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바꾼 만남
핸드릭스는 인생의 출발이 별로 좋지 않은 사람 중에 하나였다. 그가 스스로 "일찌감치 죽어 없어져도 누구하나 특별히 관심을 보이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할 만큼. 태어나기도 전에 그의 부모는 별거 상태 에 있었고 예민하고 여린 헨드릭스는 결손 가정에서 상처받은 채 외롭게 자라게 된다. 그가 처음으로 부모를 한 자리에서 본 것은 18세 되던 해 이혼 법정에 증인으로 소환받았을 때라고 한다.
헨드릭스가 소년 시절을 보낸곳은 필라델피아의 어느 마을로, 그곳은 복음적인 교회가 들어설 수 없는 곳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불가능을 뒤엎고 몇 사람의 그리스도인을 모아 그곳에 교회를 세우기 시작하셨다. 그 교회의 월트(Walt)라는 사람과의 만남으로 헨드릭스의 삶은 달라지게 된다. 고작 국민학교 6년의 학력이 전부인 그는 (하지만 교사로서의 자질은 어느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났다) 주일학교 교사가 되고싶어 교장에게 반을 달라고 몇 차례나 간청했지만 거절당하고 만다. 결국 교장은 그가 데려오는 아이는 그의 반에서 가르쳐도 좋다며 마지못해 허락하고 월트는 헨드릭스가 사는 동네로 아이들을 모으기위해 찾아 온다.
"얘야, 주일학교에 가지 않을래?" 구슬치기를 하고 있는 어린 헨드릭스에게 말을 건네지만 학교라면 지긋지긋 하던 그는 흥미조차 보이지않는다. 하지만 월트는 포기하지 않는다. 결국 그는 함께 구슬치기, 하이킹을 하면서 헨드릭스와 열 세명의 아이를 주일학교로 인도했는데, 그 중 아홉명은 결손 가정의 자녀였다. 하지만 아이들을 향한 월트의 사랑은 그들 가운데 열한 명을 전임사역자로 변화시킨다.
헨드릭스는 윌트를 통해 받은 영향력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솔직히 나는 월트가 우리에게 해 준 말은 많이 기억할 수 없지만, 그에 관한 모든 것은 얼마든지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위해 우리를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우리 부모보다 더 나를 사랑했으니까요. 그는 우리를 데리고 하이킹을 가곤 했는데, 그때를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하이킹은 그의 약한 심장을 더욱 악화되게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우리를 사랑했기 때문에 늘함께 숲속을 달렸습니다. 그는 뛰어난 사람은 아니었지만 진실한 사람이었습니다. 나는 그것을 알았습니다. 우리 반의 다른 아이들도, 내가 가르치는 일에 대해 그토록 관심을 가지고 열정적으로 그 사역을 하는 단 한가지 이유는 하나님께서 나의 인생 길에 한 헌신된 교사를 보내 주셨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을 향한 월트의 사랑과 열정은 그가 세상을 떠난 뒤 달라스 신학교의 하워드 헨드릭스(Howard G Hendrix) 교수의 책 ‘사람을 세우는 사람’에 소개됐습니다. 헨드릭스 교수는 “월트가 가르쳤던 13명의 소년 중 11명이 그리스도를 위한 목회자가 됐고, 그들 중 몇 사람은 현재도 여전히 활동하고 있다”며 “이렇게 자신 있게 말하는 것은 내가 그들 중 한 명이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영혼을 위한 외과 의사
월트 선생님의 헌신적인 사랑을 받으며 헨드릭스는 교육에 대한 남다른 열정을 가진 하나님과 사람들을 사랑하고 배려할 줄 아는 젊은이로 성장하게 된다. 인체에 매료되어 외과 의사가 되고자 했던 그는 에반스톤에 있는 노스웨스턴 대학에서 예과과정의 장학금을 주겠다는 제의까지 받는다. 하지만 등록하기 전 여름, 주님은 그의 관심을 내려놓게 하신다. "육체는 수술 할수 있지만, 결국에는 퇴락하여 죽을 따름이다. 하지만 내가 영혼을 수술할 수만 있다면, 영원히 지속될 것이 아닌가?"
그는 결국 영혼을 위한 외과 의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휘튼 대학(Wheaton College)에 입학하여 목회
를 위한 공부를 시작한다. 그는 자신의 결정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 결정은 이때까지 내가 한 것 중에서 가장 훌륭한 것들 중에 하나였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사역하고 있는 기독교 교육 분야는 모든 직업들 중에서 가장 고귀한 것들 중의 하나임을 확신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확신은 빗나가지 않았다. "하나님의 진리를 가르치는 일" 에 대한 그의 열정과 성실함은 많은 이들에게 하나님을 머리와 가슴으로 체험하게 하고있으며 그들의 삶까지도 변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출처 :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삶 -칼빈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