 내것이 되지 않는다. 구원에 이르는 믿음은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의 복음을 알고, 내가 동의하여 수용하고, 그리고 내가 전적으로 그 복음의 멧세지를 의지한다.
이렇게 되면 결과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trust and obey (의지하고 순종함> 의 생활이 지속된다. 주님을 왕으로 모시고, 그에게 순종하며 그리고 그를 온전히 의지하고 그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마음에 평화를 누리며 살아 가게 된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믿음이었고 앞서 간 모든 믿음의 조상들의 믿음이 었다. 참으로 믿음이 있는가를 시험하는 여부는 바로 하나님에게 얼마나 순종하며 사는가에 있다. 요한복음 14장 15, 21, 23, 24 등을 보면 주님을 사랑하는 자는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고 여러번 되풀이 말하고 있다.
(고) Dr.김명도 목사
연세대학교 영문학과 졸업, BA (서울) Philadelphia Westminster 신학교 졸업, M.Div. Th.M. (신약) D.Min.(변증학) 개혁장로회 신학교 학감 (RPS,Los Angeles) 미국 개혁신학교(ARCS) 교장(Los Angeles) Tyndale International University 초대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