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민중신학은 순수한 한국의 독창적 신학이 아니다.
민중신학은 한국에서 일어난 독창적이고 순수한 한국적 신학(Korean Theology)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민중신학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신학적 배경이나 민중신학의 소재들, 그리고 그 이론 등을 고찰 할 때 민중신학이 결코 한국사람들의 독창적이고 순수한 한국적 신학, 미래를 위한 희망의 신학이 아니다.
민중신학은 특히 아프리카의 흑인 신학(Black Theology) 남미(라틴 아메리카)의 해방신학(Liberation Theology)으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것이 틀림없다. 흑인 신학이나 해방신학은 곧 공산주의 · 마르크스주의적 사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일종의 정치신학, 혁명신학이다. 그러므로 한국의 민중신학이란 한국판 해방신학이다.
민중신학은 서구 자유주의 신학을 공부하고 그 영향을 받은 한국의 자유주의 사람들의, 서구 자유주의 신학을 한국적 상황에 적용시킨 것에 불과하다. 민중신학은 결코 순수한 한국의 독창적 신학이 아니다.
2. 민중신학은 소수 자유 급진주의자들의 신학이다.
그러나 이것이 교회와 사회 각계각층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민중신학의 주장자들이나 추종자들은 매우 소수이며 심지어는 그들의 영내에서도 환영을 받지 못하고 있다.
민중신학을 문자적으로 풀이한다면 민중이 주도하는, 민중을 위한 신학인 것처럼 생각이 될 것이다. 그러나 민중신학이란 그 명칭이 내포하고 있는 것처럼 다수의 사람들이 지지하는 신학이 아니라, 소수 급진 자유주의자들의 신학이며, 그 신학사상을 불순 좌경세력이 자기들의 핵심 이론으로 채용하고 있다. 그러므로 민중신학이 교회와 사회 각계각층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
3. 민중신학은 온갖 잡탕들로 구성된 혼합신학으로 진정한 의미에서 신학이 아니다.
기독교를 불교, 유교, 샤머니즘(Shamanism), 등과도 결부시켜 대화(Dialogue)를 통한 접근 점을 모색하고 있다. 그러므로 마당놀이, 탈춤놀이, 홍길동전, 동학란, 3.1운동, 4.19 해방신학 등등을 민중신학의 소재들로 사용하고 있다.
민중신학은 민중이란 용어인 라오스(laov")와 오클로스(o[clo")중에 오클로스만을 민중이라고 부른다. 라오스와 오클로스는 어원상 동일하며 용법상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저들이 오클로스만을 민중에 적용시킨 것은 잘못이다. 더욱이 오클로스가 내포하고 있는 의미들 중에 일부만을 제한하여 규정하여 ‘정치적으로 억압당하는 자, 경제적으로 착취당하는 자, 사회적 소외된 자’들만을 민중으로 규정하는 것은 더 큰 모순이며 잘못이다.
4. 민중신학은 종래의 전통적 형이상학적 관념의 신학이 아니라, 현실적 행동적 참여의 정치신학이다.
그들은 신앙세계의 초월적인 면과 개인의 영혼 구원문제를 배제하고 개체를 집단으로 대치하였다. 그들은 교회의 사회참여를 잘못된 개념으로 주장한다.
오늘날 민중신학을 주장하는 사람들과 같이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조국에 대하여 반정부적 활동을 일삼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들이 주장하는 사회구성원이란 성경에 없는 무근한 소리일 뿐 아니라, 원리에도 어긋난다.
교회의 참된 사회참여는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속함을 받은 신자들이 자기 맡은 바 처지와 형편 가운데서 빛과 소금의 직분을 희생적으로 최대한 감당하는 것이다.
5. 민중신학은 사람들을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으로 이분(二分)하며, 피지배계급만을 지지 옹호한다.
우리는 물질소유, 유무, 직분상의 상하, 남녀의 성별(性別) 기타 어떠한 이유로도 사람을 이분(二分)화 하여 그중 일부만을 편견적으로 옹호할 수 없다. 그들의 이론과 주장으로는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성경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인간은(창1:26) 모두가 기본권에 있어서 동일 동등하므로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주인이나, 남자나, 여자 구별 없이 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이니라 (갈3:28)고 교훈하신다.
자유 민주주의 체제하에서 선진 산업사회로 도약하는 오늘날과 같은 현실 속에서 억압당하는 자 착취당하는 자가 어디 있는가? 모든 사람들은 자신들의 자아의지(Free will)에 의하여 무엇이든지 결정하지 않는가? 아니면 타의의 강요에 의하여 피동적으로 움직인다는 말인가?
분명히 오늘날 우리 사회는 억압이나 착취하는 사회는 결코 아니다. 물론 사회적인 모순이 전연 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점진적 과정에 의한 진보와 향상을 위하여 노력하고 있지 않는가?
6. 민중신학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결사반대한다.
민중신학은 기업주, 자본가, 정치적 권력층들을 모두 지배자, 억압자, 착취자들로 정죄하고 그 원인은 경제적으로 시장경제 제도를 채용하였기 때문이라 한다. 그들에 의하면 시장경제는 부익부, 빈익빈의 경제적 계급장벽을 쌓고 경제적 식민주의를 조성하며 부정부패를 산출하며 물질만능주의로 사람을 유도한다. 그러므로 시장경제야 말로 가난과 부정, 억압과 착취의 원흉이라고 정죄하며 반대한다.
그러나 시장경제야 말로 인간이 필요로 하는 빵문제를 해결하며 풍요로운 생활, 그리고 인간의 기본 권리인 가장 고귀한 자유를 보장한다. 경제적 시장경제, 정치적 자유민주주의 이념적 반공은 삼위일체와 같다.
7. 민중신학은 하나님 나라를 민중(오클로스)을 위한 현세적, 현실적 새로운 희망의 세계로 이해한다.
민중신학에 있어서 하나님 나라는 지상낙원을 말하며 이는 해방신학에서의 ‘하나님의 왕국’ 개념과 마르크스공산주의의 ‘유토피아 사상’과 흡사하다.
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나라는 줄기찬 희망의 상징이며 눌린 자들 – 착취당하는 자들의 저항과 탄식의 표상이며, 사회적 집단적 인간의 구원을 보장해 주는 영원히 성취될 수 없는 꿈(망상)이다. 그들은 계시록 20:2에 기록된 ‘그리스도의 왕국’을 한갓 소설로 간주한다. 또 그들은 성령의 역사로 죄인들을 중생시키는 심령의 천국,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심으로 건설하시는 그리스도의 ‘중보적 천년왕국’ 그리고 그 후 ‘영원한 천국’을 믿지 않는다.
8. 민중신학에서는 하나님의 나라 도래가 그 목적이나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과 방법을 분명히 제시하지 못한다.
해방신학이나 흑인신학에서는 마르크스주의적 접근법을 적용시켜 폭력을 포함한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채용한다. 이와 유사하게 민중신학에서는 ‘한(恨)의 에너지’를 ‘혁명적 에너지’로 승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할 뿐 방법에 있어서 구체적 대안이 없다. 다만 그들의 신학내면에서 해방신학의 방법론 같은 것이 결정적으로 영향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9. 민중이란 용어는 북한의 ‘인민’과 같은 의미로서 좌경세력이 즐겨 사용하는 용어이다.
민중이란 인민대중(人民大衆)이란 말의 약자로서 둘째 글자 ‘민(民)’과 네 번째 글자 ‘중(衆)’을 따서 ‘민중’이라 하였다. 민중이란 용어는 북한 사회에서 사용하는 인민(人民)이라는 용어와 일맥상통한다. 좌경세력이 민중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이유는 민중이란 용어가 부담 없이 사용하여 일반 국민들에게 거부감이 없을 뿐만 아니라 용어를 혼란케 하므로 허위, 기만술책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함이다.
한국의 민중신학이란 성령님의 역사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중생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물론, 다수의 국민들도 반대하므로 민중신학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사회에서 고립된 상태에 빠져있다.
그러나 민중신학은 종속이론, 해방신학, 마르크스 공산주의와 접촉하면서부터 국내 좌경 세력의 핵심용어와 핵심이론이 되었다.
민중신학은 사회저변에서 불평불만을 토로하는 자들과 불온 좌경 써클에 침투하여 소위 의식화 교육을 통해 이들이 지지세력을 확보하고 보다 더 적극적으로 과격한 활동을 전개하는데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들이 과거에는 민주화라는 명목으로, 현재는 남북통일 문제를 내걸고 사회 각계각층에서 무질서, 파괴, 혼란을 야기하는 중심 배후세력이다.
민중신학의 기본 강령인 민중민주주의는 북한 공산정권의 인민민주주의와 맥락을 같이하며, 인민민주주의의 본질은 공산주의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독교의 순수 정통성을 보전하고 대한민국의 자유 민주주의 체제를 확고히 하기 위해서는 신앙의 원수이며, 우리 조국과 민족의 원수인 민중민주주의를 과감히 축출하여야 한다
조영엽 박사(Rev. Joseph Youngyup Cho, Ph.D.)
[출처] 기독일보